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이번 이야기는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없다면 남편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거부감은 없으시리라 생각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 커밍아웃이나 동성애 이야기는 내게는 그냥 먼 나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알고 지내는 사람이 겪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니 그냥 남의 일로만 지나가기에는 나에게 남겨진 메시지의 크기가 너무 커 독자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시작한다.
#1. 아픈 그녀를 돌보는 커밍아웃한 그녀의 전남편
정말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이혼하고 처음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와 그녀 남편, 이제는 전 남편이 된 그와는 우리 부부도 아는 사이다.
그녀에게 당뇨병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마침 그날 오전이 병원 가는 날이라 전남편과 함께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전남편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그의 연인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깜짝 놀란 나는 -외국에 오래 살았지만 아직 이런 부분에서는 나도 편하지는 못하다-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참고로 그녀는 한국인, 그녀 전남편은 프랑스인이다.
사실 그들 부부가 왜 헤어졌는지 전혀 안 궁금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고 이미 헤어진 상황에서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 시간이 지난 만큼 그녀의 상처도 아물었는지 담담하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와 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딸아이가 10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돌연 커밍아웃을 했고 결국 그 이유로 헤어졌다. 바로 지금의 연인과 새로 시작한 그녀 남편은 이혼은 했지만 아이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했고 집에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도와주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남편과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계속 남아 있었던 그녀로서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녀도 차츰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이혼 후에도 그녀의 전 남편은 당뇨로 고생하는 그녀를 극진히 돌보았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헤어진 케이스가 아니라 그럴까? 이혼은 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정상적인 부부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관계를 빼고는 실질적으로는 그녀와 만든 가정의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혼은 했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동성끼리의 결혼을 법으로 인정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사회 성소수자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큰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남의 일에는 관대한 편이지만 사실 가족일이 된다면, 역시 프랑스에서도 커밍아웃을 가까운 이 특히 가족에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반대도 심해, 커밍아웃 후 부모를 안 만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특히 배우자의 커밍아웃은 그들에게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인건 마찬가지이다.
주말 아침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재래시장이 열린다. 남편과 싱싱한 생선과 과일 등을 사기 위해 잠시 들렸었는데 남남커플이 손을 꼭 잡고 함께 시장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쳐다보는 사람들도 없다. 물론 나처럼 힐긋 한번 보고 마는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누구든지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고,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프랑스인 그들조차도 '동성애'라는 민감한 주제 앞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남은 해도 상관없지만 자신의 가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프랑스인들의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현실인 것 같다.
그녀 전남편의 어머니가 그랬다고 한다. 전직 교사였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가정교육도 매우 엄한 편이었다고 한다.(대부분 프랑스인들의 가정교육은 엄하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정체성에 대한 전조증상을 느끼고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절대로 동성애는 있을 수 없고, 그것은 죄악이며 만약 내 아이들이 성소수자가 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며 입버릇처럼 자식들을 훈육시켰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의 전남편은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알게 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녀는 남편의 커밍아웃에 처음에는 절망을, 원망을 쏟아부었고 이혼도 안 할 것이라며 버텼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진 듯 그녀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고 결국 병이 찾아왔다. 원래 그녀에게 다른 지병이 있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당뇨병까지 앓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다.
그녀가 아프자 그녀의 남편은 이혼이야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더 극진히 돌보며 병원에도 항상 같이 동반해 주고 그녀와의 시간을 더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보지 말았어야 할 어떤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녀 남편은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 둘은 한동안 서로 할 말을 잃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 앞에는 낯선 여자의 모습을 한 남편이 서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진짜 모습을 본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되었고, 그도 힘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다.
처음에는 죽도록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그녀는 남편을 비난하기까지 했고, 그건 병이고 죄악이고, 선택적인 건데 당신은 당신 스스로 그런 삶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라고 퍼부었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아내에게 들키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 자신도 가슴이 무너지도록 마음이 아팠다.
평생 동안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살아야 했던 남편이 너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의 고통이, 한숨이, 절망이 그녀에게까지 전이되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놓기로 결심을 하였고, 그렇게 그 둘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절망을 보았고, 그의 그 기나긴 터널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끝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친 후 남편과 와인 한잔을 하였다. 낮에 그녀를 만난 이야기는 했지만 더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저녁 내내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뱅뱅 돌았다.
어쩌면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슬퍼 보였고 아직 그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것 같아 보여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는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이들 또한 넘어서기 힘든 사회적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의 프랑스에서조차도 아직은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그녀가 남편의 진짜 모습을 인정한건 어쩌면 그녀만의 그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이혼한 후에도 그녀를 계속 돌봐주고 연을 이어갔다는 건 그녀에 대한 그만의 사랑의 방식이었는지도...
부부관계에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이 존재하지는 않으리라, 서류상으로 이혼은 했지만 헤어진듯 하면서도 안 헤어진 것 같은 그 두 부부를 보며, 때로는 이렇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 앞에서 서로 갈등하며 미워도 하지만 결국 정말로 사랑했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듬을 수 있는 '측은지심'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도 사랑이라면 말이다.
자신의 아픔보다 남편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포용할 수 있는 강인한 내면을 가진 그녀가 맞이할 앞으로의 삶에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