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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Oct 08. 2021

「나무」(카더가든)

주절주절 음악 15, 21.02.14

「나무」(카더가든) : https://youtu.be/cHkDZ1ekB9U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래


노래는 사람의 감정을 촉발하는 좋은 촉매제가 된다. 우울하고 처지는 날에 우리는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기분을 반전시키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느릿하고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지금 내가 가진 우울함을 모두 소비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어떤 노래는 노랫말이, 또 어떤 노래는 멜로디가, 어떤 노래는 그 뒤에 깔리는 악기 연주가 심금을 울리고 감정을 촉발하지만, 셋은 결국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노래는 각각의 요소를 듣고 분석해보기도 전에 일단 '아, 좋다.'는 말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니까.


카더가든의 「나무」는 내게 있어선 충격적인 노래였다. 우연찮게 처음 들어본 순간 감탄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에 맞다, 설렌다, 어떤 말도 모자라게 느껴질 만큼 노래가 아름다웠다. 만화에서나 봤던, 주인공이 만든 맛있는 요리를 입에 넣고 우주 삼라만상이 머리 뒤로 지나가며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심사위원의 기분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본 듯하다.


과잉 없는 차분함. 그것이 주는 감동과 매력이 「나무」를 듣고 내가 느낀 '아름다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직설적이지 않고 시적으로 정돈된 가사와 카더가든의 완급 있는 목소리, 그리고 전반적으로 잔잔한 노래의 흐름이 잔파도처럼 밀려온다. 변곡과 재난과 같은 환경을 통해 슬픔을 쥐어짜내는 신파극과 다른,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서사의 끝에 기다리는 먹먹함. 그런 류의 감동이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를 곧잘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편이지만, 「나무」는 돌이켜보면 누구에게 추천해준 기억이 없는 듯하다. 우연일지, 아니면 의식도 못 하고 나 혼자 간직하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나도 친형의 추천을 받아 알게 된 노래인데,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죠


우울할 땐 인생에서 종종 있었던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스스로를 혐오한다. 이미 몇 번 밝힌 내 오랜 습관이다. 반대로 굳이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지, 행복한 기억도 참 많다. 기대치 않은 카페에서 맛본 맛있는 커피 한 잔에서부터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의 기억까지.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양분이 될 그 기억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제되어 있다.


수 년만에 꺼내본 앨범 사진만으로도 한껏 기뻐할 수 있는 우리지만, 행복한 기억들은 사진처럼 멈춰있고 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전부 꺼내어보고 나면 다시 지금. 행복했던 기억이 지나간 과거임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필연적인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나무」의 노랫말도 그 자체로 찬란하게 아름답지만, 그것도 결국 찬란함을 포착해둔 정물과도 같은 것임을인지하는 순간 마냥 황홀하게만 들리던 노래가 다르게 다가온다. 결국 이 노래의 아름다움도 지나간 순간임을 깨닫기에.


박제된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슬픔을 동반하는 일이다. 「나무」가 더없이 아름다운 노래이면서 동시에 엷은 쓸쓸함을 수반하는 듯 들리는 것은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의 클릭 만으로 「나무」를 틀어볼 수 있듯이 우리 안의 아름다운 기억들도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 삶이 너무 억세서 해치고 나갈 힘이 부칠 때, 열심히 뛰어 왔는데도 지나온 풍경이 멀어지지 않은 것만 같을 때, 이유 없는 우울함에 빠져 바닥을 모르고 침전할 때, 언제든 우리는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보고 눈앞에 닥친 불행도, 또 뒤이어 찾아올 우울도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의 내게 「나무」가 더 없이 따뜻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울과 불안에 빠져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 복용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내게, 이 노래는 그 방법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을 넘어서 이미 그 자체로 나의 행복한 기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갔지만 또 분명하게 내 안에 박제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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