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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Nov 18. 2023

비 오는 세부의 아침

아이와 함께하는 두 번째 세부살이

지금 세부 시간은 오전 9시27분, 밖에는 비가 내린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로비에 앉아 나는 글을 쓰고, 아이는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고, 아이보다 한 살 어린 다른 집 동생은 그림을 그린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다. 보통 주말에는 여행을 가는데, 이번 주는 몬순이 올 예정이라 따로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4주 일정으로 세부에 온 나와 아이에겐 오직 3번의 주말이 주어지는데(마지막 주말에는 한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그 중 첫 번째 주말이 이렇게 시작됐다.


나에겐 이번이 두 번째 세부살이다. 2007년도 대학생 시절 세부에 2달 어학연수를 왔었다. 7살이 되어 내년엔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길게 시켜주고 싶어 한 달 일정으로 다시 세부를 찾았다. 마냥 여행만 다닐 수는 없으니 어학원에 등록해 기숙사에 살면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반까지 수업을 듣고, 그 이후에는 기숙사 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며 보낸다. 모두가 한 기숙사에 살다 보니 밤 9시까지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식당에서 만난다. 한국에선 저녁 6시 무렵이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헤어져 아쉬워하며 집에 갔었는데, 여기서는 늦게까지 마음껏 노니 아주 신이 났다. 침대에 눕히면 3분 안에 잠에 빠져버릴 정도다.


혼자 왔을 때와 엄마가 되어서 왔을 때의 세부생활은 천지 차이다. 함께 수업을 듣는 20대 학생들을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 참 귀엽기도 하고 웃음도 난다. 내가 세부를 다시 찾은 이유는 그 때의 내가 세부에서 지냈던 두 달의 경험이 나에게 참 소중하고 즐겁고 유익했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때문에 국내여행조차 조심스러운 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케어해준다면 아이도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무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세부에서 지낸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일주일차가 된 지금은 역시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끼니마다 음식을 조심해야 하고, 또래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나가면 먹이지 못하는 음식이 많아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필리핀, 대만, 일본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매일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고, 45분씩 진행되는 하루 7교시의 영어 수업을 듣고,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을 한다. 더불어 모든 것이 깔끔하고 원활하던 한국과 달리 방에선 와이파이가 되지 않고, 한국을 여행할 때 묵던 호텔과는 다소 다른 컨디션의 방에 묵으며, 인도와 도로의 구분은 물론 신호등도 없고 각종 벌레가 심심치 않게 출몰하기도 하는 낯선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적응해가고 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식사다. 평일에는 기숙사 식당에서 7시, 12시, 6시 이렇게 하루 세 번 식사시간이 주어진다. 주말에는 10시 반에 브런치, 그리고 5시에 저녁식사를 준다. 어학원 밥은 맛있는 편이다. 냉모밀도 나오고, 잔치국수도 나오고, 쌀국수도 나온다. 하지만 우유,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먹을 수 없는 반찬이 당연히 많이 나온다. 가져온 김자반을 밥에 비벼주기도 하고, 너무 부실하게 먹었다 싶은 날엔 저녁엔 한국식당에 가서 외식도 하며 지낸다. 어학원 건물 1층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시골통닭을 벌써 두 번이나 사먹었는데 맛과 퀄리티는 물론 가격까지 한국과 똑같다. 


오기 전에는 내가 과연 잘 지내다 올 수 있을까, 아이랑 가는게 무모한 일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를 가든 살 방법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혹시나, 알레르기가 나아지지 않아서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내가 아이 옆에 있어줄 수 있을 때 최대한 안전하게 많은 경험을 제공해 아이가 어딜 가든 두려움 없이 헤쳐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싶었다.


정작 세부에 와 보니 나는 한 달 살기조차 큰 용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4개월은 물론 7개월 살기로 온 분도 계시고, 아이 둘과 함께 온 엄마도 계셨다. 떠나오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한 달 살기는 아무것도 아니고, 알레르기는 물론 각별한 케어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세부에서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얻어가야 할 것을 놓치는 일은 없다. 미식 여행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알레르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와 아이의 세부 한 달 살기를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너무 좋으니 꼭 오세요!가 아니라 고민하던 부분들, 세부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보다 생생한 정보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들에 대해 시원한 답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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