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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너리 Sep 28. 2022

#3 무지의 탄생

모든 인간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모든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인생이란 백지상태였던 삶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백지상태란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 즉 무지를 뜻 한다. - (한 남자)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주 탄생의 시발점인 빅뱅을 이해해야 하듯이, 한 남자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인생의 첫 시작점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탄생을 줄 곳 빅뱅으로 비유하길 좋아했다.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한 우주도 아주 작은 점으로부터 시작되었듯이 한 남자의 인생도 대한민국 지도를 켜고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스스로도 가끔 이 말을 하고 민망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취업 자소서 첫마디에 쓸 정도로 자신의 탄생을 무언가 큰 사건이 일어난 것 마냥 포장하길 좋아했다.


 한 남자는 대한민국 남쪽 끝에 위치한 완도군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들어갈 수 있는 주변 변두리 작은 섬들 중 하나인 ‘금당도’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금당도의 대부분이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어 산지가 많고 해안절경이 일품인 아름다운 섬으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외부인의 방문과 인적이 드문 완도의 숨겨진 보석 같은 섬이다. 아름다운 그곳에서 어부 인 아버지와 한 때 도시 여자였지만 그의 아버지와의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걸 내려놓고 섬으로 내려온 어머니 밑에서 2남 1녀 중 누나와 남동생 사이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딱히 특별할 것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버지의 가두리양식(물고기 양식)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크게 기울었던 것과 그로 인해 술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어머니와의 크고 작은 다툼이 자주 있었고 그 밖에 여러 가정 풍파가 있었지만 이런 가정불화나 풍파는 누구나 겪는 해프닝쯤으로 여겼다.


 한 남자는 그의 어린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무지와 무식, 그 자체였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생은 저마다 자신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장 상태로 태어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백지장을 조금씩 채워가면서 결국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 했을 때, 그 소설은 완성된다고 믿었다. 백지상태란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 즉 무지를 뜻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점에서 한 남자라는 무지가 탄생했다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삶이라는 백지장이 손에 쥐어진 채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백지장에 무얼 채워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 없이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되고 무얼 써야 할지도 모르는 그 백지장에 우리는 무언 갈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이 무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대부분 성인 이전에는 정해진 레퍼토리로 인생의 1막을 써내려 간다. 가정과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된 기준에 따라 사회 규범과 예의범절을 배우고 정해진 공부와 교육을 받으며,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정해진 학교에 가서 정해진 진로를 향해 나아간다.


 한 남자의 인생 1막은 조금 달랐다. 한 남자가 써내려 간 인생 1막은 ‘무식’이었다.


 다행히도 한 남자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세속의 때가 덜 탄 외딴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웠고,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예절과 행동 방식을 배웠다. 누군가 언어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한 남자는 언어야말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어 자체가 없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예로, 대한민국이 아닌 아마존 정글이나 사파리 초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아무리 인간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생각할 수준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저 풀이나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으며 맹수를 피해 도망 다니며 생존을 위한 삶에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다 죽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 남자는 가정과 금당도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언어를 배우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과 행동양식을 배웠다. 이러한 것들은 문화나 종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으나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도 비슷하게 배우는 것들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전형적인 성장 레퍼토리인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비슷하게 언어와 사회성을 배우며 자라지만 자라면서 각자의 가치관과 성향이 만들어진다.

한 인간의 가치관과 성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어린 시절의 보고 듣고 배우는 환경이다.

물론 국가의 이데올로기나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로 만들어진 가치체계와 기준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한 인간의 인격과 지식수준은 어린 시절 무엇을 보고 듣고 배워왔는지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인격과 지식수준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격과 지식수준은 그 사람이 속해있는 국가나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로 만들어진 척도와 기준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국가에서는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그 사람의 지식수준을 결정할 것이고, 불교 국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아는 것이 그 사람의 지식수준을 결정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한 사람의 지식수준이 결정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윗사람을 공경하고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인격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배워왔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등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채택된 정규 과목을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달달 외워서 시험을 잘 보다가 성인이 되기 전 최종 테스트 관문인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어떤 등급을 맞느냐가 한 사람의 지식수준을 결정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구성원들이 옳다고 믿고 좋다고 정한 기준에 따라 부합하는 행동을 하고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배운 사람 혹은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못 배운 사람 혹은 무식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어떤 것이 옳든 옳지 않든 사회적으로 약속된 것을 따르지 않으면 문제아, 못 배운 사람, 패배자와 같은 부정적인 꼬리표가 붙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고 점점 소외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와 학원에 갇혀 사회적인 인간으로 양육되고 길들여진다. 한 남자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한참 밖에서 뛰어놀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이해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 어린 시절부터 반 강제적으로 주입시키며, 이러한 지식들이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약이 되고 거름이 된다는 어른들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따라왔지만 그들이 옳다고 믿는 사회적 기준을 따르도록 강요했던 것들이 어쩌면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을 병들게 하고 각자의 개성과 색을 빼앗는 독이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라고 한 남자는 생각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회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견주어 볼 때, 한 남자는 굉장히 못 배우고 무식한 인간으로 성장해왔다.


 한 남자는 고향 금당도에서 중학교까지 살았는데 당시 스마트폰이 없을뿐더러 섬에 인터넷 보급도 안된 시절이라 외부와의 정보 교류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었고 유일하게 외부 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상파 방송만 채널만 나오는 TV 뿐이었다. 섬에서 한 남자의 또래 친구들은 대략 10명 있었는데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똑같은 학교 똑같은 반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함께 자라왔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섬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하나밖에 없었고 같은 반 또래가 10명인데 2개 반으로 쪼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남자에게 학업을 포기했다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섬에서 유일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학교에서 그는 일찌감치 눈과 귀를 닫아 버렸다.

선생님의 수업은 자장가와 외계어로만 들렸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억지로라도 시켜보려고 혼내기도 하고 체벌을 하기도 했지만 전혀 그에게 먹히지 않았다. 도시에서 중간 이하였던 학생이 섬마을 학교로 전학 오면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도시와 시골의 교육 수준에 차이가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도 한 남자는 10명 중에 항상 7~10등을 유지했다.


 아무리 작은 섬이고 교육열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건 사실이지만, 1등 하는 자식은 항상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그의 친누나는 부모의 자랑이었다. 한 남자와는 1년 터울로, 바로 위 학년에서 1등을 단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남자는 그의 친누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얼 위해서 저렇게 매일 같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는 이렇게 먹고, 자고, 싸는 본능에 충실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중학교까지만 없었던 섬마을 고향을 떠나 배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공부를 안 할지언정 조용히 학교생활만 하면 좋았겠지만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일탈을 일삼다가 퇴사를 당했고 전학을 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어필한 결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공업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었다. 전학 가기 전 그 고등학교에서 그의 성적은 여전히 같은 학년 또래가 100명으로 늘어났을 뿐 뒤에서 top 10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정신 상태로 공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한 남자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더 날뛰기 시작했다.

지방이나 작은 지역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부모님 체면도 있고 해서 조금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문제아의 파라다이스였다. 한 남자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때리지도 않았고 온순한 편이었다. 그가 언제나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는 이유는 공부를 안 했고, 숙제도 안 하고, 선생님 말씀을 안 들었으며, 귀찮으면 학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한 남자와 같은 성질의 친구들이 넘쳐 났고 그곳에서 한 남자는 문제아라고 소문날 일도 없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친구들이 수두룩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남자는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보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어도 자격증 하나 따지 않았고 생활기록부 출결은 매우 화려했다. 그래도 졸업장은 따려고 퇴학을 면할 정도로만 출결을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경험도, 배움도, 큰 사건사고도 없이 아무 의미 없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한 남자는 영어를 겨우 읽을 줄만 알았고,
수학은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이외 아무것도 풀지 못했으며,
컴퓨터는 인터넷과 게임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단 한 권도 읽어본 책이 없었고,
글을 단 한 줄도 써본 적도 없었고,
감정이 요동 치거나 정신을 자극할 그 어떤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한 남자의 청소년기가 지나갔다.


한 남자는 이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머리에 든 것이 없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고 아무 생각이 없으니 기쁨, 슬픔, 두려움, 행복, 우울 같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니 공감능력이 떨어졌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니 사랑 그리고 설렘과 같은 풋풋하고 아련한 감정을 경험할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육체는 그 어느 때보다 튼실했지만 정신은 시들했고, 살아있지만 생기가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이었다.”


그의 성인 이전의 삶은 그 어떤 스토리도 남기지 못하고 ‘무식’이라는 두 글자만 기록된 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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