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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Jun 09. 2021

하늘과 바다 사이,
내 몸 서있을 곳 찾아서

5일간의서핑 실패기

바다는 잔잔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오히려 구름이 파도 같이 보였다. 날이 흐렸다. 멀리서 보면 수평선의 구분이 흐릿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혼자서 바다에 들어갔다.


모래 위 파도가 깨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남자분들 두 분이서 서핑 연습을 하고 계셨다. 장판 위에서 어떻게든 파도가 있는 곳을 찾아 연습 중이셨다. 한 분은 초보자시고, 한 분은 중급자 이신 것 같았는데 중급자 분이 잘 알려주셔서 금방 웨이브를 즐기셨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들어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입문 강습을 받은 것 한 번, 작년에 들었던 서핑 수업 한 번. 그 짧은 강습 내에서 어떤 타이밍에 패들을 해야 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일어나야 하는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든 게 어려웠다. 패들을 하다 보면 테이크 오프를 할 때 팔에 힘이 빠졌다. 일어설 때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 라이딩도 못한 채 넘어졌다. 


그 남자분들 옆에 있으면 뭐라도 배울까 싶어 가까이 가봤는데, 이상하게 내 근처로는 파도가 오지 않았다. 아니 왔어도 내가 잡지 못했다. 자꾸만 넘어졌다. 이게 자세가 좋지 않은 건지 아직 근육통이 안 나아서 이러는 건지 한참을 헤맸다.


하늘과 바다 사이,

파도가 치는 곳을 찾아 파도가 부서지는 곳 근처를 헤맸다.

 

조금 멀리 파도가 조금 치는 것 같은 곳으로 왔다. 여전히 나는 파도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어느 때 파도가 피크를 치는지. 나는 언제 패들을 해서 저기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파도가 미는 힘은 언제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테이크 오프를 하다가 넘어졌다. 미는 힘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내가 파도가 오는 것 같은 걸 하고 잡으려고 열심히 테이크 오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잔잔해져 있었다.


문제는 내가 패들을 하지 않을 때 파도가 슝- 강한 힘으로 나를 쳤다.

조금이라도 테이크 오프 연습을 하려고 하면 중심을 잡지 못해 자꾸 고꾸라졌다. 강사님이 밀어줬을 때는 분명히 잘 일어났던 것 같은데, 왜 그러지?

구름과 바다 수평선을 구분하기 힘들다.


한 시간 정도를 패들 하고, 넘어지고, 테이크 오프 시도하다가 넘어지고를 반복했다. 파도를 보는 눈이 없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 기다려도 보았다. 눈이 없는 게 맞았다. 무슨 파도에서 탈 수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쳐서 보드를 끌고 해변가로 왔다.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타는 모습을 구경했다. 잠시 누워있었다. 하늘이 울렁거렸다. 파랗다기보다는 여러 개의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얀 구름으로 촘촘히 하늘을 감싼 모양새였다. 저 멀리 수평선이 보였다.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저 사이에서 작은 보드 하나에 의지해 바다에 서보겠다고 연습하는 내가 있었다.


보드를 끌고 보관소로 갔다. 무거웠다. 나는 왜 이렇게 또 멀리 왔는지, 무거운 스펀지 보드를 질질 끌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왜 이렇게 멀어. 결국, 내팽개쳤다. 한 번이 아니었다. 한 세 번 정도, 보드를 바닥에 내팽개쳤던 것 같다. 모래사장 위에 보드 핀 자국이 깊게 박혔다. 저 멀리서 내가 보드를 끌고 온 흔적이 남았다. 내일이면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테지만 이상하게 그 흔적이 밟혔다. 내가 걸어온, 모래 사이에 깊게 파인 흔적이.


신발을 보관소 근처에 벗어나서 발바닥에 조개껍데기들이 밟혔다. 보관소에 도착해 보드를 집어넣었다. 서핑 샵 앞에서 물로 모래를 제거하고 씻으러 올라갔다. 슈트를 벗는데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따뜻한 물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차가운 몸에 따스한 물이 닿았다. 손끝이 저릿했다.


다 씻고, 책을 들고 카페에 앉았다.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정원에서의 보행이 끝나고 이제 다른 챕터로 들어갈 차례였다. 이렇게 느리게 읽히는 책들이 있다. 이 곳과 잘 맞았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 활자조차 느리게 읽히고, 구름조차 느리게 흘러가는 곳. 조금씩 나른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선잠이 들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 저녁은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오늘 점심도 볶음밥을 먹었기 때문에 또 볶음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사장님께 주변에 저녁 먹을만한 가게가 있는지 여쭤봤다. 같이 먹자고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다행히 사장님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주셨다. 


사장님네 댁에서 싸오신 반찬들로 저녁이 있다고 하셨다. 제가 같이 먹어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당연하다니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이상한 소속감이 느껴졌다. 겨우 밥 하나에. 3일 남은 날들을 더 이상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김치찌개, 꽈리고추 튀김, 인면조 튀김 등등 이것저것 스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은 맛있었다.


바다 위에서 헤매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대지를 딛고,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별것 아닌 일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굳이 술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집에서 싸온 반찬들을 나누어 먹는 것.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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