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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Mar 19. 2022

파리 엘리베이터에 프랑스할머니와 단둘이 갇혔더니...

나를 구한 멘탈 갑 프랑스 할머니

#1. 낡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프랑스 할머니와 단 둘이 갇혀버렸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구조됐다.

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것도 4시간 가까이...

낡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것이다.

요즘 이렇게 지나온 내 해외생활을 브런치에 하나하나 올리다 보니 정말 나는 굉장히 다사다난하게 외국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못 받아 괴로웠는데,  이제 문명사회로 귀환한 나에게 엘리베이터에까지 갇히는 경험까지 맛보게 하다니,,,(그저 웃지요...)


해외생활 ‘끝판왕’이라는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그날 남편 김 차장은 집에서 저녁 준비 중이었고, 퇴근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던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위층 할머니(친하진 않았음)를 만났다.

봉 스와 ~ Bon soir (저녁 인사)를 가볍게 나누며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4층, 할머니는 5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서너 사람만 타도 꽉 차는, 작고 낡은 엘리베이터였다.

할머니와 나의 엘리베이터 갇힘사고 후 몇번의 오작동으로 다시 새것으로 교체됨

1층~ 2층~을 지나 3층을 지나고 4층에 도착하나 했는데 계속 올라가는 화살표 표시만 나타나더니 이상한 굉음 소리와 함께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불이 나갔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얼마 전 프랑스 외곽 쇼핑센터에서 엘리베이터 사고로 어린이가 죽은 사건이 떠올랐다.

우리 아파트가 고층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건물 아래 슈퍼 마켓이 있어서 슈퍼 지하층을 포함하면 꽤 높은 건물에 속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핸드폰을 켜들고 다시 한번 4층을 누르고, 5층을 눌러봤지만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고, 뒤에 조용히 서 계셨던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해 보이셨다.

할머니는 비상벨로 연락해 보자고 하셨지만 벨을 눌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이었고, 프랑스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이 한국 같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 갔다.

우선 남편 김 차장한테 전화로 상황을 알리고 갸흐디엉(아파트 관리인)한테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진짜 아무도 안 오면 할머니와 나는 캄캄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말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저녁 하다 말고 놀라서 뛰쳐나온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내 목소리 들려?'

남편이 내 전화받자마자 갸흐디엉에게 연락했더니 하필이면 오늘 갸흐디엉은 외출했고 이번 주말은 다른 사람이 임시 근무를 한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의 119인 pompiers (sapeur-pompiers 구조대원 소방관)뽕피에에 전화했더니 일단 비상벨로 계속 연락을 해보라고 했단다. 참내,, 말이 안 나온다.


'아니 비상벨을 눌렀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 아후 오늘 금요일 저녁인데,,,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워,, 숨을 못 쉬겠어"


'괜찮아, 내가 알아볼게,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숨 크게 쉬면서, 너무 힘들면 바닥에 잠깐 앉아 있어.

내가 엘리베이터 회사에다 직접 전화해 볼 테니까 걱정 말고'


'이게 말이 돼?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갇혔는데 아무도 비상벨에 응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잠시 우리 부부가 당황해서 떠들고 있는 와중에 너무 조용한 할머니.

순간 할머니는 어떠신지 걱정이 되었다. 미동도 않은 채 가만히 서계시길래 괜찮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셨다.

근데 내가 안 괜찮은...

괜히 기분에 호흡도 가빠지는 것 같고, 이 좁은 공간에 산소가 얼마나 남아 있고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말도 안 되는 걱정이었고,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그 당시엔 정말 심각했음) 다시 비상벨을 계속 눌렀다.

결국 안내원 같은 프랑스 여자랑 통화했는데 세상에나! 45분 정도 걸린단다.

……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 말씀,

'그래도 온다니 다행이네요~'라고 하신다.

오~~ 이 할머니 뭐지? 나 같으면 우리가 언제부터 갇혀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따질 것 같은데,,,.


잠시 후 할머니의 전화벨이 울렸다.

'응 괜찮아, 수리기사가 45분 정도 걸린다고 아까 했으니 이제 곧 올 거야, 걱정 마'

누군가와 통화하는 할머니 목소리는 떨리는 음성도 아니었고, 마치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통화를 마치셨다. 나는 막 남편한테 흥분해서 전화해서 어떡하냐고 떠들었는데,,, 할머니의 초 긍정적 태도를 보고 프랑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을 받는다더니 참 대. 단. 하. 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벌써 1시간이 경과했다. 핸드폰 손전등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어둠에 적응해 갔다. 나는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물도 마시고 싶고, 점점 불안해졌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 오는지 물어보려고 또 한 번 비상벨을 눌렀는데,, 더 이상 아무도 응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보시면서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2. 아우라가 느껴졌던 멘탈 갑 프랑스 할머니


할머니는 남편이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라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계속되는 할머니 얘기에는 이 아파트 밑에 있는 슈퍼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자꾸 옆집을 침범해서 걱정이라는 등, 할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면서 나도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새 나는 불안한 기분도 없어지고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어쩌면 공포심으로 인한 나의 착각일 수도)도 잊어버렸다.

밖에서 계속 보초?를 서는 남편에게 일단 가서 애들 밥 챙겨주라고 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기계음 같은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밖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 김 차장 목소리였다. 상황을 설명하는 남편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수리기사가 왔나 보다 하고 할머니와 나는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45분 걸린다는 사람이 거의 4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안 왔으면 할머니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밤샐 뻔했으니.. 그때 시각 밤 11시 …


3층과 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오작동이 났던 모양이다.

두층 사이에서 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환한 불빛 사이로 수리기사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봉스와~ 매담 싸바? (Bonsoir,  mesdames~ ça va?) 좋은 저녁입니다. 다들 괜찮으세요?


나는 속으로 '너 같으면 괜찮겠냐' 하고 싶었지만 4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아저씨가 너무 반갑긴 했다.할머니를 먼저 올려 보내 드리고 , 남편이 나를 안듯이 들어 올렸다.

와~ 살았다!


할머니는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서 4시간 가까이 갇혔다가 구조되면서도 아무런 항의나 불평이 없으셨다.

그저 수리기사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시면서 총총히 사라지셨다. 그 뒷모습에서 왠지 ‘멋짐’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할머니로 인해 정말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갇혔다 구조된 이 일이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수리기사 아저씨는 밤늦게라도 와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들었다.

45분 도착이 4시간이나 되어서야 나타났는데,,,,???




#3. 트라우마도 이기는 할머니의 긍정 바이러스^^


감정적으로만 상황에 대처했던 나와 다르게 당황하지 않고 -불안에 떠는 나를 자연스럽게 '일상 대화'로 이끌어 내시어 나의 '불안'을 잊게 해 준- 여유 있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신 위층 할머니,,,

엘리베이터에 한 시간만 갇혀 있어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구조된 후에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직장동료 중 폐소 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하지만 4시간 가까이 갇혀 있었던 나는 다행히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어떤 트라우마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할머니가 나를 구하신거였다.

긍정 바이러스~

옆지기를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나와 함께 탔던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이 공포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아마 우린 둘 다 구조된 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마도 난 폐소 공포증이나 엘리베이터를 더 이상 타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운 좋게도 멘털 갑 프랑스 할머니 덕에 어떤 '정신적 외상' 없이 이렇게 멀쩡히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게 된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있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같다.

나에게는 그때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사고가 처음에는 큰 사고라 생각되었지만,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그녀의 영향을 받은 나는 사고로 인한 후폭풍을 겪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나도 위층 할머니처럼 긍정 바이러스를 옮겨 주는 그런 선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 05화 한국에는 있는데  파리에는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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