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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Feb 18. 2022

경호원 아내의 슬기로운 아프리카 생활.

#1. Bienvenue chez nous (비앙브뉘 쉐 누)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VIP 경호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과 우리 가족에게 가봉 정부가 제공해 준 집은 가봉의  수도인 리브르빌에 있는 라 씨데 드 라 데모크라씨(La cité de la Démocratie) 안에 있는  고급 레지던스 형태로 된 집들 중 하나였는데 이곳은 주로 가봉을 방문하는 국가원수들이니 국내외 귀빈들 또는 우리 같은 외국 공무원이 주거하거나 국내외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이는 곳이었다. 데모크라씨 앞은 항상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며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입구를 지나 아스팔트 길을 쭈욱 따라 도착한 '우리 집'은 맨 끝에 있었다.

집 주위로 보이는 건 산인지 숲인지,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들이 울창하였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에 앞으로 집안일을 도와줄 메이드와 이 집 관리인과 그의 아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Bienvenue chez nous' 환영한다는 말을 하며 우리에게 인사하는 그들의 첫인상은 따뜻했고 친절해 보였다. ‘오~ 메이드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집안일을 도와줄 메이드까지 있다니 “뭐야 뭐야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거야~ “ 생각하며 나도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내가 영어가 아닌 불어로 말하는 것에 놀라면서도 좋아했다.

메이드와 관리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 구조는 신기하게도 부부 침실이 부인용 침실과 남편용 침실이 따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부인 쪽에는 욕실, 드레스룸과 화장대가 있었고 방에는 슈퍼킹 사이즈로 보이는 커다란 침대와 붙박이 장, 그리고 고급스러운 서랍장이 놓여 있었으며, 작은 소파와 미니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남편용에도 욕실이 따로 되어 있었다.

오호~ 나쁘지 않은데? 하며 속으로 좋아했다. 남편 코코는 소리에서 이젠 해방인가 싶었다.

뭐야, 왜 따로 되어 있지? 하는 남편 김 차장 말에 못 들은 척하였다.

앞으로 코골이가 심한 남편 때문에 밤잠 설치는 일도 이제 없겠다 싶은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이들이 자기들이 쓸 게스트 룸은  엄마 아빠 방과 너무 떨어져 있어 무섭다며, 엄마방 옆에 있는  '남편용 침실'에서 자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같이 자자고 안 하는 게 어디냐 하며 순순히 양보해 주었다. 사실 프랑스에서 나와 계속 붙어 자던 ‘엄마 껌딱지’였던 큰 녀석이 여기 와서까지 그럴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관을 지나야 보이는 거실도 운동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과장해서 그만하다고 할 정도로 넓었고, 게스트 룸과 서재도 있었다. 주방은 집기류가 좀 낡아서 실망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금빛 테두리를 두른 프랑스식 올드한? 고급 식기류들을 보면서 이 정도면 상상했던 거 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낯선 땅에서의 첫 하루가 긴장되었는지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무언가 내리치는 듯한  커다란 소리에 우리 부부는 둘 다 놀라 뭐야! 뭐 뭔 소리야? 하며 후다닥 일어나 천장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비몽사몽간에 뭐 큰일이라도 났나 싶었다.

까만 암흑 속에 빗소리만 들렸다. 세상에 비가 오는 소리였다. 생전 처음 듣는 천장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빗소리에 아이들도 모두 깨어 우리 방으로 뛰어왔다. 비가 그냥 비가 아니었다. 장대비처럼 쏟아붓는 아프리카의 비는 한국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천둥까지 치자 아이들은 무섭다고 하며 우리 침대로 후다닥 올라왔다.

......

침실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냐...

또 이렇게 넷이 붙어 잘걸...

겨우 잠든 두 아이들을 침대 가운데 놓고 우린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환영 한 번 거창하게 받았네~

비는 새벽까지 계속 내렸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의 우리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그땐 미처 몰랐다.

천장이 내려앉는 듯한 빗소리 따위는 이 집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2. 쓰리 고를 맞았다


그곳에서의 생활중 가장 불편했던 건 잦은 단수와 정전이었다.

특히 지리적인 위치로 물 공급이 잘 안 되어서 물이 끊길 때마다 소방차? 가 와서 물탱크에 물을 넣어 주곤 했다. (일반적으로 단수가 되었다고 물을 공급하기 위해  소방차가 오지는 않음, 다만 외국공무원을 위한 정부의 배려였음)

물 사정은 시내에 사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잦은 단수로 늘 물을 따로 받아 놓아야 했고, 현지인들은 커다란 대야 같은 곳에 빗물을 받아 빨래를 하는 등 상하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처음에 몇 번의 단수와 정전을 겪은 우리는 이 불편한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며 농담을 주고받는 경지? 까지 이르렀다.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남편 김 차장은 물이 안 나와 설거지를 못하고 있었던 어느 날,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더니  '이 정도는 원 고지 '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내게 웃으면서 '단수만 되면 원 고, 단수에 정전까지 되면 투 고',  그런 남편의 농담에 내가 ‘그럼 쓰리고는? ‘하자

단수에 정전에, 핸드폰까지 나가는 거지 뭐,

하하 맞네 맞아,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쓰리고까지 맞으면 진짜 웃기겠다 ' 하며 깔깔 웃었다.

경호 일을 시작한 후 길지 않은 적응기간을 거친 남편은 해외출장을 자주 떠났다.

그날도 남편은 출장 중이었는데 ,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하기 위해 내방 욕실로 갔다.

한참 샴푸로 머리를 감고 헹구려 하는데 갑자기 샤워기 물이 뚝 끊기는 것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황당했던…

어엇 또 물이 끊긴 거야?!  하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주위가 깜깜해졌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단수도 정전도 이미 몇 차례 겪었지만 이게 동시다발로 일어나다니…

갑자기 남편이 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단수에 정전까지 , 투 고네...

미쳐 샴푸 거품을 다 헹궈내지 못한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아이들도 무섭다며 방에서 엄마를 찾았고, 막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주위는 정말 암흑이었고 앞도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잠깐만 얘들아~ 괜찮아 엄마 있잖아

엄마 옷만 입고 갈 테니까 방에 그냥 있어’

아이들이 겁먹을까 봐 난 아무렇지 않은 듯 크고 경쾌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그곳은 시내와 달리 숲 속이라 밤에 정전이 되면 주위는 온통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더듬더듬 느낌으로 어떻게 수건을 찾아 거품이 그대로 묻은 채로 머리를 싸매고 다시 옷을 찾았다. 다행히 옷들은 매트 옆에 던져놓은 채로 있어 난 후다닥 옷을 입고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의 플래시 기능을 이렇게 써볼 줄이야, 얼른 아이들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핸드폰 불빛에 아이들이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이산가족 상봉처럼 아이들을  와락 끌어안으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 놀란 아이들에게 계속 괜찮다고 달래 주면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히 아이들을 이곳까지 데리고 와서 고생시키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핸드폰에 의지? 한채 우리는 전기가 다시 들어오길 기대했지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아직 자기에는 좀 빠른 시간이라  양초라도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거실로 가려는 순간 갑자기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간 것이다. 오 마이 갓!!!

헐,,, 이런,,, 결국.. 물 끊기고 전기에, 핸드폰까지 나가다니,,, 농담할 때는 재밌다고 웃어넘겼지만 현실로 닥치니 웃음은커녕 정말 황당했다. 멘탈상실...

핸드폰 충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는데 계속 켜놓고 있으니 오래 못 견디고 꺼진 것이었다.

정전으로 인해 에어컨은 꺼지고  방은 더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밤에는 온도가 많이 내려가서 더위 걱정은 안 되었지만 혹시라도 모기라도 들어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직 문단속도 안 했고, 어쩌지…

냉장고랑 냉동고에 있는 음식들은 다 어쩌고.

도둑이라도 들면… 남편도 없는대…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할 수 없이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심심하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대로 밤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거실에 가보기로 했다. 얘들아 천천히, 조심히 따라와

하면서 난 어둠 속에서 주위를 살피며 거실로 향했다.

방에서 거실까지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이럴 때는 집 넓은 게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팔로 앞을 허우적거리듯이 하면서  거실에 겨우 도착했다. 거실 문 옆에 바로 있는 콘솔에 손이 닿았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콘솔 아래 서랍에서 양초를 보았던  기억이 있기에  손으로 더듬더듬 서랍장을 열려고 하는데,

큰 아이가 큰소리로 ‘엄마 엄마 여기 따블레뜨(태블릿)  있어!’ 하였다. 동시에 아이들 얼굴이 환하게 보였다.

태블릿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큰 아이가 게임하고  콘솔 위에 올려놨던 것을 발견? 한 것이었다. 오~ 대박! 심봤다! 심 봤어! 이제 살았다~

태블릿은 충전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콘솔 서랍에는 아쉽게도 양초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태블릿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주방 뒷문, 거실 발코니 문, 그리고 현관까지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후 다시 아이들 방으로 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잠들 때까지 태블릿으로 좋아하는 만화를  보며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들을 제대로 자리에 눕혔다.

갑자기 샴푸기가 남은 젖은 머리를 감아올렸던 수건이 풀어졌다. 젖어 있던 머리는 거의 물기가 말라 있었고,

머리카락들은 서로 뒤엉켜 있었다.

괜히 눈물이 나왔다....




#3. 이왕이면 행복을 짓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바로 슈퍼에 가서 손전등을 여러 개 구입하였다. 아이들 휴대용으로 두 개 , 각 방마다는 물론 거실, 주방에 까지 비상사태? 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양초도 박스채로 구입하였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온 후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에구, 많이 놀랬겠네,,,

할 줄 알았는데,,, 와... 이 싸람이.. 글쎄

어? 그래 , 그래도 재미있었겠네,,, 그러는 것이었다.

어엉? 뭐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고생했다고 위로해 줄줄 알았는데

‘재미라니? 재미라니잇!!’

내가 속상해 하자 그제야  남편은 나를 달래며 얘기했다.


알지 알아, 울 색시 고생하는 거,

근데 어차피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우울해하고 그러는 것보다,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또 해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견뎌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잖아,,,

나 없이도 당신이 잘 해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럼 됐지... 우리 스스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자~

.....


그 후로 나는  ‘쓰리 고’를  맞는 일은 없었다.

단수와 정전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은 몇 번 더 있었지만,

내 핸드폰은 항상 충전이 빵빵하게 되어 있었고, 방마다 손전등은 비상용으로 항시 대기 중이었으며

양초도 늘 떨어지는 일 없이 사다 놓았다.

밤에 정전이 되는 날이면 나는 식탁에 촛불을 켜고 분위기를 내었고, 아이들은 거실 식탁의 의자들을 끌어 모아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천막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 놀았다.

우리는 이불 천막 안에서 손전등을 켜고 그림자놀이를 하거나 한국의 '쌀보리'라는 게임을 하였다.

요즘도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 하는 게임이라

정전이 되면 더욱 할게 없어지는 지루한 아프리카 밤을 아이들과 보내기에는 꽤 재밌는 놀이었다.

그런 날이면, 늘 게임을 하거나 TV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나를 보고 웃고 있었고, 각자 방에 있다가도 정전이 되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보내는 그런  시간들을 생각하면 물이 안 나오거나 정전으로 오는  생활의 불편함을 겪는 일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되었다.


어느새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난 아프리카에 마음을 열었다.

내가 마음을 여니 아프리카가 내게 다가왔다.

진한 울림이 있었던 남편의 말은 나를 바꾸었고,,,

나는 그곳에서 힘들다고 울상을 짓기보다는 행복을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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