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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Jun 01. 2021

장판 위 서핑, 생각보다 쉬운데?

5일간의서핑 실패기

밖으로 나와 패들링과 테이크 오프 연습을 했다. 패들링, 보드 위에 누워 보드 옆면을 손으로 노를 젓는다. 물 위가 아니기 때문에 모래를 살짝씩 파면서 연습하면 된다. 테이크 오프 자세는 1번 자세, 2번 자세, 3번 자세로 나뉘어 있었다. 


1번 자세는 가슴 옆에 손을 대고 쭉 피며 상체를 든다. 

2번 자세는 1번 자세를 취한 뒤 발을 가슴까지 끌어온다. 발의 방향에 따라 오른발을 뒤로하는 경우, 왼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오고 오른 발의 옆면을 일자로 둔다.

3번 자세는 왼쪽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가슴까지 끌어온 왼 무릎을 핀다. 2번 자세에서 그대로 선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게중심을 왼쪽 발에 두어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다리는 쫙 펴는 게 아니라 약간 굽힌 채로 보드 위에 일어난다. 


모래 위에서 패들링을 하다가 강사님이 '1번' 하고 소리 내어 말하시면 가슴 옆에 손을 대고 쭉 피며 상체를 든다. '2번' 하면 가슴으로 발을 끌어당긴다. '3번' 하면 그대로 일어난다. 이렇게 몇 번을 테이크 오프 연습을 했다. 나는 발이 자꾸 보드의 중심으로 오지 않고 옆으로 빠졌다. 이렇게 보드 중심에 발이 오지 않으면 파도를 탈 때 보드 위에서 균형 잡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오늘의 파도는 일명 '장판'이었다.


장판은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이른다. 강사님은 파도 자체가 워낙 잔잔해서 파도의 미는 힘은 없지만 패들링 연습하기는 좋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도가 없으면 안 좋은 거 아닌가? 난 이 생각을 바로 다음날 후회하게 된다.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무거운지 끌고 들어갔다. 난 팔힘이 별로 없었다. 강사님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우리 자세들을 봐주셨다. 파도 자체가 없어서 파도의 미는 힘보다는 강사님이 팔로 밀어주는 힘에 의지했다. 물 위에서 강사님이 보드를 잡아주셨다. 패들이라고 말씀하시면 패들을 하면서 손을 보드 옆으로 허우적거리다가 강사님이 보드를 쭉 밀어주면서 업이라고 말하면 보드 위에서 일어났다.


어라? 생각보다 일어나는 게 쉬웠다.

왜 이렇게 잘 일어나 지지?


같이 강습을 받으셨던 남자분도 엄청 잘 일어나셨다. 이게 무슨 일이람. 나 왜 이렇게 균형 잘 잡아.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한 5번을 강사님께서 밀어주셨다. 자세를 조금씩 교정해주셨다. 다리가 너무 뒤로 빠져요. 균형을 앞으로 좀 더 유지해야 돼요. 등등. 그런데 한 5번 정도 연습하면서 계속 테이크 오프에 성공하니까 강사님이 이 정도로 테이크 오프 하시면 더 이상 입문 강습은 필요 없으실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나 좀 잘하나 봐?


강사님은 떠나시기 전에 보드 위에서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보드 너무 뒤쪽에 앉으면 균형 잡기가 어려우니까 중간쯤에 앉아서 보드 방향을 바꾸는 방향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다. 발을 돌리는 방향에 따라 보드의 방향이 바뀌었다. 사실 중간에 앉아있으면 바꾸기가 조금 힘들고, 연습을 하면서 점점 보드의 테일 쪽에 앉아서 발을 돌리면 방향 바꾸기가 훨씬 쉽다고 하셨다. 그렇게 강사님은 떠나셨다. 강사님이 떠나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강사님이 밀어주셨을 때 테이크 오프가 잘 됐으니까, 혼자 해도 잘 돼겠지? 

그건 아니었다. 착각은 역시 자유였다.


잔잔한 바다 위에 조금이라도 파도를 찾겠다고 저기서 조금이라도 파도가 오는 것 같으면 열심히 패들링을 해서 그곳 근처로 갔다. 근데 파도가 자꾸 나를 비켜가는 것만 같았다. 미는 힘은 하나도 없어서 테이크 오프 하기는 힘들었다. 작은 파도들을 찾아서 조금씩 연습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고꾸라지기 일수였다. 쉽지 않았다. 나랑 같이 수업을 들은 남자분의 일행분들이 왔다. 여자 두 분이었다. 다른 남자분도 계셨지만 어깨를 다쳐서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셨다.



↑ soft beard                                                                           epoxy board ↑


그분들은 내가 탄 보드랑 조금 달랐다. 소프트 보드가 아니라 에폭시 보드를 타고 계셨다.

내가 배웠던 보드 종류는 크게 두 개였다. 소프트 보드와 에폭시 보드. 이 두 개의 차이점은 재질과 크기의 차이였다.


소프트 보드는 왼쪽에 있는 보드다. 구글에 있는 외국 서핑 샵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오른쪽 사진보다 훨씬 크다. 긴 롱보드이며 스펀지 소재로 마감이 된 보드가 소프트 보드다. 서핑 샵에서 랜트해주는 보드는 모두 소프트 보드다. 부력이 굉장히 크고, 핀 자체가 말랑해서 서핑 입문자들에게 적합하다고 한다. 대신 굉장히 무겁다. 사실 난 보드를 못 들어서 해변에 질질 끌면서 내려갔다. 

초보자에게 소프트 보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물에 뜨는 게 안전하고, 부딪혀도 크게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초보자는 기본적으로 보드를 다루는 요령이 없어서 계속 물에서 구르고 또 구른다. 보드랑 같이 뒹굴거리기 일수다. 그럴 때 가끔 핀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는데, 보드가 단단하고 핀이 날카로운 경우에는 크게 다칠 수 있지만 소프트 보드는 핀이 부드럽고, 보드 자체가 날카롭지 않아서 정말 크게 부딪히지 않는 이상 쉽게 다치지 않는다.


에폭시 보드는 내가 알기론 소프트 보드보다 그냥 단단한 보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찾아보니 발포성 폴리스티렌을 말하는 EPS를 코어로 사용하여 만든 보드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 소프트 보드와 다른 차이가 있다. 장점은 부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외부 충격에 강하고, 다른 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것이다. 단점은 유연성이 떨어져 보드 컨트롤이 어렵다. (참조 : https://lim-lim.tistory.com/12)


에폭시 보드는 소프트 보드보다 단단하다. 조금 더 작기 때문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소프트 보드는 길고, 넓기 때문에 초보자가 일어나기에 용이하다. 에폭시 보드를 들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 중수? 파도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 에폭시 보드를 타고 가셨다.


여자분들은 에폭시 보드를 들고 오셨다. 이전에도 서핑을 경험해보시고, 최근에 제주도도 서핑하러 다녀오셨다고 했더니 서핑 샵에서 에폭시 보드를 추천해주셨다고 했다. 오- 감탄사가 나왔다. 왠지 멋있었다. 나는 열심히 초보자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벌써 초보자를 벗어난 기분이랄까. 


그런데 파도가 없어서 같이 물을 먹어가며 연습했다. 그분들도 에폭시 보드가 처음이라 그런지 잘 적응하지 못하셨다. 난 자꾸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다녔다. 언제 방향을 바꿔야 되지? 대체 파도의 미는 힘이 뭐지? 방향을 어떻게 잘 바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까 선생님이 밀어주셨을 땐 잘만 일어났는데, 지금은 이렇게 힘들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난 발로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손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더 쉬운 것 같아서 보드 위에서 계속 파닥거렸다. 


한 2시간, 3시간 정도를 보드 위에서 파닥거렸던 것 같다. 

지쳤다. 내 키의 1.5배는 되는 보드를 해변 위에 질질 끌면서 서핑 샵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보드를 두는 곳은 해변가 있어서 보드를 들고 도로를 건너가지 않아도 되었다. 컨테이너 박스 2층으로 향했다. 거기가 여자 탈의실이었다. 모래가 잔뜩 들어가 있는 서핑복을 벗었다. 입을 때도 힘들었는데, 벗을 때도 힘들었다. 머리엔 바닷물이 가득하고, 얼굴은 왠지 따끔거렸다. 그렇게 선크림을 많이 발랐는데도 왼쪽 볼이 화끈거렸다. 


씻고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김치볶음밥을 시켜먹었다. 맛있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에 되었다, 혼자 잠깐 밤 산책을 나갔다. 같이 바다에 있었던 분들은 고기를 구워드시고 계셨다. 


서핑 샵 뒤 마을


여기는 완전 시골이었다. 서퍼들로 북적거리는 곳 바로 뒤, 한 블록만 들어가면 진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나왔다. 높은 건물이라곤 초등학교 하나였다. 대부분 집에 마당이 있었다. 낡은 기와집, 옛날 일본식 가옥, 요즘 지은 것 같은 펜션.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동네였다. 골목골목이 너무 이뻤다. 마당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았다. 고추, 쪽파 등이 심어져 있었다.


동네 한 바퀴 구경을 마쳤다. 서핑 샵에 있는 레트리버에게 갔다가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누가 내 등 뒤를 쿡 건드렸다. 저기요. 하는 목소리에 돌아봤다. 오늘 아침에 바다에서 함께 있었던 여성분이었다. 같이 술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어보셨다. 아, 제가 가도 되나요? 다시 여쭤봤다. 네 물론이죠. 하는 대답과 함께 나는 그들의 술자리에 함께 했다.


혼자 오는 여행의 장점은 낯선 이들의 무리의 하룻밤 초대객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분들은 대학교 선후배 관계였다. 다들 디자인을 전공하셨다. 어깨가 다쳐 서핑을 하지 못하셨던 분은 회사생활에 치여 그만두시고 서울에서 술집을 하신다고 했다. 옆에 앉으셨던 통통하고 머리가 분은 보라카이에서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1년 정도 일을 하시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상황이라고 하셨다. 서로 처음 보신 분들도 있었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보니 이야기가 통하셨다. 술을 마시는 여성분과 같이 강습을 들으신 남자분. 이렇게 4명의 일행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바퀴벌레 이야기로 정신없이 웃기도 하고,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낯선 사람을 만나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하루의 인연. 이 시간 끝나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얼굴조차 흐릿해질 사람들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밤. 분위기와 맛있었던 술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장판 위 파도와 하룻밤의 인연으로 첫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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