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길을 걸으렴
- 너의 길을 걸으렴 -
두 개의 달이 뜨는 아렌델 왕국.
두 개의 달이 서로의 자리에 머물다 하나로 합쳐지는 날.
오늘은 '뉴문'의 날이다.
아렌델 왕국은 이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아렌델 왕국의 자랑인 마가렛 꽃이 만발하는 봄이 다가오는 것을
축하하는 뉴문 축제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뉴문 축제는 왕실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이다.
많은 사람이 왕실 앞 광장에 이른 저녁부터 모였다.
평소보다 더 짙은 어둠이 깔린 하늘을 밝게 수놓은 색색의 불꽃과 각양각색의 전구는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광장을 따라 늘어선 요리 부스에는 왕실 요리사들의 특별 요리들로 군침이 흐를 것 같은 냄새가 진동 했고,
광장 중앙에는 왕실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저마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나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행복한 표정이 가득하다.
그 시각.
왕국에서 조금 떨어진 드리셸 마을.
화려한 광장과 대비되어 오늘은 유난히 더 짙은 어둠이 깔린 듯하다.
많은 사람이 집을 비워 칠흙 같은 어둠 속, 홀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언덕 위 작은 성의 2층 끝 방.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 새어 나오는 불빛이 왠지 서글프다.
2층 끝방에 닿을 듯한 마가렛 나무의 가지 끝에서는 지금 막 돋아난 듯한 마가렛 꽃의 새싹이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는데 정작 빛이 흘러나오는 방안에는 생기없이 창백한 얼굴의 여인이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고 그 옆을 날카로운 턱선이 인상적인 중년의 남성이 지키고 있었다.
" 나는.. 헬리움으로 갈 거야.. 아저씨! 저 좀 그곳으로 데려다주세요.. 아 아니.. 제 잘못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아닌 건 아니고요..."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한 시간째 횡설수설하는 창백한 여인이 내뱉는 아무 말에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고 간신히 대답해주는 중년의 남성은
" 오... 맙소사 !!! 엘라 !!! "
딸의 이름을 소리치는 여인을 보며 그만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딸의 이름을 외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다급히 엘라를 찾는 여인.
" 여보... 지금이에요... 어서... 내가 정신을 완전히 놓기 전에 엘라를 불러줘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요..."
참았던 눈물이 터지자 끅끅거리며 오열하고 있던 중년의 남성은 여인의 부탁에 힘겹게 잡고 있던 여인의 손을 놓고 뒤돌아선다.
시간이 멈춘 듯 방문으로 걸어가는 그를 부르는 여인.
" 여보 ! "
주저앉을 것만 같은 다리를 간신히 돌려 돌아보는 그를 향해
" ... 엘라를 부탁해요... "
아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아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엘라의 방으로 힘겹게 달려가는 그.
아빠의 무너질 것 같은 모습과 급작스러운 방문에 막 잠에서 깬 몽롱한 정신에도 엘라는 직감했다.
" 안돼 !!! 엄마 !!! "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침대에서 튀어 오르듯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엘라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내린 아빠.
타닥타닥
벽난로의 나무 타는 소리가 엄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듯 방문이 열리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더 이상 눈물 흘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멍하니 방문을 응시하던 엄마의 눈에 방문이 열리며 엘라의 얼굴이 들어오자 순간 따뜻한 빛이 스쳤다.
" 엘라야... 예쁜 내 아가... "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창백한 엄마의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
엄마에게 달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연신 어루만지는 엘라.
" 엄마... 아니지... 응? .. 나만... 두고 갈 거 아니지...? 이겨낸다고 했잖아! 내 곁에 있어 준다고 했잖아... "
간신히 부들부들 떨리는 딸의 손을 꼭 잡아주는 엄마.
" 시간이 없어 엘라야... 엄마는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엄마가 힘겹게 내뱉은 말에 고개를 흔들며 소리치는 엘라.
" 아니아니아니 !!! 가지 마! 엄마... 아직 아니야... 이대로는 아니야... "
원래 엄마의 약속대로라면 지금쯤 뉴 문 축제에 가 있어야 했다.
엘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에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커다란 불꽃이 막 터지고 있었다.
" 엘라야... 사랑하는 내 아가...
엄마가 곁에 없다고 해서 진짜 엄마가 없는 건 아니야...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늘 엄마는 엘라 곁에 있는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가 곁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마다 엄마는 정말 엘라 곁에 있을 거야...
엄마가 항상 네 곁에서 지켜줄 테니 너는 슬퍼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너의 길을 걸으렴.
엄마는 그러지 못했지만..."
힘겹게 말을 이어가다가 잠시 숨을 들이쉬며 딸의 얼굴 구석구석을 눈에 담는 엄마.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 엄마는... 그러지 못했어... 엘라야...
엄마는 용기가 없었고... 두려워서... 마음속의 소리를 끝까지 따라 걷지 못했어...
조금 더 안전한 길을 걸었는데... 결국... 이렇게... 병을 얻었잖니....
편하고 안전한 길을 오래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단 하루라도 진짜 '나' 로 사는 게... 그게 진짜 삶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네..."
알 수 없는 엄마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걸 참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엄마.
" 그래도 .. 엘라의 엄마라서 행복했어...
진짜 '나'로 살든 그러지 못했든 .. 모두 다 중요하지 않을 만큼
너를 키우며 즐거웠고 모든 날이 소중했어... 엘라야...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사랑... "
타닥타닥
마지막 불꽃이 타들어 가며 이내 사그라지는 장작불.
그렇게 온기가 사라졌다.
마지막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툭
차가운 엄마 손이 떨어졌고
엘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무너졌다.
창밖에는
지금 막 사라진 장작불의 온기가 하늘로 이동한 듯
짙은 어둠 속 유난히 슬픈 빛을 내뿜는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