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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Feb 27. 2022

아프리카 속 짝퉁 신라면의 진실

라면 예찬

#1. 싸나이 울리는 신라면 , 내 마음 울리는 신라면


아프리카에서 살던 그 긴 날들 중 어느 날,,,

농심으로부터 국제택배를 받았다.(참고로 광고 절대 아님^^)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보내는 국제운송비도 비싸기도 했지만 중간에 오다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부모님한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국제택배를 아프리카 살면서 처음 받아 보았다.

나는 농심을 알지만 농심은 나를 모르는 그런 사이에서,  농심으로 부터 이런 국제택배를 받으니 왠지 유명 연예인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답장을 받은 느낌이랄까?



이 이야기의 발단은 바로 아프리카 가봉의 어느 중국 슈퍼에서 발견한 '신라면'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남편 김 차장이 일찍 퇴근하는 길에 중국 슈퍼에 들렸다며 내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봉지 안에는 언뜻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뻘건 라면봉지- 사나이 울리는 라면  '신라면'이었다.

(내가 한국 떠나기 전 신라면 광고 문구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었는데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 그렇지 않아도 라면을 못 먹은 지 몇 주는 된듯한데 한국 라면이라니~^^

오~ 대박!!

'중국 슈퍼에 신라면이 있었어? 와~ 도대체 몇 개야? 열개가 넘네? 웬일로 물건이 많았나 보지?"


'응,,, 신라면 같은데 포장지가 좀 달라, 그래도 '신'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으니까 맞겠지?!"


그런데, 김 차장이 건네는  비닐봉지에서 라면을 막상 꺼내 보니 좀 이상했다.

'뭐야아~~~ 신라면 짝퉁이야??'

온통 한자 투성이에 한글은 찾아볼 수도 없고, 순간 중국에서 만든 가짜 라면인가 생각하였다.

한자 잘알못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라면 봉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아는 한자는 커다랗게 쓰여있는 '신'이 다였던. 그리고 그림을 보고 '새우맛'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듯 :D)


우리는 그 중국 신라면이 미심쩍긴 했지만 일단 한번 끓여 보기로 했다.

끓일 때부터 강한 해물 향이 올라오는  중국 신라면을 한 젓가락 맛보았는데,,,

... 뭐지? 면발 식감도 다르고, 별로 맵지도 않을뿐더러 새우 향만 강한, 내가 좋아하는 그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을 느낄 수 없는,  확실히 우리나라 신라면이라고 하기에는 맛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많이 났다.

라면 자체의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내 입맛이 기억하고 있는 신라면 맛과 다르니 별로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짜 중국에서 만든 짝퉁인가???

'이거 가짜 같지?'

'글쎄, 농심 중국 공장에서 만드는 거 아닐까'

'검색해 보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같은 포장지로 보이는 신라면이 중국 농심 공장에서 만드는 '새우맛' 신라면인 것 같았다. 중국 현지인 입맛에 맞게 출시된 거라 하는데…

그런데 (그 당시 아프리카에는 수출을 안 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 같음)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둘 중 하나다. 진짜 중국에서 만든 한국 라면 짝퉁이던지 아니면 중국산 신라면 정품이 중국 보따리 장사들에 의해서 흘러 들어온 것이던지.

둘 중에 어떤 이유가 되었건 한국 사람인 내 입장에서는 두 이유 모두 불편한 것이었다.(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 듯..)

그때, 중국은 사드(THAAD) 배치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했던 때였는데, 앞에서는 불매 운동하고

뒤에서는 김치 짝퉁을 만들어 파는 것도 모자라 라면까지 짝퉁을 만들어서 파나 하는 생각에 괜히 열이 받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한국 농심에 직접 메일로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농심 고객센터에서 답장이 왔다.

내가 보낸 사진 속 라면을 확인해 본 결과 중국 상해 농심에서 만드는 새우맛 신라면이 맞다고,,,

정품이라고,,, 

얼마 후 문제의 라면들은 아마도 중국인 보따리 장사꾼들에 의해 흘러 들어간 것 같다며... 자사 제품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과 함께 나는 농심으로부터

다양한 맛과 사이즈의 '신라면'과 새우깡이 든 국제택배 박스를 받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나를 울리는 신라면!




#2. 내게 있어 라면은 OO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라면 하나에 뭐 그렇게까지… 하고 좀 머쓱하기는 하지만,

그때 아프리카 생활에서 라면이 내게 주는 의미는 그깟 라면이 아닌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국 양념이나 한국식품이 정말 귀하다.

특히 내가 있었던 가봉에서는 구입하기도 쉽지 않지만 어쩌다 들어오는 한국 슈퍼에서 구입하는 한국식품들은 가격도 후덜덜.

게다가 당시 가봉에는 그나마 있던 작은 한국 슈퍼가 문을 닫는 바람에 다양한 한국식품 구입이 힘들었고,

어쩌다 '발견'하는 한국 라면은 유통기한이 좀 지난 거 조차도 애교로 넘어갈 정도로

그곳에서는 라면 한 봉지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와~  유통기한 지난걸 어떻게 먹어? 할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살다 보면 그게 가능해진다.

늦은 밤 야식이 먹고 싶을 때나, 숙취에 시달리는 어느 날 아침이 되면, 그것도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으니 :D


현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이 해외출장 다녀오는 길에 한국 슈퍼에서 사 온 라면을 먹는 날이면 그 고향의 맛에 눈물, 콧물 다 빼면서 훌쩍거리고, 밥까지 말아 국물까지 원샷!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에서 한국 라면 먹었다고 블로그에다 자랑질? 하며 인증샷까지 올렸던 ~  

수납장을 열 때마다 남아있는 라면들을 보면서  '오~ 아직 몇 개 남아있네 '하며  행복감을 느끼곤 하였다..

(무슨 라면 몇 봉지에 행복감까지,,, 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데 아주 최적화?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끔 해외출장에서 남편이 돌아올 때 자리가 여유가 되면(VIP 수행 중 전용기를 타고 들어오는 경우) 라면을 박스채로 구입해서 올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라면 파뤼 파뤼 party party ~~


그러고 보면, 다른 한국음식들도 많은데 왜 하필 라면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라면을 먹는다는 건 어쩌면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위로가 되었나 보다.

한국이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나고, 학교 교내 매점에서 함께 컵라면을 사 먹었던 친구들이 생각나고,,, 그렇게 한국에 있었을 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라면들은 내 머릿속에 기억의 창고로 남아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추억으로 달래 주게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집에 라면이 똑 떨어진 어느 날,,, 이럴 수가?! 찬장을 열어보니 정말 라면이 한 개도 남아있질 않았다.

전날 과음으로 해장이 필요했다. 해장에는 라면인데 말이다...

목마른 놈이 (=어젯밤 술 마신 놈) 우물 판다고 남편 김 차장은 라면을 '제조'하기로 했다.

남편은 다행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설거지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가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면 뽑는 기계에서(이탈리아에서 사 온 건데 우리 부부의 아프리카 인생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해주었던 녀석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만두, 칼국수, 짜장면 등을 자급자족하는데 몸 바쳐 많은 기여를 했던) 면을 뽑고, 기름에 튀기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한국 슈퍼만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라면이지만, 아프리카에서 고향의 맛이 그리운 남편에게는 이런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 라면 끓여줄 때 매운 것을 못 먹는 아이들은 수프 하나로 반반씩 나눠 끓여 주었는데,

그때 꼬불쳐 놓았던 라면수프를 갓 만들어진 라면에 넣고 끓여 먹으면~

캬하~ 국물 맛이 끝내줘요~~ (결국 신라면 수프가 다했던)



후루룩후루룩 라면을 술술 넘기며 남편에게 '엄지 척' 한번 , 손가락 하트 뿅뿅( 남편의 다음 요리의 동기부여를 위해 꼭 필요한 제스처임) 날려주고~

그렇게 라면 하나로 아프리카의 어느 하루를 소소한 '기쁨'으로 보내게 된다.


내게 있어 라면은 '위안'이다.




#3. 라면 예찬


나도 그렇지만 한국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라면을 먹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감기몸살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먹고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말라리아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내 경험상, 진짜 심하게 말라리아에 걸리면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하지만 감기몸살에는 어떤 의학적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기분상이든 뭐든 정말 효과가 있긴 했다.

으슬 으슬 추울 때 매운 신라면 하나 땀 뻘뻘 흘려가며 끓여 먹은 후, 돌리프란(해열진통제)한알 먹고 이불 덮고 끙끙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개운하기는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스턴트 음식이 건강에 안 좋다는 것 마저 잠시 잊게 해 준다.

마음도 위로받고, 몸도 위로받는 신기한 라면의 세계 :D


농심에서 보내주신 라면은 내가 봉사하고 있던 한글학교 아이들과 현지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다.

특히 매운 한국 라면을 우리 집 아이들보다 더 잘 먹는,  옆집에 사는 소녀 쎄나와 그녀의 엄마는 내가 건넨 신 라면을 받고 얼굴 가득 웃음꽃이 만개했다.

이들에게도 역시 라면은 귀한 것이었다. 먹고 싶어도 구하기도 힘들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으므로,,,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쎄나에게 라면을 끓여주면 후루룩 후루룩 마치 한국사람처럼 소리 내며 매운 라면을 어찌나 잘 먹던지 :) 역시 한국 라면은 아프리카에서도 통했다. 얘들 입맛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참 순하고 낙천적이었다

우리가 외국에서 마주치는 흑인들과 아프리카 본토에 있는 사람들과는 많이 성향들이 다르다는 것을 난 그때 알았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들은 내게 라면을 받으면 항상 옥수수나 바나나, 감자 등 무언가를 들고 왔다. 또 자신들의 명절이나 축제날 먹는 음식이라며 항상 잊지 않고 챙겨주던 소박하고 인정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나는 라면으로 그들과 정을 나누었다.


아프리카에서 먹는 라면은 내게는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술 마신 다음날은 해장국이 되기도 하며, 또 어떤 날은 감기몸살을 치료하는 약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처음에 서먹했던 내 아프리카 이웃들에게 다가가 소박한 정을 나눌 수 있게 해 주었다.

만약 아프리카로 떠나는 이가 있다면 꼭 챙겨가야 할 것 중에 하나로 '라면'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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