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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Mar 27. 2021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교사의 옷 이야기

입을 수 있는 옷에서 멋 내기


  교사가 되기 위해서 교육학 학점을 이수한 학생들은 누구나 전공과목으로 대학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가야 한다. 이 한 달 간의 현장실습 학점 이수는 교원 자격증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난생처음 학생들 앞에서 교사가 되니 그 흥분과 두근거림은 전날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이다. 불과 3년 전에 학생으로 공부했던 고등학교에 교사가 된다니~~ 그것도 남학생들을 만나러 간다 하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재킷이나 코트 정도 걸치고 달랑거리고 학교를 다녔던 내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알 수가 있나? 겨우 생각나는 것은 여고 시절 여자 선생님들이 입고 다니던 옷 정도였을 뿐. 그 옷이 현재의   트렌드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각자 상식대로 입어야 한다. 교생 실습을 위해 부모님은 백화점에서 값비싼 정장 한 벌을 사 주셨지만 그 걸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멋쟁이가 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단벌을 고집하자니 초라해서 싫고 뭐 그런 종류의 고민이다. 청바지는 정장이 아니라는 편견이 지배적인 학교에서 그동안 입고 다니던 청바지는 청색이라는 이유로 다 아웃이었다. 셔츠도 재킷 없이 입어서 무난해 보이는 옷은 아니다.


  이 점에서 남학생들은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듯 싶었다. 대학 때 전공 교수님들은 거의 중년의 남자분들이셨고 몇 벌의 양복으로 한 계절이 지나갔다. 남자의 옷은 양복이라는 세트로 완성되면 끝이므로 그 안에서 타이와 셔츠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일단 기본 프레임에서 시작하는데 그 타이 하나만 바뀌어도 마치 상의를 갈아입은 듯한 새로움을 줄 수도 있다. 어차피 그분들의 양복 재킷 속에 와이셔츠는 지금과는 달리 거의 흰색이었으므로 2~3장의 와이셔츠만 있어도 별 신경 안 쓰고 지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여자들의 정장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

대학시절부터 입은 사복의 햇수만 해도 이제 뭔가 어울릴 옷을 찾을 만 하지만 정장을 입어 본 적이 제대로 입어 본 적이 없었으니 그동안의 옷 입어 본 경험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된 것일까? 아니! 그래도 초라해 보이지 않고 없어 보이지도 않게 새내기 교사로 멋 내는 방법도 있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베이식한 무채색의 바지 두어 개와 평소 입지 않는 저렴한 타이트스커트를  샀다. 대학 때 페스티벌에 가느라고 구입한 의상을 보태면 졸업할 때쯤 대충 치마 정장을 두 어벌 사게 된다. 가지고 있던 케쥬얼한 정장에 재킷, 조끼, 면치마, 하얀 면블라우스, 체크무늬 남방을 합쳐서 뭔가 정장스럽게 입을 방법은 없을까?


  그때 생각난 것이 코르사주와 액세서리이다. 티셔츠 위에 펜던트 같은 심플한 목걸이나 블링블링한 여성스러운 줄 목걸이는 이너웨어를 매우 여성스럽게 변신시켜 준다. 똑같은 재킷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심플한 면 폴라 넥 티셔츠에 반짝거리는 딱 붙는 목걸이나 귀고리해 주는 것도 단정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업시켜 준다.




  케쥬얼한 남방의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무난한 갈색이나 검은색, 핑크색의 코르사주 옷핀을 해 주고 플레어스커트 안에 넣어 입고 벨트를 해 주면 제법 정장스러웠다. 청바지는 케쥬얼이라고 생각하니 검은색이나 브라운색 일자 면바지를 입고 벨트를 매어 준 다음에 심플한 재킷  안 셔츠에 목걸이를 하고 나타나면 오케이였다. 재킷은 돈이 들었지만 니트는 크게 돈 들지 않고도 예쁜 색깔로 몇 개 구입이 가능하니까 카디건도 적절히 활용했다.


  입어 보니 팔을 들고 판서할 때 이 니트만큼 편한 옷이 없었다. 어딘가 모서리에 흠이 나 있는 책상 옆을 지나갈 때 금방 스크래치가 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옷감보다는 튼튼하고 가격도 대중적인 면 스커트가 딱이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칼라에 스카프를 매어 주면서 관리자들이 흐뭇해하는 더 여성적인 스타일로 연출도 가능하다. 스카프 매는 법은 알다시피 무궁무진하다. 모르는 사람은 한 번도 어색하고 잘 연츨하는 사람은 블라우스를 대체한다고 하는 스카프의 매직이다. 스카프 매는 법을 가르져 주신 중학교 때 가정선생님께 감사하는 순간이다. 때로 우리는 교과서보다 잠재적 교육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미드 호프 밸리에서 교사역을 맡은 주인공 엘리자벳의 서부개척시대 여교사 복장으로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게 교생실습을 하면서 익힌 교사들의 정장에 대한 이해로 일터에서 나는 큰 욕심 안 내고 내 옷에 적응할 수 있었다. 입고 싶은 옷과 입어야 하는 옷에 대한 괴리감이 젊은 시절 나를 짜증스럽게 했지만 유행을 타지 않아  이런  옷에는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쁜 점은 친구들과 만날 때 외출복을 따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일터에서 입는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가면 세상의 변화를 모르는 고지식하고 건조해 보이는 겉늙은 여자가 될 수도 있었다.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을 적절하게 장소에 따라 활용해야 양쪽에서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때 그 시절 나는 어디서나 초라해 보이기 싫은 당당하고 싶은 청춘이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 3~4년차가 되자 슬슬 이 옷차림의 한계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여름이면 슬리브리스가 대유행인 시절도 있었고 긴 스커트를 사기도 어려운 미니스커트가 대세일 때도 있는 법! 무엇보다 남교사들의 옷차림에는 별 말이 없는 분들이 유독 여교사들의 옷차림에는 한 마디씩 하고 싶어 하는 데에 대한 이유 없는 반감도 있었다. 그분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춘기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거였다. 교사가 여자로 보이면 안 된다는 뭐 그런 말씀을 하시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남자의 입으로 하기엔 점잖지 않은 듯하여 당시 중견 여교사에게 대표로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시곤 했는데 정작 같은 여자인 그분들도 아무개의 옷차림이 지나치다고 사사롭게 얘기는 할지언정 내놓고 당사자에게 말씀하시는 건 싫어한다. 그만큼 여자들에겐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가 몹시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발끈해지면 어느 날 우리는 모조리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기도 했고 슬리브리스의 짧은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다가 후다닥 교실로 뛰어 가기도 했다.


  이렇게 트렌드를 쫓고 싶은 미혼의 나에게 내 일터는 제한적인 옷차림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었지만 결혼과 더불어 옷에 대한 내 인식도 바뀌게 된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아이들이 어느새 내 아이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온다.  학부모와의 유대가 쌓이고 아이들이 자식같이 여겨지기 시작하면 옷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편한 옷이 편해지고 내 옷보다 아이들 옷에 더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전에는 스트레스였던 것이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밖에서는 촌스러운 의상 일지 몰라도 이 안에서는 특별히 유행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보다는 자연스럽게 활동이 편하고 통이 넓은 일자바지를 선호하게 되고 스커트보다는 바지 정장을 즐기게 된다. 어쩌다 선택하는 스커트는 A라인의 플레어스커트 아니면 맞주름의 개더스커트가 된다. 그래서 A라인 코트와 스커트는 한 때 내가 애정 하는 아이템이었다. 허리 라인을 강조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여성스러우면서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손그림 108호>


  경력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교복 지도를 하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경계도 저절로 생겼다. 남녀공학의 중고에 근무할 때 여학생들의 교복을 지도할 때면 현장실습(?)을 시키곤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올라갈 때 아래에서 보일 수 있는 범위의 정도라든가 스커트를 입고 앉아 있을 때 앞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민망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르기 마련이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친구를 시범조교로 해서 모두 교탁 앞이나 출입문 앞에서 교실 쪽을 바라보게 한다. 함께 서서 시선을 아래로 향할 목격할 수 있는 뜻밖의 예상치 못한 노출에 그 아이들은 당황스러워 하기 마련이다. 문제점을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



  론 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많은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노출로 인해 여성들이 성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표현의 욕구를 어떤 기준으로 제한한다는 것도 인권의 차원에서는 온당하지 않다. 단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미성숙한 아이들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일이 많다.


  실제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너나 할 것 없이 페이스북의 일원이 되기 시작하면서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학생들의 신체 일부를 찍어서 파일로 공유하는 몰지각한 일이 가끔 일어났고 그 아이들은 엄중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알다시피 파일 공유의 파장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수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부장 2년에 얻은 산지식에 의하면 대응법보다 예방과 자기 방어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다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한창 활동적인 나이에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들이 다리를 모아서 앉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개인적으론 남녀가 다 바지 교복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여건상 안된다면 여학생들의 책상은 필히 앞이 막혀서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요즘 앞이 막힌 책상이 많아지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학교에 따라 겨울에 치마 안에 운동복 바지를 입게 허용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센스 있는 학생들은 무릎 담요를 잘 활용한다. 정작 여학생에게 겨울에도 바지를 허용하고 나서도 대다수  여학생들이 스커트를 원하는 것을 보면 역시 멋이 그 나이에는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하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


  적당한 캐주얼한 정장을 입고 일하더라도 교사에게 반듯한 정장을 입어서 득이 되는 날이 있다. 그 건 바로 시험감독을 해야 하는 시험 시즌이다. 교사의 옷차림이 편안해 보이면 시험장의 아이들이 마음의 끈을 느슨하게 풀 여지도 있으니 그 날 만큼은 나는 법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듯 정장을 입는다. 불필요한 말은 삼가야 하고 어느 정도는 감독자와 수험생은 거리를 느껴야 서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 외에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도 가급적이면 정장을 입는다. 주말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월요일은 학생이나 교사나 마음을 다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라도 마음을 추스르려고 정장을 입어보는 것이다. 대체로 회의가 월요일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장이 여러 모로 편리했다. 진지한 업무 이야기를 할 때는 격에 맞는 의상이 정서적으로 힘이 된다. 학부모와 상담하는 날, 공개수업을 하는 날, 출장 가는 날 등 살다 보면 알아서 정장을 해야 할 날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생기고 점점 더 많아지기도 한다.


  세월이 가면 이제 스스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가늠이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을 때는 정장을 하고 싶어 진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옷차림이라고 한다. 자신을 잘 가꾸는 일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다. 대체로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어울리는 단정한 옷차림에서 우리는 상대방에게 매력과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은 대체로 아무렇게나 입지는 않는다. 편하게 입었어도 그 사람만의 옷의 철학이 있고, 그 옷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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