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느 Mar 31. 2021

겁내지 않고 살아도 된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리뷰


그림 유튜버 이연이 쓴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는 그림을 대하는 마음이 과연 어떤지 궁금했다. 힐링과 자존감 수업으로 시작한 손그림이 아니면 유튜버 이연은 모르고 살았겠지. 그림을 취미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평생 관심 둘 일이 없었을지 모르는 사람이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보게 된 그녀의 유튜브에서 "이렇게 그려도 그림이 되는구나. 편하게 그려도 봐줄 만 하구나. 같은 선인데도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그런 마음으로 연속 몇 편을 보았다. 요즘 따라쟁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내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부러워서 최근에 발행했다는 그녀의 책을 예약까지 해서 받아보게 되었다.


처음 받아 본 그녀의 책은 참 쪼그맣구나! 하는 느낌. 소박하고 겸손했다. 그녀는 할 말을 추리고 추린 모양이다.


이 책에서 자기의 감정을 내밀하게 추적하는 좀 색다른 글을 만나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이나 그림 그리는 사람은 대상에 대한 특별한 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잘 봐야 잘 써지고 그려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각인되지 않으면 필기도구나 그림도구를 마주한다고 내 앞에 재현시킬 수는 없다!


이연의 책은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숨김없이 따라 가 본 일기를 묶어놓은 것 같다. 사람들이 남은 잘 관찰해도 나를 그렇게 진심을 담아 객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아니 보기가 어렵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내 경험을 빌자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되는 20대에는 비난 일색이든가 나이 들어가면서는 자신에게 너무 관대 해지든가 아니면 자신을 바로보기가 두려워진다. 일기란 쓰기는 쉬운지 몰라도 남에게 내놓기는 참 어려운 책이다. 그토록 자물쇠를 채운 것이 다 이유가 있다.


그림으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두려움을 넘어 뚜벅뚜벅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그림에 대한 진지한 열정에 이끌려 손에 들게 되면 끝까지 보게 될 책이다. 다 읽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단 당신이 그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면 절대 끌리지 않는 책일 수도 있다. 왜 그런 일에 그토록 몰입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마치 남편이 좋아하는 당구를 내가 아무 흥미도 못 느끼는 것과 비슷하겠지만...


적당히 살지 못하고 직장에서 눈치도 챙겼으나 모범생으로 꾸역꾸역 살다가 내 마음 가는 대로 프리랜서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던 20대의 직장인으로 이 글을 쓴 그녀는 30세의 프리랜서가 되어서 이 책을 탈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구절이면 무엇을 품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림으로 돈 벌 자신 있어? 미래는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 정도 재능은 널리고 널렸을 텐데 그걸로 되겠어? 그런 아픈 질문 뒤에 얻은 건 무명을 즐겨라~ 이건 언젠가는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지금 내가 자유의 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나는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p18~23

나 역시 학창시절  "너 그림 한 번 배워볼래?" 이란 제의를 미술 선생님에게 받고 쫄랑쫄랑 따라간 미술실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그림에 재미가 없었다기보다 내 재능과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 그것보다는 매 월 모의고사의 내 석차가 더 신경 쓰이던 중학생이 보기에도 창작의 열정은 무모하고 목적지 없는 여행 같아 보였으니까! 지금도 이 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파트 파임 직업으로 내 그림을 그릴 자유를 살 결정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가려낸 후에는 한번 적극적으로 따라 해 보자. 따라 해 보면 느낄 수 있다.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감상과 이 사람은 역시 뭘 좀 아는 사람이었군, 하는 감탄까지. 좋아할 때 배우는 것이 1이라면 따라 하면서 배우는 것은 10이다. 나와 무엇이 어울리는지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안목은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점점 더 단단해진다. p101

경험과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내가 보는 형태와 내가 그릴 수 있는 형태의 엄청난 괴리를 느껴 보면 그림에 대한 예의가 생긴다. 따라 해 보면 아는 만큼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을 직접 그려 보니 잘 그리려고 하면 먼저 잘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잘 보지 않으면 형태의 왜곡을 스스로도 참기가 어렵다.


삶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모서리에서 나는 누구든 곁에 머물러줬으면 했다. 아주 쓸데없는 주제로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잊히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에 연결되려면? ~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를 시작했다. p 119


아이폰으로 자신의 습작을 찍기 시작한 그녀의 유튜브는 그 후에 대박이 났다. 결국 내 안에 있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다듬는 것도 내 몫이다. 외롭지 않게 살고 싶다면 나를 꺼내어 세상에 내놓아 봐야 한다는 것.  아무도 내 그림에 줄을 서지 않는다면 스스로 뭐가 문제인지 되짚어 보며 다시 그림을 그리고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이 잘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 멧집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같은 일을 해 보는 것이 용기이고 아티스트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야속하게도 생전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아티스트들이 그래서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던 것일까?


그래서 평범한 사람은 같은 일을 2~3번도 해 내지 못하고 아니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매우 현명한 사람들이다. 그는 적당히 일하고 눈치를 챙길 줄 안다. 안전한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밥벌이로는 괜찮은 직장에 이만하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만두는 날까지 자신을 달래가면서 오랫동안 버틴다. 삶에 감사는 할지언정 나를 불태우는 열정에 아낌없이 시간을 바쳐 본 기쁨을 누리지는 못한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 이생은 폭망했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목적지로 잘 가는 기차에서 내려 버렸다.


스마트폰의 알림을 끄고 그림을 그려 보았지만 그렇다고 각자의 베이스가 다를 텐데 갑자기 금손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전에 알지 못한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토록 오래 해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시간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는 되었다.  남의 진심을 알아주기도 쉽지 않지만 나의 진심이 뭔지도 알아주어야 되지 않을까?


꼭 뭐가 되어야만 행복하지는 않다!


뭘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진심으로 나에게 물어봐 주지 않는다. "아무렇게나"라고 대답하는 순간 당신의 진심도 저 멀리 어딘가에 던져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남의 의도에 맞추어 나를 내려놓고 살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때늦은 분노에 주위 사람만 당황할 뿐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란 제목이 내게는 <겁내지 않고 사는 법>으로 들린다. 이 당당한 젊음이 부럽고, 조그마한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연은 신선하고 힘이 있었다. 꿈보다 생계를 선택했던 우리는 90년대 자식들의 당당한 꿈을 응원해 줄 만한 멧집이 생겼을까 나는 그런 질문도 해 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을 내려놓으면 당신도 사악한 여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