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애 Jul 09. 2024

예쁘지 않아.

<나는 솔로> 보다 느닷없이 부부싸움

<나는 솔로>를 보다 남편이 말했다.

정숙은 성형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보기 불편해.


맞 받았다.


남자들은 못생기면 못생겼다고 싫다 하고
예뻐지려고 성형하면 성형했다고 뭐라 하네?
 자연 미인이 얼마나 되겠어?
성형도 노력으로 봐줘.



성형하면 예뻐질 정도로는 생겨서 태어났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 딸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춘이는 나에게 내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인데, 별개로 예쁘진 않은 것 같아.

-뭐? 춘이가 안 예쁘다고?!

-내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있잖아.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편의 길고 묵직한 다리가 나에게 왔다. 나를 푹 찌르며) 뭐라고?!

-(흐뭇한 얼굴로) 춘이 아빠가 맞긴 하네. 춘이한테 콩깍지 씌었네.


훈훈하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남편은 아니었나 보다. '춘이가 못생겼다고?' 스무 번도 더 반복해서 힘주어 말했다. 믿을 수 없다! 놀랍다! 황당하다! 뉘앙스를 풍기며.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웠다. 내 남편이 딸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진심으로 예쁘다고 생각하는구나.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구나. 진심으로 춘이를 예쁘다고 믿는 사람이 우리 부부 중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왜 춘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예쁨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며 '예쁘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찝찝하기도 했다.


내게 남편의 발끈은 보기에 흐뭇했고 만족스러웠다. '딸바보 아빠군!' 하고 느낌표로 마침표를 찍은 줄 알았는데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안 예쁘다'라는 말이
그렇게 힘주어 흥분할 일인가?


'춘이, 공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했어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을까? 쿨하게 '아닌데?' 하고 넘겼을 남편이다. 내가 춘이의 언어발달이 느린 것 같다고 걱정할 때도 춘이는 씽씽이도 잘 타고, 잘 웃고, 두발 동시에 뛰기도 잘한다며 오히려 나를 건강하게 위로하던 그다.


왜 '못생겼다'라는 말에는 상당히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동안 '못생긴 여자'를 보며 남편이 떠올린 생각들이 혹시 가혹한 것은 아니었을까?


안 예쁘면 어때서?
공부 못하면 어때서?
운동 못하면 어때서?


공부 못하고 운동 못하는 춘이는 그런대로 받아들여도, 안 예쁜 춘이는 특별히 못 받아들이는 그.


못생긴 사람

못생긴 남자

못생긴 여자


남편(또는 남편과 함께 지내온 남자들)이 못생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랄까, 접근법은 어떤 생김새일까?

'우리 딸이 솔직히 예쁘진 않다.'라는 나의 한 줄 평에 평소 느긋한 성품의 남편은 발끈하며 경악했다.


흥분이 사라질 때쯤 마지막에 남편이 덧붙였다.


춘아, 엄마는 외모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네.
그리고 춘이가 안 예쁘대.



가만히 듣고 있다 속으로 말했다.

정작 외모를 엄청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너 같은데?


작가의 이전글 미처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