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직장 생활중 역대급 초고난도를 만났다.
파리에서 직장인으로 십몇 년 넘게 일하고 있다. 중간에 아프리카에서 산 5년 정도의 시간을 빼고 몇 해인지 따져보니 벌써 그 정도 되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의 나라인 프랑스 파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생'이다.
해외에서 취업을 하려는 나와 같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모두 이들에게 굴러들어 온 돌이다.
이방인으로 타지에서 직장을 얻으려면 많은 용기와 얼굴이 두껍다란 말을 들을 정도로 주위 시선에 담담해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원래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박힌 돌들의 편견과 텃새 그리고 은밀히 이루어지는 인종차별등의 난관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얻게 되는 단단한 사고와 매끈한 마음의 결은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 가야하는 나에게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굴러온 돌은 나, 박힌 돌은 그녀이다.
첫 출근하는 날부터 시작된 박힌 돌 그녀의 '텃새'는 나의 파리 직장 생활중 가장 최고의 난제가 되었다.
이제까지 두 번 정도 직장을 옮겼고 그동안 별문제 없이 직장 문제만큼은 순풍 순풍 잘 풀렸던 내게 이런 일이 올 줄은 정말 예상도 못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나는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겠지만 상황은 계속 안 좋아졌고 결국 나는 현재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한 상태이다.
전임자가 떠나고 계속 공석이었던 지금의 내 자리를 그녀가 일 년 가까이 자신의 일과 함께 겸임하고 있었고 올봄에 내가 새로 입사하면서 그녀가 내게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이제껏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지라 배워야 할 부분도 많았는데 장황하고 길기만 한 그녀의 설명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아시아계인 그녀의 불어 발음과 화법에 익숙지 않은 나는 몇 번씩 되묻거나 확인을 해야 했고 아마 이런 점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퇴사하는 사람이 인수인계를 해 주면 그 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헤쳐 나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경우에는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1년 동안 대신했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그녀는 내가 하는 일에 태클을 걸어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나도 열받아서 그래서 어쩌라고 한번 붙을까도 했지만 아직 뻬히어드 데쎄이period d’essai (상호 간에 테스트 기간)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나도 일단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디었다.
(이직을 괜히 했나 하는 후회를 하며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동안 몇 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스트 기간이 끝나고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는데도 그녀의 참견은 계속되었고, 자꾸 그녀와 부딪히게 되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의 ‘참견’이 혹시 내가 실수를 할까 봐 마음을 써주는 그런 의도였다면 당연히 나도 감사하게 받아들였겠지만 ‘선의’인지 ‘견제’인지 그런 걸 분간 못할 정도로 내가 눈치가 없지는 않다.
그녀에게 다시는 내 업무에 간섭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 후 어처구니없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뒤로 한채 빠트롱(회사대표/사장님) 사무실로 향했다.
나에게 먼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했던 빠트롱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안주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으며 그런 직원들이 많은 회사는 성장할 수 없다는 빠트롱의 말이 모든 것을 답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단단히 고정이 안 되어 있는 박힌 돌은
늘 불안하다.
근무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회사 분위기는 그녀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담당업무가 전혀 다른 그녀와 내가 부딪힐 일이 전혀 없는데도 그녀는 자신이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자꾸 선을 넘어왔다.
심지어 나만 빼놓고 내 부서 사람들을 불러내어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멘붕이 왔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곳이 프랑스 맞음?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업무적으로도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어진 반복되는 업무를 해내는 일 외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어 보이는 그녀가 회사에 내린 뿌리가 그다지 깊고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놓친 것이 있었다.
그녀는 나라는 존재를 견제하고 주도권을 잡기에 바빠
회사의 핵심 인력으로서 정작 새로운 방향과 전환을 필요로 한 오너의 생각을 못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내가 확실히 굴러 들어온 돌이 맞기는 하지만 박힌 돌을 빼낼 생각은(이제 새로 입사한 사람이 무슨 힘이 있다고…) 전혀 없는데 그런 오해를 받는 것도 좀 답답하기도 했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볼까? 아니면 술이라도 한잔?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그런 걸 제안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냥 놔두기로 했다. 이제 나도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되었으니 마음에 좀 여유가 생겼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직장생활
시간은 흐른다. 내 시곗바늘은 유독 느리게 흘러간 것 같았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 눈치를 보느라 내게 말도 안 걸어왔던 다른 박힌 돌들이었던 직원들은 이제 나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서로 모국어가 아닌 불어로 소통하다 보니 크고 작은 오해와 해프닝들이 계속 생겼지만 나는 더 강한 에너지와 친화력을 갖고 그들을 대했다. 그들의 날 선 분위기는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회사가 유럽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보니 회의가 잦아짐으로 해서 그녀와 나는 더욱 많이 마주치게 되었고 대화를 하게 되는 횟수도 많아졌다. 사람이란 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자꾸 보게 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회사일로 시작된 대화가 개인적인 일도 조금씩 얘기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대화를 해보니 그녀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고 아마 그녀도 나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되었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내게 더 이상 '적’이 아닌 ‘동료애’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와의 대화중에 그녀가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솔로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고 그녀 역시 내가 자신을 제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마음을 열었고 더 이상 업무적으로 선을 넘어오지 않는다.
박힌 돌이 마음을 열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굴러 들어온 돌과 박힌 돌이 만나면…
이제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제안이나 안건을 내놓으면 인상부터 쓰고 쎄빠 뽀씨블(c’est pas possible 그 건 불가능해)를 외쳤던 그녀가 요즘은 오히려 더 혁신적이고 신박한 의견을 내놓는다. 회사 내 불어오는 미풍과 변화에 빠트롱도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굴러 들어온 돌에게 자극을 받은 박힌 돌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굴러 들어온 돌로 인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업무에 전문적인 스킬을 쌓아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일단 ‘따’부터 시켰던 차별적인 행동도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내가 특별히 한 건 없다. 나 역시 이제껏 해오던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업무인지라 더 배울게 많이 있었다. 그저 나라는 새로운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박힌 돌이 굴러 들어온 돌이 자신을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 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동안 스트레스받았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 전에 직장에서 나도 그녀와 비슷한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 한번 옮기고 온 마음을 쓰면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나도 몹시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서로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동료 사이가 되어서 기쁘다.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을 열어준 그녀와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새로 이직을 하면서 겪게 되었던 이 경험은 내 파리 직장 생활중 가장 어려웠던, 역대급 고난도로 기록될 것 같다.
나 역시 언젠가 이 자리에서 박힌 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를 뛰어넘는 화려한 경험과 스펙을 갖춘 인재가 언젠가 입사한다면 나는 과연 어떨까?
제 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한 자기 계발과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열린 사고를 갖고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깨달은 게 있다면 성장에는 경쟁보다는 서로 간의 화합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굴러 들어온 돌은 위협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도 박힌 돌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견해와 사고를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한 각양각색의 굴러 들어오는 돌들이 필요한 것이다.
2022년 11월 7일
파리에서 일 해 ‘보고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