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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eurist May 23. 2024

그럼에도 정치적 예술이 필요한 이유

영화 <레벤느망> 리뷰

 



*영화 <레벤느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어떤 사회를 성취하고자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동기 중 하나다.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태도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지난 십 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책을 쓰는 것은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그가 밝힌 대로 사회 비판에 직업 정체성을 둔 작가들은 정치적 동기로 글을 쓴다. 작품이 아름다울수록 독자와 관객은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기 쉽고 만약 그 입장이 보편적 정의나 윤리에 가깝다면 예술은 사회 발전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다만 정치적 주제는 윤리적 주제와 달리 비판에 직면하기 쉽고 그만큼 다루기 까다롭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동기를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위대함을 보였지만, 그의 작품 세계의 기반인 반전체주의 또한 이제는 윤리적 주제로 분류될 만큼 하나의 보편 선이 되었다. 정치적 글쓰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논제조차 더 이상 정치적이라 할 만큼 논쟁적이지 않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2024년 현시점에서 독자와 관객이 정치적 예술을 마주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미 윤리적으로 대다수가 옳다고 믿는 주제를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해석으로 전달하며 인간다움의 의미를 재고하는 것. 이 목표에 이르는 순간 예술의 역할은 끝일까?

영화 레벤느망은 바로 이 갈림길에서 여느 영화와 구분되는 길을 택하며, 정치적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어떠한 정치적 예술보다 강하게 역설한다.



체험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곧 이입이자 체험이다. 예술은 경험한 적 없는 세계로 독자와 관객을 초대해 타인을 향한 이해를 넓힌다. 독자와 관객은 사건에 담긴 모순과 당사자의 고통을 경험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새롭게 인지한 부조리에 대항한다.


추측건대, 사회 갈등의 상당수는 지레짐작에 근거한 논리로 문제를 판단하려 들 때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조금이라도 당사자의 편에서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했을까? 멀리서나마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겠다는 태도 이상으로, 표면 아래 숨겨진 당혹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고통에 적극적으로 이입한 적이 있을까? 예술은 언제나 여유 없는 우리를 대신해 타인에게 손을 건네왔다.


그러나 정치성을 품은 예술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 또한 이입에 근거한다. 이입은 감정적이기에 위험을 동반한다. 논리와 윤리의 영역을 넘어 감정을 자극하는 예술은 그 자체로 정신을 교란시킨다. 우리는 예술이 정치적 결합을 넘어 수단으로 전락한 역사를, 이성이 감정 앞에 자주 무력했던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예술이 프로파간다로 변질될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화로서 레벤느망의 차별점은 여전히 정치적인 논제를 다루는 대담함에 있다. 영화 개봉 당시는 텍사스에서 낙태 금지법이 통과되고 미국 보수 진영이 로 vs 웨이드 판결 (미국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이 보장한다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 폐지를 추진하던 상황. 여전히 보편에 가닿지 못한 채 표류 중인 논제였음에도 오드리 디완 감독은 자신의 입장을 과감히 영화화했다. 낙태의 자유는 누군가에게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윤리적 문제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설득이 필요한 문제였기에, 한쪽 입장을 대변하는 선택은 영화가 선전 도구로 비칠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다. 레벤느망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분명 정치적인 영화다.


정치적이지만 동시에 필요한 영화다. 앞서 설명한 이입과 체험은 레벤느망이라는 영화의 존재 이유를, 정치적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모호할 때, 옳다고 믿는 판단에 닿기 위해 우리는 이입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합리적 선택의 최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오드리 디완 감독이 비판의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선 이유 또한 이성적 판단의 모순 속에 표류 중인 관객들을 각성시키기 위함일 테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 당시 “저는 이 영화를 분노와 욕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저의 배, 내장, 심장과 머리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한 그녀에게는 소외된 여성의 입장을 알려야만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4DX다"라는 관람평이 증명하듯, 그녀가 온몸으로 고통이 전해지는 강력한 체험 영화를 만든 이유다. 반대 입장에 이입할 기회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반쪽짜리 영화라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한쪽의 입장이라도 이입해보는 경험은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는 감정적 판단을 경계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적 예술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감정적 교감이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예술이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동안 모두가 공허한 외침만을 반복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정치적 예술' 레벤느망의 윤리적, 미학적 가치

레벤느망은 정치적 논제를 넘어 윤리적 논제를 함께 제기한다는 점에서 입체적이다. 영화는 1960년대 프랑스 사회 전반에 퍼진 구조적 모순이 개인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구체화하며 현시대를 반추한다. 주인공 안은 대학 생활 중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우연은 여성 홀로 세계에 저항해야 하는 투쟁으로 변모한다. 기성세대와 전후 신세대 간의 갈등, 대학 교육의 질적 하락과 억압적 사회 분위기, 성적 욕망은 터부시되고 자유 분방함은 문란함으로 규정되는 사회에서 안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녀는 단지 운이 나빴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력적 시선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할 남자에게 부채감은 일절 보이지 않고 임신 중절 수술을 거부한 의사는 오히려 태아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처방해 안의 자기 결정권을 박탈한다. 기성세대가 빚어 놓은 비뚤어진 구조 아래 자유를 향한 욕망이 들끓지만 인물들은 함께 구조를 거부하는 대신 경로에서 이탈한 개인을 거부하며 눈을 감을 뿐이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정치적 논제에 가려져 있던 숱한 윤리적 모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사건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야를 확장한다.



"지난 십 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라는 조지 오웰의 말에서 우리는 정치적 글쓰기만큼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글의 미학에 몰입하는 작가였다. 모든 예술은 결국 미적 성취를 이룰 때 비로소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의미에 있어, 또한 미에 있어 빈틈없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속적인 클로즈업으로 바짝 다가선 카메라는 안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덕분에 관객은 그녀의 삶에 온전히 이입한다. 1.37:1의 좁은 화면비는 클로즈업과 조응하여 다른 인물이 아닌 안에게 오롯이 집중하도록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오랜 시간 그녀의 세계에 깊이 스며든 결과 관객들은 비로소 안이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체험한다. 안 역을 맡은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배우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연기로 하이퍼 리얼리즘 영화를 완성한다. 일련의 과정 끝에 그녀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관객이 확인하는 건 움츠러든 채 떨고 있는 자신의 몸이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정확하면서도 서늘한 연출로 메시지를 극대화하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 결코 논쟁적 주제만으로 이뤄낸 성취가 아님을 증명한다.


많은 관객들은 레벤느망 관람 이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논제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수많은 개인의 인식 속에 변화를 일으키며 정치적 예술의 필요성을, 레벤느망의 존재 이유를 끝내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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