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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Aug 20. 2023

바람이 지나갑니다

흙길 보행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대전에서 보내온 택배 3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3개월 동안 대전에 있으면서 직접 옷도 사고, 엄마가 사주기도 하고, 이사 가는 선생님이 준 옷들이 이리저리 섞여 3박스나 되었다. 작은 원룸에 옷을 보관할 곳이 없어 쿠팡으로 토요일 플라스틱 서랍장을 주문했다. 오늘 아침부터 분주하게 도착한 서랍장을 닦고, 옷을 채워 넣었다. 겸사겸사 빌트인 된 서랍장도 정리했는데 아니 이게 무언가. 유통기한이 1년이나 지난 사과즙이 자리를 거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눕혀놓은 세탁세제가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인지 새어 나와 서랍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난리를 쳤다. 옷을 정리하고, 빌트인 서랍장을 쓸고 닦고,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점심이 되니 허기 가졌다. 오늘 청양고추를 사 오려고 했었는데, 이미 지쳐버린 육신이 밖을 나가길 거부했다. 청양고추 없이 된장찌개를 끓였다. 고추가 없으면 고춧가루를 더 많이 넣으면 되지! 하고 기존 레시피에 있는 것에 2배를 넣었더니 매콤했다. 양파 하나를 다 쓸어 넣고, 팽이버섯을 넣고, 표고버섯을 넣고 두부를 넣고. 어제 만들어놓은 브로콜리 두부무침을 꺼내고 겸사겸사 계란프라이를 하나 했다. 속이 편했다.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기 위해 홍차를 끓였다. 이상하게 홍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배가 고프게 만드는 마법이 있는 건지 자꾸만 더 허기가 졌다. 아니, 그냥 내가 배가 고팠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냉장고에서 체리를 꺼내 먹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어제 읽었던 문맹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썼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셨다.


구독을 해주신 분들도 몇 분 있었다. 브런치에 가입하고 작가가 된 지는 오래됐지만, 사실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느라 올라간 글은 몇 개 없었다. 밤에 센치한 상념들을 이것저것 적어서 올렸다가 막상 지나고 나면 너무 우울했나, 너무 두서없었나 혼자 검열을 하게 됐다. 검열의 끝은 발행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 브런치에 솔직한 이야기들을 올려주시는 분들을 보며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내밀한 글들을 적어 올리실까. 타인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밝히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대중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기분이던데. 가끔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용기에 감탄을 했다. 나도 저렇게 다 적을 수 있을까. 썼다 지웠던 글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글들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구독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렸다. 부족한 글에 응원을 해주시니까. 다음의 내 이야기들이 기대된다고 행동으로 표현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왜 유튜브에서 항상 사람들이 좋아요와 구독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하는지 알겠다.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한 분 한 분이 모두 소중하니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오늘의 필사 '흙길 보행'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 중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바람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일생동안 우리를 들이마신다. 우리의 첫울음과 말들을 통해서 우리가 걷고 요리하며 나무를 심는 동안 내내 우리를 들이마신다. 죽을 때 그것은 떠난다. 나머지 공기와 바람의 일원으로 돌아간다.


필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필사보다 조금 더 중요한 건 글과의 대화 같다. 글에 적힌 이야기와 나의 생각이 만날 때 더 깊이 있게 글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생각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고 이 주제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한다. 무엇을 적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것들을 고이 접어 글 속에 녹여내려고 한다.


흙길 보행.

처음 이 제목을 보기만 했을 때, 자작나무,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에서 신발을 벗고 흙길과 자갈밭을 걷고 있는 걸 떠올렸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이제 4년 차가 되어간다.


도시에서의 삶은 조금 팍팍하다. 정해져 있는 것들을 따라가며 살아야 한다. 사람이 많은 만큼 사회의 눈치도 더 심해진다. 내 나이가 되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연애, 결혼, 내 집마련. 뭐 이런 것들. 다들 내 나이가 내년에는 서른이라면서. 여자 나이 서른이 넘으면 괜찮은 남자는 다 채간다고 지금이라도 연애를 하라고 말한다.


도시는 아파트 같다. 정해놓은 틀이 있고, 그대로 직조해 낸다. 틀에 맞춰서 살아가면 하자가 없는 사람. 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하자가 있는 사람. 하자가 있는 삶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을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집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몸무게가 많거나 적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자가 없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느새 하자가 생긴 사람이 된다. 아파트의 시공과정에 부합하지 않아 그 틀에 맞출 수가 없어서 사람들은 자꾸만 간섭을 한다. 너 그러면 안 돼. 다이어트해야지. 연애해야지. 결혼해야지. 직장 잘 잡아야지. 집 사야지. 마치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날 위해서' 당연하게 해줘야 하는 말인 것처럼. 모두가 아파트의 틀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대전에서 내가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은 일종의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다. 직장이 안정적이지도 않고,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가고자 하는 길들을 가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는 사람. 살에 민감하지도 않고, 자신이 지키고 싶은 신념을 지켜나가는 사람. 남들이 봤을 때 일종의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다.


난 그래서 시골집이 좋다.

낮은 지붕과 처마, 주변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돌집, 통나무집, 콘크리트집, 원하는 재료로 만들어낸 집들. 대들보의 모양도 다 다르고, 기둥의 높이도 다 다르다. 가끔 어떤 집은 슬레이트로 외양간을 꾸며놓기도 한다. 정해진 것들이 없이 자신의 삶에 맞춰 하나씩 만들어나간 흔적들이 묻어 있다.


가끔 한국기행을 본다.

도시를 떠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오고, 울릉도에서 살거나, 시골집을 고쳐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도시를 나오기 위해서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밤중에 낮의 가면을 벗은 옥수수밭에 가면 당신은 식물들이 서로 얘기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지나갑니다. 거기에는 바람, 독수리, 옥수수, 돌의 목소리들인 언어들이 모두 있습니다.


최근에 금산 보석사에 갔다. 보석사를 향해 조금만 올라가면 물길이 있다. 바로 밑으로 내려가면 수심이 낮아 발을 담그고 있기 최상의 조건이다. 다만 모기를 조금 조심해야 하지만.

앉으려고 돌을 봤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사람이 왔는데 도망가지도 않고,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기는 내가 먼저 왔으니 너네가 비켜라! 의 포스를 풍기는 이런 강인한 개구리 같으니라고.


우리는 개구리 옆을 얼쩡거리며 사람의 덩치로 개구리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위협을 해댔지만, 개구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조금만 옆으로 비켜줘라고 하며 개구리 엉덩이를 슬쩍슬쩍 밀어냈을 때야 개구리가 귀찮다는 듯 건너편 돌에 가서 앉았다. 개구리 한 마리와 자리싸움에서 이기고, 우리 엉덩이를 슬쩍 들이밀었다. 이긴게 아니라 개구리가 양보해준 것 같았다. 귀찮게 하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개구리는 멀리 가지도 않았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돌 사이로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개구리랑 같이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 가을의 초입이라 그런지 물이 시원했다. 다음번엔 이곳에 김밥을 싸들고 책을 한 권 갖고 와야겠다. 그때도 이 개구리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길을 밟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삶.

도시의 거대한 틀에 눌려 하나의 모양으로 찍어내지는 삶이 아니라 나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삶.

개구리를 멀리 쫓아내는 게 아니라 조금 옆으로 비켜달라고 양보를 부탁하는 삶.


가끔 이런 생각도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면, 시골집을 지어 바로 들어가기 전에 다양한 마을을 돌아다녀보고 싶다.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고 사라져 가는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만들어볼까.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생생한 잡지.

마을마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거기 살고 있는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하나의 마을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그런 프로젝트를 해볼까.

그러다가 정말 살고 싶은 마을을 만나면 그곳에 터를 짓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매일매일 흙길을 밟으며 살아가고 싶다.

흙길을 밟고 살아간 사람들,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보고 싶다.


바람이 지나간다. 숲에서 느끼는 바람과 도시의 바람은 다르다. 어떤 바람을 택할지는 내 손에 달려있다.

그 안에 바람, 독수리, 옥수수, 돌의 목소리들인 언어가 담겨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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