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biana Nov 16. 2019

애틀란타로 가는 길.  

비행 에피소드


출발전 조업중인 항공기.  피지 난디.


아련히 들려오는 이소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음악인데..
나는 지금 어디인가! 이 음악은 무엇인가!
친히 꿈속까지 찾아와 요란하게 새벽을 알리는 알람은 언제나 그렇듯 반갑지 않다.
.
알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꿈속에서 빠져나와 기상 모드로 전환하는 시간은 오늘처럼 새벽 기상이라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이불 밖으로 한발 내딛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울 수가. 스누즈 설정을 하고 다시 눈을 감고 부비적 대다가  깊은 잠에 빠질까 두려운 마음에 이내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불속의 온기를 박차고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창문을 강타하는 강한 번개가 곧 들려올 강력한 천둥소리를 예고한다.
역시 예상대로 예사롭지 않은 천둥소리를 들으며 나 홀로 새벽을 연다.
천둥소리를 심하게 무서워하는 둘째 녀석이 잠에서 깰까 노심초사하며 비행준비를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연이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빗줄기는 하늘이 뚫린 듯 무겁게 그리고 굵게 쏟아져내렸다.

만석의 애틀란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멀고 먼 미국 동부.
꽤 이른 출근 시간도 비행에 대한 부담감에 한몫 보탠다.
객실 브리핑과 운항 브리핑을 마친 우리들의 표정에는 전쟁에 나가기 위해 실탄을 장전하는 군인과 같은 비장함도 엿보였다.

하지만 우리와 사뭇 다르게 거대한 덩치의 B747 항공기는 쏟아지는 비, 만석의 승객, 최장거리  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두를 비웃듯 엔진은 힘차게 돌았고 활주로를 신나게 달려 깃털처럼 가볍게 부웅 떠올랐다.
여전히 내리꽂듯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 기세가 꺾일 줄 몰랐고 기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도를 한껏 높이는 항공기는 어느덧 꽤나 높이 올라와있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세상과 단절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번개와는 관계 없으며 항공기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포착.


'콰과광~~~'
창문밖에 엄청나게 밝은 빛이 항공기 동체를 강타했고  굉음과 동시에 비행기는 요동쳤다.

이게 뭐야?
내가 앉은 점프싯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엔진 두 개를 은색의 불빛이 빠르게 감싸 안으며 순식간에 동체 표면으로 옮겨갔다.

10억볼트 번개였다.
함께 앉아있던 승무원과 놀란 눈을 마주쳤지만 승객 앞이라 애써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놀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번개가 항공기 동체에 정면으로 강타했기 때문에 전 캐빈의 승무원과 승객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번개가 항공기를 강타하는 순간 객실 전체에 천국으로 가는 하늘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비상착륙을 하게 될 것인가?
집에 남겨둔 애들이 셋이나 있는데..

안정 고도에 접어들어 벨트 사인이 꺼져야만 기장님과의 통화를 할 수 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창밖 엔진을 주시하며 혹시 이상반응이 나타나는지 살피며 태연한 척 했지만 걱정과 불안함은 감출 수 없었다.

번개를 맞고 안정고도에 접어들기까지 약 10분의 시간은 두려움 속에서 1시간처럼 느껴졌다.

내 비행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도 강력한 번개를 맞았고 경험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드디어 안정 고도에 접어들었고 기장님과 통화가 이루어졌다.
정말 정말 다행스럽게 조종실 내 계기판도 이상이 없고 엔진도 괜찮다고 하셨다.
곧이어 굉음과 흔들림에 놀랐을 승객들에게 이 항공기는 번개에 대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현재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팀장님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각 존에 퍼져있던 승무원들이 모였다. 다들 정통으로 강타한 번개의 모습과 그당시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얘기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항공기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평온하게 목적지를 향해 순항했고 우리도 곧 그 공포를 잊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바빴기에 그 공포를 기억할만한 뇌는 작동하지 않았다.

애틀란타에 도착하니 동기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나 네가 가져오는 비행기 받아가는데 무슨 일 있었어? 픽업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늦어졌어. 부디 아무 일도 없었길 바라.'

항공기 내부는 문제가 없으나 외부 점검도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하기에 출발시간이 늦춰진 것이었다.
물론 동기도 아무  이상 없이 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애틀란타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CNN이 내려다보이는 아틀란타 호텔방. 그리고 호텔근처 맛집에서 피맥.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다들 로또 하나씩 사야지~~!"

번개를 온몸으로 견뎌낸 비행기에게 감사하며 한국에 돌아가면 얼른 로또부터 사야겠다.
.

작가의 이전글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