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정치가 될 때, 인간은 사라진다〉

by 마리아

중동의 봄은 결국 겨울로 돌아갔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자유의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자유의 제도를 남기지 못했다. 거리에는 용기가 있었고, 분노는 있었지만, 그 이후를 설계할 언어는 없었다. 독재는 무너졌지만, 권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주인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란의 오늘을 바라보며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시위는 거세고, 억압은 잔혹하며, 분노는 진짜다. 그러나 이 분노가 도착할 정치적 목적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언제나 먼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감정만으로 국가는 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중동의 봄은 언제나 너무 빨리 겨울이 된다.
이란은 단일한 민족국가가 아니다.
페르시아인, 쿠르드족, 아제르인, 발루치족, 아랍계가 뒤섞여 살아간다. 이 다층적 구조 위에 종교 권력이 얹혀 있다. 이 권력이 무너질 때, 자유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은 분열일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이란의 미래는 이라크의 그림자를 닮아갈 위험을 함께 안고 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붙잡게 된다.
종교는 왜 정치가 되었을까.
종교는 본래 인간이 의미를 찾기 위해 만든 가장 섬세한 언어다.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용서하기 위해 인간은 신을 불렀다. 그러나 그 신이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종교는 위안이 아니라 명령이 되고, 신앙은 자유가 아니라 복종이 된다.
정치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은 인간의 약함을 보호하기 위해 있어야 하고, 제도는 인간의 다양함을 지키기 위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종교가 정치가 되는 순간, 인간은 제도의 주인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빌린 권력의 피조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종교는 신념이어야 하고,
정치는 인간이어야 한다.
종교는 각자의 내면에 맡겨져야 한다.
믿는 자는 믿고,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
신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떠오른다.
작은 마을,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수녀원 안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착취와 침묵. 그곳에서 종교는 사랑이 아니라 규율이 되었고, 구원은 통제가 되었으며, 신은 아이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권력이었다.
그 소설이 더 슬픈 이유는,
악이 거창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소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고,
도덕은 존재했지만 행동하지 않았으며,
종교는 신을 말했지만 인간을 보지 않았다.
이란도, 중동도, 그리고 역사 속 수많은 사회도 같은 장면을 반복해 왔다.
종교가 정치가 될 때, 인간은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된다.
나는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가 인간에게 남겨준 위로와 상상력, 그리고 윤리의 힘을 존중한다.
그러나 종교는 결코 인간의 자유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신을 믿을 수 있지만,
신은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이란의 시위는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 이후의 질서를 아직 갖지 못한 질문.
종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종교 없는 윤리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질문.
그래서 이 싸움은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또 한 번의 겨울을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자유를 끝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신은 권력이 되어 사라질 수 있지만,
신을 찾는 인간의 질문은 언제나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어떤 겨울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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