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거나 웃기거나
1. 가만히 내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묻는다. "엄마 손톱이 왜 이렇게 울퉁불퉁해요? 엄마 손톱 아프지 마세요." 라며 호호 불어준다. 엄마가 너 손톱이 왜 이렇게 됐어 영양부족 아니냐며 마음 아파하셨는데 꼭 우리 엄마처럼 손톱 걱정을 해주는 딸이 고마워 와락 안아주었다.
2. "엄마 전기 코드 많이 꽂지 말아요. 불나요." 거실에 전자레인지, 아빠 핸드폰 충전기, 엄마 핸드폰 충전기, 조명등 코드가 꽂혀 있는 멀티탭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아빠 충전기와 엄마의 충전기는 빼놓았다. 커서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딸은 안전에 어지간히 신경 쓴다. 소화전이나 소화기를 보고도 지나치질 못하며 어쩌다 소방서를 지나치거나 소방차를 보면 굉장히 좋아한다.
3. "아빠 저쪽 방으로 가보자." 휴일 아침, 좋아하는 초콜릿이 올려져 있는 서랍장으로 아빠를 유도해서 "이게 뭐야?" 능청스럽게 물으며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손에 쥐었다. 일어나자마자 초콜릿 먹으려는 모습이 아빠 어릴 적과 똑같다고..
4.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친정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몽실이'를 참 좋아해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몽실이 보여주세요." 핸드폰 화면의 몽실이를 보며 손을 뻗어 만져준다.(실제론 무서워서 만지지 못한다.) 끊기 전 갑자기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아버지 술 조금만 드세요."라고 해서 말문을 막히게 하는 딸. 할아버지가 너의 말을 듣고 꼭 금주하셨으면 좋겠다.
5. "아기 때는 달래줬는데 왜 지금은 안 달래줘?" 마냥 응석 부리고 싶은 다섯 살. 틈만 나면 아기 흉내를 내며 달래라고 한다. 아기처럼 어르고 달래면 갑자기 "아기 아니야. 나 언니야." 돌변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아기와 언니 사이 그쯤인 거니.
아이가 커가면서 웃긴 말도, 감동적인 찡한 말도 많이 한다. 엄마가 주는 사랑을 더 넘치게 돌려주는 모습에 볼수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뱃속의 작은 '자두'였던 아이가 이젠 말도 자유자재로 하고 제 감정도 척척 표현하니 신기하고 또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비롭기도 하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눈과 귀에 잘 담고 글에도 잘 녹여내서 훌쩍 컸을 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다. 너를 만나 이렇게 신기한 경험을 했으며, 같이 클 수 있었다고. 우리는 같이 자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