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안부정도 물어보는 학교 후배 교수의 글을 읽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도권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이니 대학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글을 올렸구나 싶었다.
그의 글은 참으로 놀라웠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어 대학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짧은 글이었다.
그런 현상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심하다고 하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 참 암담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모 수도권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유지할지 말지에 대한 기사가 난 것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드디어 철학이라는 학문이 대학에서 사라진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우리 대학은 어느새 출새를 향한 정류장으로 전락했다. 진정한 학문 연구는 사라지고 그저 명예와 권력 돈 만 쫓은 직업 양성소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명문대를 나온 사회 지도층의 지식수준이라는 게 정말 40여 년 전 고등학교 졸업 수준보다 못하게 되었으니 말 다했다.
나는 이렇게 초야에 묻혀 살지만 주변 학교 동기들은 "사"자가 붙는 놈들이 꽤 많다. 그래서 굴러 차이는 게 "사"자 붙은 놈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40여 년 전 힘들던 시절이었다. 경제 개발이라고는 했지만 그 과실이 아직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던 시절에 모두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법대와 의대는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당연히 꿈꾸던 학과였다. 명예와 권력 돈을 위해 열심히 시험 문제 푸는 기술을 익혔다.
선생님들은 이것은 시험문제에 잘 나오고 이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라고 하며 오로지 대학 입시에 몰입하였다. 혹시 따분한 수업시간이 싫어서 교과서 앞에 숨기고 소설이라도 읽다가 들키는 날에는 선생님의 몽둥이찜질을 받아야 했고 연예소설책은 아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혹 가다가 명작소설이나 고전을 보다가 들키는 경우는 조금 나았다. 몽둥이찜질 뒤 책을 돌려받을 때 선생님 말씀이
"이런 책들은 대학 들어가서 읽어도 늦지 않으니 대학을 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해라!"
하는 말씀을 들어야 했다.
입학시험을 치고 학과 지원하는 때가 오면 교무실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다들 그래도 법대나 상대 의대로 가고 싶어 했다. 물론 상위권 동기들은 지원이 가능했지만 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학교를 낮춰서라도 이 세 곳으로 지원서를 썼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오로지 역사였다. 나도 지원서를 쓰려던 아침에 어머니는 갑자기 경영학과가 어떠냐고 넌지시 물으셨다. 그쯤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계셨고 경제개발의 붐을 타고 사업도 그럭저럭 잘 되던 때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신문을 보고 계셨고 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넌지시 나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웃으면서 나는 대답했다.
"엄마! 대학의 꽃은 문학과 철학 역사예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공부예요. 전 그대로 사학과에 갈 게예요."
아버지는 헛기침을 몇 번 하셨고 어머니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 지원 대학과 학과를 쓰면서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최소한 어문학 계열이라도 가지 그러냐 하는 눈빛이었다.
40여 년 전에도 사학과와 철학과는 비인기 학과였다. 선생님이 되던지 아니면 최고로 올라가는 게 교수나 기자가 전부였던 학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제 그 학과! 정말 중세 대학에서 부터 하던 지식의 근본인 학문이 퇴출 위기에 놓였다.
법학 경영 경제 의학이 모두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그저 물질을 숭상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명예와 권력 돈 이외의 모든 것은 가치가 없어진 지 오래이다.
인문학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가치도 물질로만 측정한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거기에 맞추어 사회가 움직이고 돌아간다.
젊은이들은 어느새 정신의 가치보다는 물질의 가치를 더 따르고 나이를 먹은 기성세대는 사람의 척도를 오로지 가진 물질로 평가한다.
젊은 남녀는 서로가 무엇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시골의 농사짓는 젊은이, 열심히 자기 일에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는 신랑감 신붓감으로 인기가 없다.
그러니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할 뿐이다.
이미 젊은 세대는 소크라테스니 노자니 장자니 칼 막스니 니체니 쇼펜하우어 따위는 머리에 들어 있지도 않다.
서점에서 팔리는 책은 투자에 관한 책 자기 계발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철학서적이나 문학서적 역사서적은 인기 없는 책, 잘 팔리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
물질이 세상을 지배해 버렸으니 정신은 사라졌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순수학문이 철학이 퇴출 위기를 맞았다.
그렇다면 대학은 왜 필요한가?
차라리 인력 양성소를 만들어 필요한 인력을 배출하고 대학은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 후배의 sns를 보고 사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당연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는 독서를 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과연 월든을 읽고 조지 소로우의 생각을 이야기할까?
우리는 과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인간의 자유를 이야기할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나오는 솔론의 비유를 읽고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까?
언젠가 백화점을 갔다. 가끔 촌놈도 세상 구경을 한다고 도시로 나온다. 명품 매장에 이, 삼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명품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모두 말쑥히 차려입었다. 명품을 사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바라보지 않았다.
어리석은 돼지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그렇게 버리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고등학교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마침 앞면이 있는 학생들이 있길래 쉬는 틈에 이런 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었고 막스 뮬러의 독일의 사랑을 읽고 가슴 설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책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며 웃으며 말했다.
장래희망은 명예와 권력을 쥐거나 돈을 벌기 위한 학과로 향했다. 나는 아이들의 어깨를 쳐주며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라고 뒤돌아서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인문학은 인간 정신이며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이다. 정신이 사라지면 물질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정신이 사라지면 언제든 노예가 된다. 자유를 잃게 된다.
김구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물질의 풍요로움보다 마음과 정신이 풍요로운 나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가 순간의 실수로 나라를 빼앗겨도 다시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