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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May 13. 2020

아이폰 부순 얘기

아이폰 부순 얘기.

며칠 전에 술 먹고 집에 가던 중 아이폰을 집어던져서 부쉈다. 땅바닥에 두 번 튀기고 공중전화 박스에 부딪혔다. 처음 든 생각은 ‘김재혁 병신아’였다. 두 번째 든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슬펐다. 왜 나는 핸드폰을 부숴야만 하는지. 슬펐다. 집에 와서 집에 있던 폰에 유심을 끼웠다. 010-2329-1xxx의 영혼은 금세 새 몸을 얻었다. 근데 새 몸은 잘 정이 안 간다. 박살난 폰은 액정이 완전히 분리되어 아이폰 배터리와 부품들을 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 수능 끝난 기념으로 아빠가 사준 폰인데.

​그리고 술에 만취해서 소설을 완성했다. 몇 주 동안 결말을 내지 못했었는데 잘 됐다. 노트북 앞에 엎드려서 화면을 보지도 않고 감으로 타이핑했다. 그런데 철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다음에 뭐 했더라. 아마 야동을 봤던 것 같다.

다음날에 알람을 듣고 아홉시에 깼다. 잠은 세시 넘어서 잤는데. 나는 잠귀가 밝아서 잘 깬다. 그런데 그 소리는 어제 박살낸 전화기에서 났다. 마음이 아팠다. 주인이 못나서 죄 없는 전화기가 삼단 분리가 되서 죽었다. 알람소리는 전화기가 억울해하는 소리로 들렸다가, 주인을 위로하는 소리로 들렸다. 뭐가 되었든 미안했다.

전화기를 던지고 걔가 부서지는 순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전과 달랐다. 1. 예전보다 더 멍청해졌다. 먹고 있는 약 때문에 조금씩 느껴왔는데 이제는 확실히 느껴진다. 약사가 부작용으로 브레인 포그 현상, 불안증세 나 식욕증가 같은 게 있다 했는데 불안한 상상을 자주하는 것도 있지만 멍해지고 자꾸 까먹는게 심해졌다. 엄마가 약사인 아들은 약을 숨겨야 했다. 예전엔 똑똑했는데. 조심스럽게 임용 공부는 물 건너갔다고 느낀다. 임용고시생들 축하해 2. 말이 많아졌다. 3. 모르겠다. 아무튼 달라졌음.

오늘도 죽은 전화기가 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어제도 다섯 신가 잤는데 어김없이 아홉시에 울렸다. 박살난 애가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으면 좀 짠해지고 그래, 일어나서 열심히 살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제는 부모님하고 싸웠는데 싸움 끝에 난 그래도 당신들이 밉지는 않아. 라고 했다. 말할 때 울 뻔 했는데 꾹 참았다. 그런 말을 한 것도 울음을 참은 것도 기특해서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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