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아파트에서 새벽에 들리는 sos 신호
가족이나 결혼으로 구속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즐기려는 프랑스 사람들, 특히 파리에는 이런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독신자 셀리바테흐 célibataires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소비하고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인다. 가족단위의 다인가구들이 많이 거주하는 파리 외곽에 살 때는 잘 몰랐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파리 아파트에 살면서 가까이서 지켜본 1인 가구의 삶이 젊어서는 좋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있어 보였다. 한때는 나도 비혼 주의자였기에 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독신녀 할머니들을 보면 만약 나도 결혼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저런 모습이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프랑스 나 홀로 가구가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2006년만 해도 프랑스 독신자 가구(1인 가구, 이혼 후 혼자 사는 가구, 독거노인 모두 포함)가 천만명이 넘었었다. 3가구당 1가구는 혼자 사는 가구였는데 최근 통계를 보니 오히려 80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고 한다.(INSEE 프랑스 국립 통계 기관 집계) 프랑스의 독신가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여기에는 코로나 상황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녀 또는 동성끼리 동거로만 살아도 법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팍스'라는 제도로 커플 가구가 늘어났고 또 솔로의 삶을 선호했던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파리에는 결혼 안 한 1인 가구들이 많이 산다.
파리 15구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 은퇴한,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우리처럼 가족이 사는 집 몇 가구와 나머지는 독신자들이다. 전에 살던 파리 외곽 우리 집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이웃과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웃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여기 아파트 이웃들에게서는 그런 모습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가끔 할머니들 몇 분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그 마저도 코로나로 사라져 버렸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우리는 그렇게 아파트 현관 앞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스쳐가듯 인사만 나누는 서로의 이웃으로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 소리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새벽에 잠을 깬 시간이 새벽 세시였으니…
탁탁탁 뭔가 둔탁한 소리가 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불안한 소리로 조용히 울려 퍼졌다.
뭐지? 잠결에 들리는 예기치 않은 소리가 맘을 불안하게 했다. 평소에도 시끄럽게 하는 또 옆집인가? 싶어 가만히 들어보았지만 소리는 잠시 멈추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소음은 다시 계속되었고 남편과 나는 그렇게 잠을 깨버렸다. 설마 이 새벽에 누가 못질을 하는 건 아니겠지?,,,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계속 뒤척였고, 남편은 뭔지 느낌이 안 좋다면서 잠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둔탁한 소리는 어떨 땐 탁탁 두 번 울릴 때도 있고, 어떤 땐 둑탁둑탁 무슨 리듬을 타듯이 계속 울리고, 또 한동안 잠시 조용해지기도 하고,,, 들려오는 소리가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며 남편은 누군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면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결국 완전히 잠이 깨버린 나는 잠시 후에 우리 아파트 복도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어 뷰로 내다보니 남편과 다른 이웃 몇몇이 우리 앞집 할머니 집 앞에 서있었다. 앞집 할머니도 혼자 사시고 계셨다. 그 사람들은 한 번씩 앞집 할머니 문에 귀를 갖다 대보던가, 똑똑 두드린다던가,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뭔 일 났구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도 나가보았다. 밖으로 나온 나를 보며 남편은 아무래도 앞집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뽕피에(sapeur-pompiers 소방 구조대)에 연락했다고 하였다.
아까 남편이 밖으로 나가보니 벌써 몇몇 주민들이 이미 복도에 나와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들은 그 소리가 누군가의 sos 신호로 생각이 되어 도움을 청하는 '신호'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다들 이 새벽에 나온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모르는 척하는 맨 위층 까칠한 청년과 주말마다 사람들을 불러다 늦게까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파티를 하며 시끄럽게 하는, 이웃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같던 옆집 남자가 그 사람들 속에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남편과 아파트 주민들은 둘씩 나뉘어서 그때부터 아파트 우리 동 맨 위층부터 1층까지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새벽에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앞집 할머니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럴 수가,, 나는 그냥 이웃이 내는 소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sos 신호였다니... 아차 싶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범죄나 안전사고에 대한 생각들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래도 둔한 나와 달리, 경호원 출신이라 그런지 눈치 빠른 남편이 알아차리고 나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마담 괜찮으세요? ça va Madame, Vous allez bien? 하며 옆집 남자가 문 앞에 바짝 얼굴을 대고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툭 툭,,, 새벽에 울리던 같은 소리가 할머니 집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불안해하시지 않게 계속 말을 건넸다.
주민들의 말소리에 할머니는 한 번씩 같은 소리를 내셨다. 다행히 소방 구조대원들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상황 설명을 전해 들은 후 나와있던 주민들 보고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였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남편과 나도 집안으로 들어왔고 출근 준비를 하였다.
밖에서는 소방 구조대원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현관문을 못 열었는지 할머니 옆집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발코니를 통해서 들어가려나 봐’ 하는 내 말에 남편이 말했다.
‘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 ‘
…..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 자 그런지 피곤하고 긴 하루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쓰레기 수거함을 정리하고 있던 갸흐디엉(아파트 관리인)과 마주쳤다. 우리 앞집 할머니가 어떻게 되셨는지 혹시 아는 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할머니는 어제저녁에 샤워 마치고 나오다 발이 미끄러져서 욕조에 쓰러진 채 그렇게 정신을 잃으셨다고 했다. 나중에 정신이 들어보니 자신이 낙상한 것을 깨달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손에 잡히는 샤워기로 욕조 바닥을 두드려서 도움을 청한 것 같다고 하였다. 할머니가 샤워기로 욕조 바닥을 치는 소리는 욕실의 환풍기를 통해 흘러나왔던 것이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데 욕조에 넘어져서 정신을 잃으셨다니… 그나마 주민들이 할머니의 구조요청을 알아듣고 새벽에 찾아 나선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하며 남편이 문을 열자 앞집 할머니가 목발을 짚고 환하게 웃으시며 서 계셨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나도 현관문 앞으로 후다닥 뛰어? 나갔다. 할머니는 다리만 좀 불편하고 다른 다친 곳은 이제 다 괜찮아졌다고 하시며, 그날 자신을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들렸다고 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서 할머니와 우리 부부의 이야기 소리에 옆집 문이 열리면서 옆집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할머니에게 '이제 좀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Bonsoir , Comment ça va madame, vous allez bien?)하며 웃었다.
할머니도 함박 웃으시며, '보시는 것처럼요, (comme vous voyez Je vais bien, merci) 난 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하셨다. 옆집 남자가 할머니께 앞으로 욕실 매트는 꼭 깔고 샤워하시라고 말하자 할머니가 크게 웃으셨고 옆집 남자도 웃고, 우리 부부도 따라 웃었다. 좀 다치시긴 했지만,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우리 모두는 불행 중 다행이라 얘기하며 할머니가 무사하신 것에 함께 기뻐하였다.
앞집 할머니 일로 같은 아파트 이웃이면서도 무관심한, 남들에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의 문은 닫혀 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서로에게 열려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늦게까지 큰 소리로 파티를 즐기는 우리 옆집 남자처럼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이 다소 '이기주의'로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많은 아파트에서 새벽에 울려 퍼지는 sos 신호에 아파트 주민들은 혼자서 '사고'와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는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밤 잠을 설치는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독신가구가 많은 프랑스에는 1인 가구 사고사도 많다고 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아파트라 그런지 서로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해서일까... 겉보기에는 서로 별 관심 없어 보이고 정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런 일에는 다들 발 벗고 나서는 거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지켜주며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남들에게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서로의 '안녕'을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집 할머니의 일로 내 이웃들의 활짝 열린 마음의 문을 본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그들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