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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Aug 19. 2023

조곤조곤 언어의 몽둥이

자라와 고니

어제 필사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적으니 책과 대화를 한다는 게 이런 걸까. 나도 모르게 다음 필사가 기다려졌다. 오늘 3개월의 병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3개월 동안 빈 집. 화장실에는 군데군데 거미줄이 쳐있었고, 변기시트와 드럼 세탁기 커버가 누렇게 변했다.


군데군데 죽어있는 벌레들의 시체에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했다. 화장실에는 과탄산소다와 주방세제를 뜨신 물에 섞어 온 화장실에 뿌려 놓은 다음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이미 물러서 흐물거리는 오이를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고, 뿌리가 나기 시작하는 당근과 완전히 곰팡이 범벅이 된 요거트를 버렸다. 설거지거리도 넘쳐났다. 이불빨래까지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밤 10시. 필사를 하기 위해 느림보마음을 펼쳤다. 마음이 안정되는 시간. 기대했는데….

2번째 자라와 고니를 필사했다. 긴 청소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언어로 후드려 맞는 몽둥이찜질이었다.




말에는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난다.


강렬한 첫 문장이었다.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 수술을 한 후 3개월 동안 부모님 집에 내려가 있으면서 엄마와 질리도록 싸웠다.

싸웠던 이유는 정말 별 것 아니었다. 심지어 서울에 올라오는 날인 오늘도 엄마와는 말다툼 끝에 헤어졌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점심에 샤브샤브를 가서 외식을 하자면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입이 짧아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출발하기 1시간 전에 감자를 삶았다고 먹으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불쑥 화가 났다. 이걸 먹으면 점심을 어떻게 먹으라고 갑자기 감자를 먹자고 하지.


감정이 불쑥 튀어 오르면서 내 입에서 튀어나간 말은 짜증이었다.


"점심 먹어야 되는데, 지금 감자 먹으면 점심을 어떻게 먹어?!"


엄마는 네가 감자 좋아하니까 이제 가잖아. 마지막으로 좋아하겠다 싶어서 해주려고 했지.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엄마의 마음보단 우리가 가기로 한 목적지가 더 중요했다.


난 항상 이렇게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를 참기가 힘들다.

그래서 정말 크게 싸우고 난 뒤로 내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들에 나 스스로 자책이 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날 일기에 적은 첫 번째 문장은 '엄마는 불가사의한 사람이다.'였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강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목소리를 저 멀리 강 건너로 보내기 위해 고함을 친다. 너는 왜 그러니. 엄마는 왜 그래? 왜 이해를 해주지 않아. 엄마도 나 이해 못 하잖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길 원했다. 내가 고함을 치더라도. 불쑥 짜증을 내더라도. 우리는 엄마와 딸 사이니까. 이렇게 싸우더라도 저녁이 되면 같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수다를 떨다가 잠에 들 테니까. 나는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랐고, 엄마도 내가 엄마를 이해해 주길 바랐다.


너무 참아도 병이 생긴 다지만 너무 참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한 척의 배와 같다 했거늘, 저편에서 이편으로 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는 미덕이 사라졌다. 너무 조급하다. 따질 것은 따져야겠지만 오가는 말에는 날 선 공박뿐이다.


맞다. 엄마와 나 사이에 오가는 말에는 날 선 공박뿐이다.

저편에서 이편으로 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는 미덕. 엄마의 말이 내게 건네 올 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 나에게 사라졌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책을 하러 나섰다.


새벽 1시, 아무도 없는 강변을 걸으며 서늘한 여름 바람을 맞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가로등 사이로 풀벌레가 가득했다. 나는 엄지손톱으로 검지손가락의 끝을 눌러대며 엄마가 뭐라고 하든 이렇게 세 번은 참자. 다짐했다. 손톱이 손가락 끝을 지긋하게 누르며 날카로운 충격이 신경을 타고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래. 아프면 참겠지.


하지만 다음 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을 먹다가도 말 꼬투리 하나로 싸우기 시작했다. 왜 불을 안 끄고 다녀. 아니 곧 끄려고 했어. 잠깐 가지러 갈 거 있어서 나온 거야. 엄마는 왜 짜증부터 내? 네가 잘하면 안 낼 거 아니야.


역시나 나는 별 것 아닌 것에 흥분해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지손톱을 통한 충격요법은 머릿속에 생각나지도 않았다.


말에 고약한 냄새가 난다.


나도 알았다. 내 말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엄마와 함께 있으면서 나는 내가 화가 나면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기어코 내뱉고 타인의 마음을 갈퀴처럼 상처 내어 버리는 사람. 그러면서 나조차 상처 입고 마는 사람.


내가 욕설을 받지 않으면 그 욕설은 어디로 되돌아가느냐고 되물었다. 욕설을 받은 바 없으므로 그 욕설은 고스란히 욕설을 한 사람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부처가 욕을 먹고 나서 한 말이다. 욕설은 듣는 사람에게도 말하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참을 수가 없는 걸까.


이상하게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엄마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조건이 없다는 것. 무조건적인 사랑. 나는 엄마에게 그런 아가페적인 사랑을 바랐다.

나는 엄마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보고,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도 사람이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왜 항상 불만이 드는 것인지.


엄마는 여자는 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몸매를 품평해 댔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 대상이 나에게로 돌아오니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는 말들이 다 나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엄마와 곁에 있다 보면 사회의 모든 고정관념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 같았다.


요즘 나를 이뻐하는 것도 내가 살을 뺏기 때문일까. 엄마는 살을 빼기 전에 나에 대해서는 항상 보면서 한숨을 쉬거나 저녁에 뭘 먹기만 해도 그러니까 살이 찐다면서 타박을 해댔다. 지금도 저녁에 무언가를 먹으면 타박을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먹는 걸 제한하고, 엄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도 차에서 엄마가 살 빼니까 너무 이쁘다. 이 말 한마디가 나의 못난 모습을 건드렸다.

살 빼서 이쁘다고 하지 마. 엄마는 왜 항상 살 빼라고 난리야? 내가 뭐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잖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네가 살이 찌든 안 찌든 난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나는 내 진심을 조곤조곤 말로 풀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니, 내가 아무리 말을 해봤자 우리 앞에 주어진 그 기나긴 강을 건너 엄마에게 이야기가 닿기는 했을까. 배가 건너가다 침몰되지는 않았을까.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고, 엄마도 날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오가는 대화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 위한 고함만 난무했을 뿐이었다. 배는 중간에서 난파되고 서로를 공격했다.


큰 응수는 침묵에 있다. 침묵은 깊이와 수량을 잴 수 없다. 우치한 몇 마리의 말보다는 침묵이 더 아름답다. 침묵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애써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 만큼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연습해야 할 건 이해가 아니라 침묵일지도 모른다. 배가 중간에서 난파되지 않도록 고요하고 잔잔한 수면을 만들어주는 것. 이해가 안 되더라도 넘어갈 줄 아는 법. 내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엄마와의 인정과 이해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하는 법.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그 방법만 있는 걸 아니라는 걸 체화하는 것.


엄마와의 싸움에서 나는 항상 질 것이다.

아마 엄마도 나와의 싸움에서 항상 패자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 싸움엔 승자가 없고, 패자만이 남아 서로를 물고 뜯고 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서로의 못난 모습까지 감싸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하다. 엄마를 언제쯤이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날 선 대화가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따뜻한 말들을 해주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나를 위해 노력하지만, 나는 항상 어린애처럼 투덜대기만 한다.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깬다고 했다. 입으로 여러 가지 악한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도끼의 말로써 스스로 몸을 해치고 말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몸을 하나씩 깨부수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부서져 버린 몸이 후드득 바닥으로 흘러내릴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얼기설기 몸을 하나씩 꿰매어놓아야겠다. 몽둥이찜질 맞았으니 정신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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