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일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 May 23. 2020

<고양이>

제 1 편

<고양이> 1

 전생에 부부였던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스무  언저리에 만나 서른  언저리에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마흔 살이 되자 남자 쪽의 속눈썹과 눈썹, 여자 쪽의  피부와 입술을 닮은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육십 살쯤 되서 둘만 강원도 시골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아담한 시골집이지만  속의 시설은 최신인, 그런 멋진 집에서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화장실은 도시의 어느 집에 견주어도 훌륭했구요. 딸은 명절 때나 가끔 놀러오고 싶을  놀러왔습니다.  부부의 친구들도 놀러왔습니다.  부부는 좋고 깊은 친구들을 두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항상 즐거웠습니다. 부부는 닭과 강아지와 고양이와 상추와 열무와 감자와 토마토와 오이를 길렀습니다. 남자는 글을 써서 돈을 벌었습니다. 여자는 무엇으로 돈을 벌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여자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일주일  사일은 아침에 남자가 팬케이크를 기가 막히게 구웠습니다. 왜냐면 여자가 아침으로 팬케이크 먹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남자는 여자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일어나 부엌에서 조용히 팬케이크를 구웠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부시럭대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지만 눈을 감고 자는  했습니다. 여자는 눈을 감고 반쯤 잠든 상태에서 팬케이크 냄새를 맡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팬케이크는 <문학과 지성사> 에서 나오는 시집만큼 얇은 두께로 구워졌습니다. 팬케이크는 얇았지만 무지막지하게 폭신폭신했습니다. 그건 남자가 팬케이크 굽는 것을 무진장 연습했기 때문이죠. 서울에서 팬케이크 집을 했으면 아마  부부의 손자까지 먹고  걱정 없을 정도로 대박이 났을지도 몰라요.

 팬케이크가 아침으로 나오지 않는 날이면 아마 남자와 여자가 다퉜거나, 전날  잠들기 전에 여자가 “여보, 내일은 팬케이크 먹지 말자.” 하고 얘기했거나 남자가 “여보, 내일은 팬케이크 먹지 말자.”하고 얘기한 경우일 겁니다. 그런 경우에는 정통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나 된장국이나 계란죽이나 간장계란밥 같은 것들을 먹었습니다. , 남자는 항상 여자의   정도 먹었습니다. 여자가 조금 먹는 것이죠. 남자가 많이 먹는  아니라요.

 아침을  먹으면 남자는 커피를 내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잠시 운동을 했습니다. 점심으로 열무냉국수를 먹고 닭장을 고치고 텃밭을 돌보았습니다. 이건 여자도 같이 했습니다. 해가 떨어지자 최신 마샬 스피커로 좋은 음악들을 틀었습니다. 예를 들면 새소년의 <난춘>이나 씨잼의 미공개곡들이요. 음악은 부드러운 구름처럼 흘러 마당을 푹신푹신하게 채웠습니다. 남자는 와인을    마시면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저녁은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둘은 손잡고 산책을 했습니다. 물론 강아지들도 함께요. 소주도   먹었겠다. 둘은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부부도 죽었습니다. 남자가 먼저 죽었는데 아마 젊어서부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을 겁니다. 남자는 그래도 치매가 오지 않은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조용히 집에서 죽었습니다. 여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없네요. 왜냐면 제가  남자였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은 뒤의 일은   없죠.
 남자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글도  이상 쓰지 못합니다. 남자의 글을 이어받은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구름입니다. 저는 항상 하늘에 떠서 모든 일들을   있답니다. 남자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려구요.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남자가 죽고 얼마  가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죽는 ,  마리의 고양이가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개의 집에서 태어났는데 무려 바로 옆집이었습니다. 야마구치 현의 ‘하기라는 마을입니다.

  마리는  털을 가진 암컷으로,  개의   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양이가 태어난 집에는 집만큼 오래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그만 스무   배낚시를 갔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할머니는 고양이에게 눈이라는 뜻의 유키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유키는 특히 털이 빽빽하고 부숭부숭 했습니다. 화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자신의 털을 힘껏 부풀려 몸집이  배가 됐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홀홀 웃으면서 참치캔을 줍니다. 유키는 참치를 맛있게 먹고 다시 원래의 털로 돌아옵니다.  짓을 하루에   정도 합니다. 유키가 살고 있는 집은 낮은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을  집을 ‘마당 넓은 이라고 불렀는데, 잔디가 촘촘히 박힌 마당은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격렬한 배드민턴 경기를   있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그러나  좋게도  마을에는 혈기 왕성한 청년 같은  없어서, 마당은 전부 유키와 그녀의 가족들, 가끔씩 놀러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차지였습니다. 할머니는 마당 구석에 놓인 버드나무 아래 흔들의자에 앉아서 녹차를 홀짝이며, 마당에서 고양이들이 뒹구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마리는 수컷으로, 등의 털은 갈색, 배는 하얀색인데 등에 진한 갈색 줄무니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낡고 평범한 2층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유키가 태어난 집의 옆집입니다.   집은 엄마, 아빠, 대학생 , 중학생 누나, 초등학교 2학년 막내 남동생까지 5명의 대가족이었습니다. 막내 남동생이 고양이에게 ‘식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식빵은  이름이 싫어서인지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식빵이 태어나면서 식빵의 엄마는 출산 휴유증으로 죽었고, 집주인이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식빵의 형제자매들은 이리저리 팔려갔습니다. 식빵은 종종 초등학생 2학년 밖에 되지 않는 막내를   할퀴어 울렸습니다. 그럴 때면 중학생 누나가 나타나 식빵을 빗자루로 때리며 밖으로 내쫒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잦았기 때문에 식빵의 얼굴이나 몸엔 갈대같은 흉터들이 많았습니다. 식빵은   생선구이를 훔치거나, 인간 엄마가 아끼는 화분을 쓰러뜨리거나, 소파의 배개나 서재의 책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그리곤 매를 맞고 쫒겨났는데, 식빵의 표정을 보면 속으로 ‘퉤엣! 드러운 놈들. 니들 멋대로 해라.’ 하고 외치고 있는  같았습니다. (2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폰 부순 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