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완전히 바뀐 내 삶의 패러다임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20대 역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그야말로 정신 없이 바쁘고 뜨겁게 흘러갔다. 나에게 맞는 일,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 여러 아르바이트와 회사를 거쳤고,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여러 차례였다. 울면서도 이를 악물고 캔맥주를 마셔가며 밤마다 자소서를 써내려 가기도 했고, 미친듯 많은 업무와 회사 내 인간관계 스트레스로 죽고 싶은 날도 많았다. 이 때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력을 다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다닌 어떤 회사들은 정해진 근무시간이 의미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외부로 취재를 나가고 인터뷰를 하러 다니느라 외근이 잦기도 했고, 외근이 끝나더라도 기사를 다 작성해야만 업무가 마감되기 때문에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있거나 집에서도 기사를 쓰고 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힘들고 지쳐 업계를 떠나기도 했고, 일부는 이직해 좀 더 크고 워라밸이 나은 기업에서 커리어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바삭해진 멘탈을 부여잡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쥐어짜내어진 우리들은 사력을 다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내 몸이 아플 정도로 밀어붙여야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렇게 사력을 다하는 강박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20대 때는 그렇게 일해서 인정을 받고 연차를 쌓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아이를 키울 때 그렇게 하다가는 아이도 나도 망가지고 만다.
어느 해에는 프리랜서 치고 제법 돈을 괜찮게 벌었는데, 일에 집중하느라 잠을 줄여가며 일을 했더니 각종 염증질환이 찾아오고 아이도 정서적으로 불안해져 상담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일을 확 줄이고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하기 시작했더니,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아이를 보지 못하고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는 문제가 생겼다. 억지로 남들 다닌다는 학원이며 학습지를 시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거부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이 생겨 아이의 의사와 상관 없이 자꾸만 이 학원 저 학원 체험수업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다. 결국 아이 마음도 불편하고, 내 마음도 불편해졌다.
이러니 아이에게만 너무 집착해서도 안되고, 아이를 방치하고 내 커리어에만 집중해서도 안된다. 둘 다 너무 소중하고, 아이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기에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에너지를 분배해야만 한다.
사람의 에너지는 100%로 한정되어 있다. 아이와 내 커리어, 그리고 살림까지 셋 다 완벽하게 300%를 해내려 하다가는 셋 다 목표에 못 미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우울해져 멘탈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다. 마치 깨지기 쉬운 계란을 손에 쥐듯 조심스럽게 적절한 힘만 주며 셋 다 들고 걸어가는 것 같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고, 지나치게 예민해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끊임 없이 다스려야 한다.
나처럼 20대와 30대를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엄마가 되고 나면 최선이 아닌 '균형'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을 때 사력을 다해 일을 하다 보면 정작 하원한 아이를 기쁘게 돌봐줄 힘이 없어 짜증만 내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만 집중해 내 커리어, 내 취미, 내가 좋하던 일들을 완전히 놓아버리면 번아웃이 금세 찾아오고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땐 홀가분한 마음으로 충분히 쉬고 충전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도 충전하지 않으면 결국 꺼져버려 못쓰게 되는 법이니까. 또 사회가 말하는 이른바 '경단녀'가 되었다고 너무 낙심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일은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있지만, 내 아이의 오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오늘이 가장 어리고 귀여운 날이니까 이 날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내가 진짜로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의 어린 시절을 더 많이 함께해주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좀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했음일까. 아이에게 더 많이 웃어주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했음일까. 아이에게 더 많은 공부를 시키지 못했음일까 아니면 마음이 편안한 아이로 키워주지 못했음일까. 매일매일 여기저기 틀어지는 마음과 내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면서 나는 오늘도 세 개의 계란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