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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Aug 21. 2021

운동이라 쓰고산책이라 읽다

운동과 산책, 그 중간에서 오키나와를 걷다.


"오늘은 운동하러 갈까?"


오키나와의 맛집과 경희의 근사한 집밥으로 허리와 허벅지에 쌓인 살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 때면 우리는 종종 운동을 하러 나섰다. 말은 운동이었지만, 사실 대부분은 산책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산책의 목적지는 보통 집 근처 해변이나 공원이었지만, 가끔은 더 시골길로 향해보기도 했다. 


작은 어촌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집을 조금만 벗어나도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5분만 걸어가도 그곳엔 푸른 바다와 사탕수수밭이 함께 펼쳐져 있었다.


조용한 시골길을 걸으면 미세한 감각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잔디와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 수수밭 옆 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밭에서는 비료 냄새인지 흙냄새인지 풀냄새인지 하는 것들이 풍겨왔고, 티셔츠 옆으로 흘러내리는 끈적끈적한 땀도 그때만큼은 기분 좋았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즐기기 위함이었을까. 대도시 대중교통의 바쁜 시간표에 맞춰졌던 내 걸음걸이는 여기 느긋한 오키나와의 시간 - 우치나 타임 - 에 맞추어 한발.. 아니 두발, 세발 정도 느려져 있었다. 



우린 종종 마을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 오기도 했다. 한적한 시골이라 그런지, 아니면 마을 중간중간에 위치한 묘지들 때문인지 (묘지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오키나와 동네의 뒷골목은 세상 조용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일상의 면면들이 보였다. 마치 조용해 보이는 바닷속 세상이지만, 가까이서 들어보면 온갖 바다생물들로 부산한 바다 같다고 할까. 동네 빵집에서는 부지런히 갓 구운 빵을 전시하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 보이고, 동네 곳곳에 있는 코인 론드리에선 빨래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유치원 앞을 지날 때에는 볕에 그을린 오키나와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반겨주고, 동네 목공소에서는 큰 나무를 가르는 톱질 소리가 들린다.


서양식 형태의 외인 주택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여기저기 다양한 모양의 집을 구경하러 다닌 것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집의 형태가 2개 있었다. 하나는 외인주택이라고 불리는 집인데 미군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으로 서양식으로 지어진 집이다. 특징이라면 지붕이 평평하고 벽돌 같은 것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아 심플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형태의 집은 테라스 하우스다. 이 집들의 재밌는 점은 2층에 야외 테라스가 있다는 거다. 어떻게든 실내 공간을 늘리는 게 좋지 않았을까? 저렇게 (짐짓 무용해 보이는) 야외 테라스를 두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는 외인 주택과 테라스 하우스가 이리저리 버무려진 동네를 걸어 다니며, ‘우린 다음에 저런 집을 지어야지’, '정원은 저 정도가 좋겠어' 하며 어렴풋하게나마 오키나와에서 내 집 마련하기의 꿈을 그려봤다.


느긋하게 오키나와를 여행 중이라면 한 번쯤은 관광지에서 벗어나 한 골목만 뒤로 걸어가 보자. 오키나와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골목이 나타날 것이다. 대문 앞에 놓인 각양각색의 시사들처럼 천천히 걸어야 더 잘 보이는 오키나와의 뒷골목을 걸으면서, 관광책자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색다른 모습을 발견해보길 바란다.




걷기 좋은 오키나와


뜨거운 햇살을 피해 걷기 좋은 - 비세후쿠길


높이 솟은 나무들 덕분에 뜨거운 날에는 햇살을 피해, 비오는 날에는 비를 피해 한층 짙어진 나무 냄새를 맡으며 걷기 좋다. 사이사이로 난 길들을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집들과 가게들도 보인다. 숲길의 끝에선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이미 많은 관광 서적에서 소개할 만큼 걷기 좋은 길이지만, 그만큼 관광객도 많은 편.


>> 구글 맵: Bise-Fukuchi Tree Road (備瀬のフクギ並木)

>> 주소: 389 Bise, Motobu, Kunigami District



가볍게 뛰고 싶다면 - 스나베 방파제


가볍게 달리기 좋은 길을 찾는다면 스나베 방파제 길을 추천. 바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일본인 말고) 외국인이 많은데, 덕분에 아메리칸 빌리지보다 더 아메리카 같은 곳이다. 근처에 다이빙 샵도 많이 있어서, 스쿠버다이빙을 나가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파도가 좋은 날은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 구글맵: Miyagi Coast 宮城海岸

>> 주소: 8PHV+HJ, Miyagi, Chata





아메리칸 빌리지 - 숨겨진 뒷길


아메리칸 빌리지에 왔다면, 라쟝호텔에서 시작해서 힐튼 호텔 너머 바다 쪽으로 나있는 길을 걷는 것도 좋다. 북적거리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주도로와는 달리 느긋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할 수 있다. 류큐노우시에서 맛있는 (비싼) 고기 한 점을 하거나, 라쟝 호텔 근처에 위치한 브루어리에 들러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것도 좋다.


>> 구글맵: Mihama 美浜

>> 주소: 40-1 Mihama, Chatan, Nakagami Distr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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