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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Apr 06. 2021

짧은 단발머리의 재발견

그때그 시절 추억여행 3

여학생들의 머리가 자유롭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머리 길이를 둘러싼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귀 밑 머리 길이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더 기르고 싶어 했고 길면 묶어야 한다는 규정을 둔 시절도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단발머리로 짧게 자르는 것이었다. 귀 밑 1 센티 같은 규정에 맞추어 미장원에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다.


중학교에 가면 머리를 못 기른다는 얘기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실컷 머리를 길러 본다고 긴 머리를 리본으로 한 번에 묶어서 달랑거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짧은 단발머리는 우리에게 청소년기로 가는 통과의례 같은 거였다. 물론 아예 빡빡 깎고 모자를 쓰고 다녔던 남학생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소위 긴 머리에서 덕을 보는 쪽에서는 똑같은 머리 스타일로 인해 평범(?) 해지는 것 같은 손해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막 머리를 자른 짧은 단발머리의 중학교 1학년 때 증명사진이 지금도  앨범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 사진을 아무에게도 안 보여 주려고 꼭꼭 숨겨 두었었다. 뭔가 갑자기 못 생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나이 들어서 그때 사진을 보니 정말 귀엽고 조그마한 어린 소녀가 사진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보기만 해도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남학생들도 중학생이 되면 짧은 머리를 보여 주기 싫어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녔다. 머리를 홀랑 깎고 잘 생겨 보이기가 쉽지 않으므로 사실 남학생들은 바람 불면 모자가 벗겨질 세라 걱정했을 터.


그 빡빡이가 된 아이들이 가엾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는데, 서로가 변한 얼굴에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별도로 사용하고 운동장 조회 때는 성별로 반이 나뉘어 있어서 운동장에서 흩어지거나 모일 때 예전 남자 동창들의 얼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특히 체육시간에 모자를 벗은 남자 동창들의 얼굴이 얼마나 웃겼는지 오며 가며 흘끔흘끔  보다가 우리들만의 교실에 들어오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깔깔 웃어댔다.


그 당시 우리들의 단발머리는 앞머리가 눈을 찌르거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는지 앞머리를 기를 수 없었다. 앞머리를 깐다는 것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나 -앞이마가 동그랗게 이쁘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앞머리는 길러서 검은색 핀을 이용해서 귀 위에서 단단히 고정시켜야 했다.  그럼에도 앞머리를 짧게 잘라서 핀 아래에 숨겨두는 멋쟁이 언니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가끔 소위 깻잎 머리를 아예 내놓고 다니는 언니들은 날카로운 눈빛에 예사롭지 않아 보여서 괜히 슬금슬금 피해 다니기도 했다. 앞머리를 기술적으로 잘 숨겨두어서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이 여학생들은 끈질기게 앞머리를 자르고 숨겼다.


중학교 시절엔 어쨌든 3년 내내 단발이었으나 고등학교에 가면 머리를 더 기르는 것이 허용되었다. 대신 머리가 길어지면 양갈래도 묶어야 하고 그보다 더 길면 땋아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엄청 부러운 일이어서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하얀 칼라를 단 블라우스에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같은 색깔의 가방을 한 손에 든 여고생들의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마 머리를 길러서 뭔가 해 본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었으리라.


그 후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땋아내리는 헤어 스타일은 두발 자유화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 나와 내 친구들은 한동안 다들 자신의 얼굴형과 신체 비례와는 관계없이 머리를 마음대로 기르는 자유를 오랫동안 즐겼다. 단발이나 커트를 하는 경우에도 펌으로 웨이브를 만들어서 예전의 스트레이트 숏 단발은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니 바쁜 아침에 긴 머리를 손질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츰 긴 단발을 선호하게 되고 뭔가 결심하게 되는 시즌엔 짧은 단발이나 커트를 하기도 했다. 이 단발머리에는 웨이브보다 스트레이트로 찰랑거리는 편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스트레이트 펌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옆가르마에 찰랑거리는 짧은 단발머리는 사람을 단정하고 산뜻하게 보이게 한다. 그런 날  메이크업살짝 힘을 주면 어딘가 멋스러운 여인이 된다. 살짝 웨이브있는 긴 앞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귀 뒤에 꽃아서 고정시키면, 고개를 숙일 때 살짝 흘러내리는 머리칼이 매력 포인트!


학창시절엔 개성을 죽이는 것 같던 단발머리가 직장여성이 되고 나서야 편리함과 산뜻한 분위기에 빠지게 된 것. 샴푸하는 시간 짧고 머리 말리는 시간도 줄어드는 데다가 머리 위 볼륨을 살려주면 얼굴을 작아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다. 키가 웬만큼 크지 않는 한 긴 머리는 동양인에게는 신체 비례에서 대개 불리한 편이다.  


숏 단발을 하면 목이 길어 보이고 전체적인 스타일이 개선된다. 약간 짧은 듯한 단발머리에 볼륨 컷을 하면 지적인 분위기의 매력적인 헤어스타일로 변신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 펌을 하고 다녔던 여자 교수님들은 별로 없었다. 스트레이트 단발 아니면 컷트가 그분들이 애정하는 스타일인 것도 경험에서 온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젊어 보인다는 이유로 나이 들어서 이 단발 헤어 스타일을 해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이트 펌에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샴푸만 하고 와도 저마다 반짝거리던 윤기 나는 단발머리는 젊음이라는 특별한 힘이 받쳐 주어서 가능했었나 보다. 문득 그 시절 기억 속에 저장된 짧은 단발머리에 나뭇잎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어대던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손그림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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