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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Feb 16. 2023

엄마에게도 자기만의 책상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방이면 더 좋고

아이를 낳고도 포기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방 한구석에 자리한 나만의 책상이다.      


인스타나 다른 SNS를 보다 보면 장난감과 책으로만 채워진 아이만의 공간이 있는 집의 사진이 눈에 띄곤 했다. 환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며 ‘방 하나를 아이 방으로 꾸며볼까?’ 하는 생각이 더러 들기도 했다. 아이만의 공간을 예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어렸을 적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나만의 방을 내 아이에게는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어떤 그림이 그려진 벽지를 붙여 줄까? 안에는 어떤 장난감을 놓지? 어떤 책장을 놓을까?’ 등등 머릿속에 아이의 방 풍경을 그려보곤 했다.      


이 정도면 아이 놀이방을 하나 내어줄 법도 한데 결국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는 더더욱 그 공간이 필요해지리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공간을 지킨 덕에 조금이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 혼자 사용하는 방은 아니다. 남편이 다리 마사지를 하며 컴퓨터 게임을 하는 방이기도 하고, 아이가 책상 서랍을 다 헤집어대며 놀이하는 방이기도 하다. 잠시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진,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리 복잡한 방도 새벽이면 고요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잠시 다른 사람들과 단절될 수 있는 공간. 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공간, 나만의 책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     


김미경 학장님의 유튜브 대학에 입학해서 커뮤니티 활동을 했을 때 책상 사진을 올리는 카테고리에 자주 들락날락했었다. 공부하고 싶은 이들, 성장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고독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함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여러 책상 사진을 보았는데 방 한구석에 자리한 자기만의 책상 사진을 볼 수도 있었고, 종종 뻥 뚫린 거실의 테이블, 정면에 거실이 보이는 부엌에 있는 식탁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진 식탁에서 주로 책 읽고 글을 썼다. 우리 집 식탁은 정면으로 거실과 안방이 보이는 곳에 있다. 결혼하자마자 갖게 되었던 나만의 책상과 공간이 있었지만 그곳엔 아이의 물건이 쌓여 있기도 했고, 아이가 낮잠도 짧게 잤기 때문에 식탁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깨면 바로 튀어갈 심산으로. 식탁 위에 펼쳐진 책이나 노트북에 눈을 두기는 했지만 마음이 여러 번 흐트러지곤 했다. 몰입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내 맘 편하자고 식탁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지만(게다가 이렇게라도 좋아하는 일에 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나만의 책상이 자꾸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식탁 위를 점령했던 내 책들

내가 아이를 품은 후부터 내 인생의 화두는 ‘독립’과 ‘자유’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언젠가는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하게 될 텐데. 그때 아이에게 매달리지 않고, 아이보다 내가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나’를 잃지 않아야 했다. 일상 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 훅 밀고 들어오는 온갖 질문들에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저 분주하게 지내다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면 그것들이 점점 실타래처럼 엉기고 설켜 내게 주어지는 일상의 자극들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테니까.     


결국, 나는 하루 시간을 내어 내 공간을 되찾았다. 아이 물건 중 앞으로도 쓸만한 것은 거실로 빼냈고, 안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 물건들은 중고 장터에 팔았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책들도 당장 읽을 책과 나중에 읽을 책, 바로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으로 구분하여 책장에 정리했다.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책들을 제자리에 꽂고, 먼지와 오염물질이 묻은 공간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서 내 공간을 보니 어찌나 기쁘던지. 빛과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음이 신경 쓰여 새벽 시간에 식탁에 앉지 못했던 나는 맘 편안히 나만의 공간에 자리할 수 있었다.      

다시 찾은 내 책상에서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나만의 정신적 공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는 갖기 어려우리라 판단했다. 특히, 나는 소음과 번잡함이 가득한 공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더욱 조용한 공간을 갖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자에겐 깊어지는 생각에 잠길 여유가 더욱 없으니 워킹맘의 일상에서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책상을 갖고 싶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책상.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내게는 이렇게 중요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애쓸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주는 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나만의 책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 모든 엄마가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주위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차단할 수 있는 나만의 책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우리, 그만한 권리는 좀 누려도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타이핑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조용한 책장 넘기는 소리에 취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루 24시간 중 단 30분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도 행복하다. 이 공간은 독립된, 자유로운 나 자신이 되어 살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앉는 공간이라 그 어느 공간보다도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내게 허락된 아주 작은 공간.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나를 이토록 자유롭게 하는 공간. 나는 이곳에서 매일 나와 만난다. 이곳에서 나를 잃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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