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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Nov 01. 2023

맴맴맴맴

워나.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생각보다 더 힘들어... 그런데 엄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그만큼 우리가 많이 사랑했었구나 싶고끄윽끄윽 소리내 울면서 말하던 그날의 네가 자꾸 내곁을 맴돌아. 그날, 전어회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우리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어. 전어는 언제까지가 제철인가, 엄청 짧은데, 제철 음식은 몸에 좋잖아 양식 전어도 꼭 제철에만 먹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제철 전어를 제철 음식이라고 말하는 비건지향인 나는, (너도 같이했으니) 우리는 참 별로다. 내년부터는 진짜 진짜 물살이도 먹지 말자, 같은 류의 이야기. 그러다 툭 하고 뱉어지듯 너의 이별 후 근황 이야기가 나왔어. 듣는 나보다 말을 꺼내고 있는 네가 더 안절부절하는 거 같더라. 아직 정리는커녕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겠는, 급한대로 밀어두었는데 너도 모르는 새 부피가 점점 커져 뽀오옥하고 삐져나와 버린 마음처럼, 그래 보이더라. 너는 중간중간 피식 웃기도 했는데 자꾸 웃(음 뒤에 슬픔을 숨겨 보려)는 네가 너무 안타까워 내가 먼저 울겠다 싶은 순간, 결국 너의 울움이 터져 버렸어. 웃음과 울음의 경계에서 기괴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던 그날의 네가,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말을 이어가던 네가, 자꾸만 자꾸만 나를 따라다녀. 떠오른다 싶으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 이런 나의 통증을 생각하다 보면 곧 너의 통증이 떠오르고 적어도 얼마간은 견뎌내야 할 비할 수 없을 그 통증을 내가 너무나 알겠어서, 알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도 그렇게 맴맴맴맴 네 곁을 맴돌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세 살 연상의 동성이라고 처음 이야기 하던 날, 그날도 넌 툭 뱉어내듯 말했지. 너의 말을 듣고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날의 날씨나, 장소, 이야기가 나오게 된 상황, 너의 표정이나 네 말의 어감까지 신기할 만큼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데, 딱 거기까지야. 너의 말 이후 잠시 동안 나를 뺀 모든 장면이 멈춰진 채 뚜우--- 소리가 들렸던 거 같아. 아마도 훅 올라오는 복잡함을 감춰두고 우와하아 웃으며 축하 비슷한 응원을 하지 않았나, 어렴픗 짐작만 했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네가 말했어. 축하한다고 하긴 하는데 당황한 티가 나더라애쓰는 것까지그래도 든든하고 고마웠어그랬구나, 다 알았구나. 미안해 워나. 네 곁 소중한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너와 연인의 관계를 얼마나 명확히 설명하는게 좋을지, 상대가 가진 이해의 범위를 가늠하고, 굳이 ‘연인’이라고 설명해서 겪게 되는 불편함과, 굳이 ‘연인’이라 표명하지 않아서 따라붙는 불편함 사이에서 너는 얼마나 여러 번 비슷한 갈등을 하고 또 했을지. 너의 시간들이 내게는 그저 아득하기만 해. 그래서 또 미안하고, 그래서 또 아프다.      


 그와 처음 만나기로 한 날, 한껏 들떴던 네가 떠올라. 너무 신경 쓴 태가 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만큼은 신경 쓴 듯 보이는 옷을 찾느라 얼마 많지도 않은 옷을 뒤적뒤적, 입었다 벗었다, 거울 앞을 바쁘게 오가고. 결국 시간에 쫓겨 호다닥 나가며 “오늘은 좀 늦을지도 몰라. 중간에 전화하지 말아줘.”라고 말했지. 그날 네가 흐트러뜨리고 간 옷을 하나씩 정리하며 자꾸만 흐트러지려는 엄마의 마음도 조용히 꺼내어 정리해야 했어. 그다음 날 좋은 시간 보냈냐는 질문에 네가 활짝 웃으며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완전 좋았지엄마우리 사귀기로 했어.

그 말을 하는 너의 얼굴은 엄마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맞아, 사랑을 하면 저런 얼굴이 되지. 딱 알게 되는 그런 얼굴. 너의 그 얼굴이 너무 좋아서 너의 연애를 열심히 응원하게 되더라.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응원하다 가끔은 지나간 내 연애가 떠올라 배시시 웃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걸 글로 쓰기도 했어. 너의 좋을 때에 길어 올려지는 나의 좋을 때가, 그렇게나 소중해져서.      


 애인과 헤어졌다우린 두세 달 동안 헤어짐의 경계를 오갔다최근에 쓴 너의 글, 첫 문장부터 울컥했어. 그 뒤에는 약 1년의 연애기간 동안 꾸었던 꿈 중, 또렷이 남아 있는 꿈 이야기가 이어졌지. 하얀빛에 얼굴이 가려진 누군가의 따뜻한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콩닥이는 심장 소리를 듣는 꿈, 광장에 모인 한껏 차려입은 지인들 가운데서 행복하게 춤을 추는 너와 연인이 나오는 꿈, 스토커에게 쫓기고 쫓겨 몇 번을 죽고 몇 번을 다시 살아나는 너, 결국 쫓기기를 포기하고 자진해서 다가가 칼에 찔리고 나서야 끝나는 꿈,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과 데이트를 하다 결국 지금의 연인에게 돌아가지만 언제든 무너질 거 같아 보이는 그녀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다 생각하는 꿈, 비건하는 사람을 폄하하며 황당하게 말하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맞장구를 치고 있는 연인, 그런 그녀가 너무 미워서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결국 꿈인 걸 알아차리고 꿈 때문에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는 꿈, 기어서 간신히 온전한 탁구공을 찾아낸 네가 사람들 앞에서 너의 장기인 저글링을 보여주는데 예상과 다르게 자꾸만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사람들은 그런 네게 아마추어라며 야유를 보내는 꿈까지. 

 

 꿈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졌지만, 너의 마음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해졌어. 네가 얼마나 연인에게 진심이었는지...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행복했고, 진심으로 고민하고, 진심으로 아픈 이별 중이라는 게. 너는 앞으로 얼마나 여러 날을 꿈속에서 헤매야 할까, 얼마나 여러 날 그의 곁을 맴맴맴맴 맴돌게 될까. 내 마음에는 그게 또 아프게 걸리고. 그제야 내가 무엇을 잃었고무엇을 몰랐는지 알게 된다... 헤어진 그날로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꿈에 있는 것 같다너의 글은 결국 여전한 꿈속에서 끝을 맺고.     


 앞으로 내 정체성에 대해 더 들어내고 더 많이 이야기 하고 다녀야겠어한 지역에서 유독 ‘퀴어 축제’에 대해서만 불허하는 바람에 경찰과 시 공무원이 충돌했다는 기사를 보고 네가 말했잖아. 특히 그 기사 밑에 달린 수많은 혐오 댓글들. ‘보기 싫으니 나대지 좀 마라’ ’제발 내 눈에만 띄지 마라’ 같은. 논리도 무엇도 없이 누군가를 이유없이 소외시키고 아무렇게나 폭력을 가하는 세상이 걱정되면서도, 더 용기 내어 앞으로도 쭉 원하는 사랑을 당당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네가 너무 멋지더라. 네가 너무 멋져서, 네가 너무 좋아서, 네 곁에 있는 나도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져. 그래서 엄마도 너를 따라 아주 더 들어내 놓고 너의 사랑을 응원하려고. 물론 나의 사랑도.      


사랑해, 나의 소울 메이트, 워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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