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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 Nov 10. 2024

전화는 두렵다

그랬는데, 더 그래졌습니다.

나는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 채 전화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내게 있어 전화한다는 행위는 군가의 어떤 상황을 허락없이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다. 중요한 상황을 내가 깨뜨리진 않을까,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까,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가혹한 일이었다. 첫 연애 초반에로 인한 갈등도 있었다. 내 쪽에선 오랜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었건만 다음에 전화하겠다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을 때-상대방은 전화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을테고 전화가 두려웠던 내 마음 상태를 알 리가 없었지만, 다 차치하고 내 일생만 두고 보았을 때는-전화하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나는 전화가 두려운 '콜 포비아'다. 이런 나를 진작 알았기 때문에 업무 전화로 해야하는 전화 상담원 직군은 나의 희망 직업군에서 일찍부터 제외되었다. 그 밖에도 운동선수, 연예인, 스튜어디스 등 여러 이유로 불가능한 직업군도 줄줄이 제외되었다. 


그 후 여러가지 생각과 고민과 고려, 그리고 시험을 거쳐 나는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교사도 전화를 무척 많이 하고 많이 받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교사가 이렇게 전화를 많이 하는 직업인 줄 미리 알았다면 분명 나는 진로를 다시 생각해봤을텐데.


교사가 전화를 한다는 건 주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학습에 큰 어려움이 있거나 애를 써도 생활지도가 되지 않는다거나 싸웠거나 다쳤거나 아프거나 거의 그 중 하나다. 콜 포비아인 나는 혹시 머릿 속이 하얘질까봐서 할 말을 생각해서 미리 대본처럼 적어두고, 그러고서도 전화기 앞에서 아주 한참을 망설이다가, 큰 결심을 하고서 수화기를 들곤 한다. 3분 여의 통화를 위해 근 30분을 쓴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아이들이 싸우면 싸운 대로 다치면 다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 상황을 전하는 나는 왜인지 죄인이 다.


언젠가 폭력이 높은 아이의 학부모님께 담을 위해 문을 요청드렸다가 고성과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느냐며 쌍시옷을 곁들인 욕을 소리높여 했다. 나는 그 때 임신 중이었다. 옆에서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남편은 끊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놈의 예의가 뭐라고 끝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듣고 있었다. 바보 같이. 후회한다. 끊었어야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고열이 나는 경우 귀가 조치가 원칙이던 시기, 고열로 귀가 조치했던 아이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더니 학부모님은 애가 열 나면 내가 며칠이고 애를 봐야하느냐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야 하는 시기였지만 기름붓는 격일까봐 그 앞에 그렇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내 속이 너무 상해서 교감선생님께 갔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내게 그동안 좋은 학부모님만 만났었나보다고, 그런가보다 하라고 위로해주셨다. 그 날 밤 그 학부모님께 문자를 받았다. 자신이 지나쳤던 것 같다고. 다음 날 걱정되어 물어보시는 교감선생님께 사과 문자 받았다고 말씀드렸더니 화는 전화로 내놓고 사과는 문자로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뒤늦게, 아 그러네 싶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은 나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래서다. 상대방의 반응이 또 어떠할지 모르니, 전화기 앞에 설 때 나는 일종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반대의 경우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개인적 으로 돌아가고 싶어 업무 전화를 받고 싶지 않지만, 정작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받고 만다. 원안심번호가 도입되기 전, 대학원 가는 길에 전화가 와서 대학원 건물 주차장에서 전화를 받았다가 한 시간 수업을 그냥 날려보낸 적이 있다. 불안이 높은 학부모님일 수록 전화도 잦고 길었다. 한참 늦은 시간에, 심지어 주말에도 전화해서 본인이 자주 깜빡하곤 하니까 생각난 김에 한다며 중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은 질문을 하거나 요청을 하실 때면 교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지곤 했다.   분의 다이어리가 된 것 같달까.


세상 모든 영역이 그러하겠지만, 학부모님들도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좋은 분들이 대다수이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맘 졸이며 어렵게 건 전화에서 보람을 찾기도 했고 때로는 다시 걸어갈 힘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화기 앞에 설 때마다 미지의 상황과 미지의 반응이 엮어낸 불안을 견디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쉽지 않아도 앞으로도 내 일상엔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는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며 그 일상을 꾸준히 살아가야 한다는 앎이 요즘은 좀 무섭고 전보다 조금 더 버거운 듯하다.







#PD수첩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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