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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내가 발을 딛는 곳의 닻이 되어

by 연하일휘 Mar 07. 2025

비가 내린다. 언제나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짧은 여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고향은, 바다가 전해주는 습도에 빗소리를 더해 무사히 귀환했음을 반겨준다. 익숙한 공기에 맞닿으며, 짧게 보냈던 시간들이 꿈결 같다. 젖은 땅을 밟을 때에서야, 현실에 발을 딛는 느낌이다. 돌아왔다는 편안함보다는 아쉬움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감정을 눌러두며 나를 기다리는 한 존재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Pixabay



낯선 공간을 함께 걸으며 작은 대화들을 이어간다. 익숙한 목소리지만, 기계음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는 다정하다. 흔히 보이는 익숙한 카페에서 궁금했던 음료를 하나 구입해 나눠 마시며 재잘거린다. 저번에 먹었던 어떤 음료와 비슷하다거나, 혹은 어느 게 더 낫다거나. 시답잖은 대화들일지라도 낯섦 속에서는 신비롭게 다가온다.


핫도그 하나를 오물거리다, 단팥 도넛 하나를 반으로 갈라 달콤함을 입안 가득히 담아본다. 평소라면 사 먹지도 않았을 간식들인데.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지나간다. 낯설지만 익숙한, 익숙한 이와 새로운 것들을 마주 하는 시간들은 작은 만족감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간다.


"네가 올 때마다 신기하게 날씨가 좋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이 오며 영하로 떨어졌던 날씨였다는데. 바로 전날 제주도에서 느꼈던 기온보다 더 따스했다. 잘 왔다고 날씨도 환영해주나 봐- 함께 웃음을 터트리며 길을 거닌다. 이전에 왔던 이곳은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울을 지나가는 지금은 나뭇잎들을 다 떨어트린 채 앙상한 갈빛들이 가득하다. 짧은 여정에 여러 일정들을 끼워 맞추느라 피로를 느꼈었건만, 걸음마다 아쉬움이 묻어난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시 떠나는 감정은 공간에 대한 감각만은 아닐 거야. 함께 있는 이와의 시간들이 묻어났기 때문이지.





어두운 저녁, 비행기를 올라타자 여러 감각들에 눌려있던 피로가 올라온다. 차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창밖의 풍경을 가린다.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야경과 같은, 그 익숙한 정경은 떠남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흔들림 속에서 짧은 잠을 청한다. 간간히 눈을 뜰 때마다 희뿌연 구름 속을 뻣뻣한 날개로 휘청이는 기체의 덜컹거림을 느낀다. 도착한 고향은, 빗방울의 습도와 더해져 작은 더위까지 느껴지는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얇은 빗방울들이 천천히 옷자락을 적신다. 발아래로 찰팍거리는 빗물의 소리가 여행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며칠간의 부재로 낯선 냄새가 가득 차 있다. 미리 여동생이 데려다준 강아지가 곤히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 품으로 감싸 안는다. 며칠 만에 보는 누나의 존재에 할짝거리며 품으로 파고드는 녀석을 쓰다듬으며 보고 싶었던 감정들을 쏟아붓는다.


나는 떠나고 싶었구나. 집이라는, 고향이라는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 싶었구나. 이 아쉬움은 짧은 즐거움의 끝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내가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존재를 품에 안으며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다시 되새긴다. 내가 발을 딛는 곳의 닻이 되어, 서 있어야 할 곳을 알려준다. 짧은 일탈이 끝이 났다. 이제 다시 현실로, 삶 속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작은 존재의 작은 심장 소리를 전해 들으며, 아쉬움을 다시 시작하는 힘으로 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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