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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Aug 25. 2021

「눈」(SURL)

주절주절 음악 09, 21.01.25

「눈」(SURL) : https://youtu.be/SV6bIRBiPeQ

봄의 우울을 견디게 해준 겨울 노래


지난 봄은 정말 힘이 부치는 계절이었다. 역병은 각자의 삶을 제각기 어그러뜨렸고 군생활 중이던 나라고 다를 바 없었다. 바깥에 나가는 일은 요원해졌고 때 마침 가장 친한 사람을 잃은 것이 단절감을 키웠다.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욕 한 마디 없이 예의 없는 말만으로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이유 없는 호의란 어찌나 폭력적인지.


우울함이 사람을 삼키는 과정은 소가 풀을 소화하는 과정과 같다. 소에게 먹힌 풀이 첫 번째 위를 지나도 또 다른 위에 있다. 앞으로 쏟아내어진 것 같으면 다시 입 안에서 씹어질 처지다. 지금의 이 우울함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잘근잘근, 씹히면서 잘근잘근, 깨닫는 과정. 말없이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고 사람들은 내 성격이 변했다고들 말했다.


발버둥도 치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던 그 시기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고 마치 시험을 망친 내 옆에 와서 '나도 망했어' 하는 친구처럼 느껴져서 그 뒤로 정말 주구장창 들었다. 노래가 날리는 눈발 같았다. 리버브를 충분히 넣은 기타 소리가 눈송이만 같고, 다른 소리들은 풍경처럼 한없이 정적이었다. 그것이 쌓였다. 이미 쌓인 것들 위로 쌓여서 온통 하얗게 덮었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은 평소보다 따뜻했다.


다시금 겨울이 올 때까지도 이 우울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리라곤 그 땐 생각지 못했다. 다들 건강한지 매체를 거쳐 안부를 물어야 하는 것도 지치는 요즈음이다.


좋던 일은 오지 않고 옛날의 기억들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법적 성인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직면한다. 대학 진학, 진로 설정처럼 가족을 비롯한 웬갖 사람들이 달라붙어 조언하고 도와준 선택과 다르게 그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사소하고 현실감 넘치는 선택. 거기에서 내 나름대로 내린 선택은 결과와 무관하게 후회가 남는다. 말다툼에서 지고 온 아이가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야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하고 뒤늦게 떠올리듯이, 번뜩이는 선택지는 아쉬움과 후회를 곱씹고 나서야 찾아온다.


젊은 사람의 서툶은 쉽사리 미화된다. 잘못된 선택도 경험이고 배움이라고 한다. 나중에 비슷한 문제에 당면했을 때 더 좋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잘못된 선택의 반동은 지금 당장 찾아온다. 미숙함을 이해해주는 건 주변인일 뿐, 나의 선택으로 상처를 입은 당사자의 사정은 아니다. 나쁜 결과를 불러온 선택은 나를 우울하게 하고, 닥쳐오는 다음의 선택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눈」은 이러한 20대의 막연한 우울과 불안을 적확하게 언어화해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누수처럼 바닥으로 차오르는 우울함을 종일 걷어내고 발목까지 다시 차오른 그것을 다시 느끼고 있으면 좋았던 일은 영영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이 노래도 결코 좋았던 일이 다시 오리라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이 우울에 나지막이 공감해주며 혼자만의 우울이 아님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그 흔한 위로의 한 마디도 없이.


우리는 이번엔 기대만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며 우리는 또 다음을 선택해야 한다. 여전히 서툴고 후회가 남을지라도.


여담


결론이 없는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같은 이야기. 별 수 없다. 나의 우울과 불안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닐 테니. 나의 잘못된 선택에 속죄할 수도 없다. 그것마저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저 언젠가의 내가 무해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길 기대하며 삶을 계속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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