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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너리 Oct 10. 2022

#5 부족함을 인정한 순간

진정한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환경과 배경에 따라 ‘못 배울’ 수 있고 ‘무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죄가 아니다. 또한 의지를 가지고 배우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한 남자 -


한 남자는 군대를 전역하기 전까지 대략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의 대부분이 자기 계발 서적이었다.

자기 계발 서적에서 늘 일관되게 주입시키는 무한 긍정 에너지를 연달아 사발로 들이킨 그의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있었다. 술에 많이 취하면 겁을 상실하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처럼 , 자기 계발서에 취한 그는 이미 열정과 패기로 무장하여 겁낼 것이 없었고 당장이라도 세상을 정복할 것처럼 기세 등등했다.


 이성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가 그의 머리에 들어갈 틈도 없이 그는 전역하자마자 아프리카를 가기 위해 해외 봉사단체에 지원했고 몇 번의 교육을 이수한 뒤 곧바로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갔다.

해외 봉사 단체는 기독교를 뿌리로 한 단체였고, 그들은 해외 봉사라는 명목 하에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해외 교회로 파견시킨 후 자신들의 집단의 일원으로 만들고 선교활동 인력으로 양성하여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똑같은 신을 믿는다 해도 해당 종교의 성서에 나오는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파로 나뉘는데. 특히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통 교회의 교리에 조금 어긋나게 해석한 기독교 단체를 보통 이단이라고 칭하는데 한 남자가 해외봉사를 지원한 이 단체도 국내에서 이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여러 인터넷 자료와 뉴스를 찾아보며 이 단체에 대한 외부 평판을 보고 있자니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남자 눈에는 정통 교회든 이단 교회든 다 똑같은 종교단체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종교적인 세뇌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가볍고 설레는 마음으로 케냐로 향했다.


 한 남자를 포함한 봉사 단원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였다. 이 선교회는 전 세계 약 10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급 선교 단체였다.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 본사를 두고 여러 중소 도시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교회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나이로비 교회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교회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나이로비 풍경을 감상하던 한 남자는 자신이 줄곧 상상하던 아프리카의 정글과 밀림이 아닌 높은 빌딩과 건물이 즐비한 현대적인 나이로비 모습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나이로비 교회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각자의 짐을 들고 줄줄이 내리던 봉사단원들은 약속이라도 하듯 하나 같이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월드컵 경기장보다 넓어 보이는 땅덩어리에 높고 넓은 건물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건물이 교회 건물이었고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건물은 국제 고등학교였다. 그리고 교회 안에 사무실, 태권도장, 숙소, 넓은 식당까지 없는 게 없었다. 대략 100명 정도가 이 교회에 사는 것 같았는데 그중 절반이 한국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지낸 지 며칠 후에 교회 관계자의 호출로 봉사단원 전원이 교육장에 모였고 그곳 관계자가 총 15명 정도의 봉사단원 중 대다수는 나이로비 교회에 머물 예정이고 일부 인원은 다른 지역교회로 파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즉 봉사 단원 전원을 교육장에 호출한 이유는 지역 교회로 파견 갈 인원을 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먼저 지원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대부분의 봉사단원들은 꿀단지가 흐르는 나이로비 교회가 마음에 들었던지 선뜻 열악하다고 소문난 지역교회 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었고 몇몇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11개월 간의 봉사활동 기간의 대부분을 배정받은 지역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이런 곳에서 지낼 거라면 애초에 아프리카에 오지도 않았지”라는 생각을 줄곧 해오던 한 남자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지역교회에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파견될 지역교회는 총 3곳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가장 열정 있는 선교사가 머물고 있으며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관계자의 말에 키수무라는 지역을 선택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치게임을 하던 몇몇 봉사단원들도 줄줄이 각자 원하는 지역 교회에 지원하기 시작했고 케냐 봉사지역 배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이로비에서 잔류하기로 결정한 대다수 봉사단원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은 각자 지원한 지역교회로 뿔뿔이 흩어졌다. 키수무 지역으로 배정된 봉사단원 2명과 야간 버스를 타고 코를 찌르는 듯한 퀴퀴한 냄새와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불편하기만 한 의자에 앉아 잠도 한숨 자지 못한 채, 10시간을 참으니 드디어 앞으로 11개월 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키수무에 도착하게 되었다.


 키수무(Kisumu)는 케냐 동부 니안자 주의 속해있는 도시로 해발 1,131m에 달하는 지대에 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빅토리아호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키수무도 나름 케냐에서 유명한 도시 중 하나였기에 한 남자가 고대하던 정글이나 밀림의 모습은 기대할 수는 없었으나 나이로비에 비하면 아프리카스러운(?) 느낌이 많아 났기 때문에 이것으로 위안을 얻었다.

키수무 터미널에서 도착하면 키수무 교회 선교사 부부가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그들을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내리자 그곳에서 유일한 동양인 중년 부부가 멀리서 서 있었고 짐을 들고 다가가서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키수무 교회로 이동했다. 교회까지 가는 길 대부분이 비 포장된 도로에 흙먼지가 흩날리고 있었고 거리에는 동양인과 백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는 키수무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프리카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복잡한 터미널 주변을 빠져나오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을 지나치자 인적은 드물지만 마당이 넓은 대 저택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모든 건물이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건물마다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아프리카의 치안과 이곳에 사는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차는 하늘색 배경에 교회 이름이 적힌 큰 정문 앞에 멈춰 서자 경비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고 앞으로 11개월간 생활하게 될 키수무 교회가 눈앞에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키수무 교회는 나이로비 교회와는 사뭇 달랐다. 기업으로 비교하자면 나이로비 교회는 대기업 같았고 키수무 교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같았다. 푸른 잔디가 깔린 큰 마당 중간중간에 망고나무가 솟아 있었고 주변에는 70~80년대 지어진 시골 학교 같은 허름한 건물 몇 개에 마당 중앙에는 그나마 사람 사는 집 같이 생긴 선교사 부부가 지내는 저택 하나와 그 아래에 30-40명 정도 수용 가능할 것 같은 야외 예배당이 보였다.


 키수무 교회 멤버는 한국인 목사님과 그의 아내(사모님이라고 불렀다)를 제외하고 모두 현지인 형제자매로 구성되어 있었고 5명 정도가 그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교회일을 돕고 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자 현지인 형제자매들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우리도 어색하지만 환한 미소로 화답하였다. 우리가 앞으로 머물 곳은 선교사 부부가 사는 저택 바로 옆 허름한 방 2곳에 각각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지냈다.


 그곳에서 봉사단원들은 단기 선교사라고 불렸고, 단기 선교사들의 주 임무는 교회의 여러 일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교리와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교리를 널리 전파하고 많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교회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게끔 설득해야 했고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여러 행사들을 주최했고 이런 행사들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진행하는 것이 봉사단원들이 주로 해야 했던 일들이었다.

대부분의 봉사단원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배웠던 특기를 활용하여 태권도 클래스, 한국어 클래스, 피아노 클래스 등을 진행하면서 젊은 잠재적 신도들을 끌어모았다.


 한 남자는 신앙심도 없었고, 누구를 가르칠 지식도 없었으며,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봉사단원들이 클래스에 집중하도록 하고 자신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봉사단원들이 진행하는 클래스 학생들은 애초에 기존 교회 신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클래스 학생들도 5~10명  남짓이었기 때문에 교회를 알리고 신도를 늘리는데 크게 효과적이지 않았다. 교회에서도 나름 마인드 트레이닝, 클래스 운영 등 다양한 좋은 시도를 하고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이 모이질 않았기 때문에 교회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이면서 아프리카이면서 지역 교회라 본사의 많은 지원도 없이 거의 무일푼으로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고, 기존 현지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사람들 좀 모을 수 있는 행사나 홍보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한들, 이들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남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끌어들이는 능력이 탁월했다. 한 남자 본인도 자신의 숨겨진 재능이 놀랄 정도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며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 교회에서 밀고 있는 마인드 트레이닝, 글로벌 청년 리더십 워크숍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한 다음, 컴퓨터를 조금 쓸 줄 아는 봉사단원에게 부탁해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인쇄소에서 대량으로 인쇄를 한 다음 모든 봉사단원들과 교회 현지 형제자매들에게 교회 댄스와 노래를 연습시키고, 주말 예배에 쓰던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장비를 싣고 운반할 차량을 구해서 사람이 많은 시장과 시내 그리고 쇼핑센터 등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홍보활동을 시작하였다.


 홍보 자리를 잡고 모든 장비를 세팅한 다음 댄스와 노래 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그나마 언변이 뛰어난 현지인 형제자매들에게 행사의 취지나 목적을 설명하도록 했으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홍보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참석 희망자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참석 희망자 리스트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사 정보가 담긴 메시지를 주마다 보내어 행사를 상시 켜주면서 참여를 유도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자 키수무 교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규모와 참석자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키수무 교회 야외 예배당 크기로 감당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려서 행사 장소를 다른 곳으로 알아볼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한 번은 4박 5일짜리 큰 청소년 워크숍 행사를 맡아 역대 급 참가자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키수무 같은 지역교회에서는 어떤 행사를 개최할 때 100명 모이면 진짜 많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남자와 그의 봉사단원들은 본사의 적은 지원과 적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워크숍 장소와 물품을 협찬받고 아프리카 지역교회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500명의 대학생들을 끌어모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기록은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교회에서도 넘보지 못할 레코드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들 덕분인지 점점 선교사들과 교회 일원들은 ‘아직도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경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니던  한 남자를 썩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신뢰했고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기도 했다.


 어느 주말 예배 시간에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할 때  이런 말까지 하기도 했다.

"한 남자를 보고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그가 비록 구원은 안 받았을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함께 있는 것으로도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하시는구나 (A-MEN)"

한 남자는 속으로는 엄청 웃었지만 온전히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애초에 신앙심도 없고 앞으로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처음부터 못 박고 이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터라, 이곳에서 소속감이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점점 사람들이 인정하고 자신을 같은 일원으로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남자는 나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잘했고 교회에 큰 보탬이 되면서 그곳에서 인정도 받고 다양한 경험도 하면서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럭저럭 평화로운 아프리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식사시간에, 한 남자는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고 ‘지식’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자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겨우 읽을 줄만 알았고 간단한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상생활 뿔만 아니라 여러 행사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반드시 소통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사람과의 소통은 영어로 했다. 아프리카 케냐는 과거 영국의 신민지였기 때문에 영어를 제2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한 남자는 그들과 소통해야 할 때 그나마 대화가 가능했던 봉사단원들에게 통역을 받아야 했고 그들이 없을 때는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단어로 소통하기 일쑤였다. 가끔 바디랭귀지를 의존해서 소통할 때도 있었는데 본능적인 감각과 분위기를 느끼며 소통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 형제자매들은 한국인이 아닌 아프리카 현지인들이었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주먹구구식 소통은 여러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소통과 대화의 부재는 답답함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한국 봉사단원과 교회 현지 형제자매들은 하루 세끼를 같이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장난도 치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는 한 남자는 식사시간만 되면 그저 하이~헬로와 같은 단순한 단어를 뱉고 난 후 묵묵히 밥을 먹고 식사 장소를 빠져나왔다. 아프리카에 와서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 였지만 일상생활과 식사시간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즐겁게 소통하는 다른 봉사단원들을 보며 조금씩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나름 열정적인 현지 형제 한 명이 아침 식사 때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를 건넸다.

"(한 남자의 영어 이름을 외치며),  How Are You Going?"

한 남자는 당황했다. 뭔가 인사 같은데 하이(Hi)도 아니고 헬로(Hello)도 아니었다.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그래서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봉사 단원에게 물었다.

"쟤 뭐라고 하는 거냐?"

"오빠 이것도 안 들리나?, '하우. 알. 유. 고잉' 이라잖아, 인사하는 거야.

한 남자는 순간 몰려오는 창피함을 같은 처지의 사람을 찾아 위안을 삼기 위해 주변에 있던 나머지 한국 봉사 단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이런 게 다 들리니? 여기 오기 전에 영어공부를 따로 하고 온 거야?"

그리고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다른 봉사단원 한 명이 별다른 의도 없이 무심하게 내뱉은 한마디가 한 남자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아니 이런 건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적으로 배우는 거잖아..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순간 그는 할 말을 잃었고 너무 창피한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밥을 절반도 안 먹었지만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그곳을 황급히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세면백을 들고 세면대로 향하던 중에 그는 생각했다. 아프리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던 영어 스킬이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기본적으로 배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니.. 그 순간 그는 한국인 봉사단원들과 자신 사이에 배경지식 수준 차이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수준급은 아니었다. 그저 기본적인 영어 문법과 단어 그리고 듣기 평가와 같은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일상적인 소통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 그저 대단하고 높아 보였을 뿐이다. 이래서 '무식'하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다른 사람에겐 평범하고 당연할 뿐인 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대단해 보이고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막상 들어가 보면 대부분의 우물은 깊지 않을 텐데도 그곳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물은 한없이 깊어만 보이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우물에 들어갈 시도조차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남자는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자기 계발 서적 50권만 읽고서는, 그것에 취해 자신이 뭐라도 된 듯이 자아도취해 있었지만 결국 독서로 인해 그의 마음가짐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변했을 지라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배경지식 수준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무식'한 상태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그 첫 번째 관문이 영어를 정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매일 전자 사전과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무작정 영단어를 미친 듯이 외우기 시작했다. 밥 먹는 시간에도, 목사님 설교시간에도, 외부 홍보활동을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모든 일과가 끝나고 저녁 개인 시간에도 자기 전까지 영어 단어를 외웠다.

이렇게 광적으로 외우다 보니 하루에 10개 외우는 것도 힘들었던 영어단어가 점점 눈에 익기 시작하고 나름 암기 방법을 터득하여 하루에 50개 이상의 영어 단어를 외울 수 있었고 영단어 책 2권을 다 외우는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영어 책을 구할 곳이 없던 터라, 더 이상 새로운 단어를 외울 만한 책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성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지급한 성경은 영어와 한글이 동시에 번역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의 대 서사시를 담은 엄청 방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성경으로 영어공부를 해도 충분한 양이었다.


 아는 영어단어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자 들리는 영어 단어로만 현지 형제자매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자연스러운 대화는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대화와 소통을 위해 기초 문법과 회화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니 마땅히 공부할 교제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교회 사모님이 영어를 처음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다던 OO스쿨의 기초 영어 강의가 들어있는 USB를 그에게 건네주었고 일과가 끝나고 잠들기 전까지 매일 반복해서 강의를 들으며 영어 기초 문법과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 남자의 영어는 까막눈 수준(물론 읽을 줄은 알았지만)이었기 때문에 'I Like You'와 같이 초등학생이면 다 아는 기본적은 문장의 기본 문법 구조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3 형식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는 직접 입으로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외웠고 외운 문장과 단어들을 토대로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30초 정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라는 걸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니까 어느 정도 기본 영어 단어와 문법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USB로 건네받은 영어 강의 수준도 중급 과정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3 형식에서 4 형식을 배우고 능동태, 수동태 등 점점 더 어려운 문법들을 학습 하면서 그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스킬과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교회 내부에서 활동할 때는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강의를 반복해서 보았고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시장을 가던 누구를 만나던 나와 눈이 마주치는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프리카는 인종차별이 심한 선진국들과 다르게 내가 어눌하게 말을 걸어와도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고, 한 남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것이 그가 영어 실력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5~6개월 정도가 지나니 일상적인 대화를 모두 알아듣고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어눌하게라도 다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영어로 된 동화책을 무리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주변 현지인과 한국인 봉사자와 선교사들은 이런 그를 보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영어 실력이 엄청 늘었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이것에 동기부여도 되어 더 열심히 영어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이 시점이 되어보니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왔을 때 한국인 봉사자들을 보면서 느낀 영어와 기본 배경지식에 대한 벽이 그리 높지 않았고, 우물은 그리 깊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봉사단원들의 대화 패턴은 항상 일관되었다.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6개월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단지 그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대단해 보였을 뿐이었다.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봉사단원들이 한 남자에게 단어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현지인과 소통하는 빈도와 시간을 어림잡아 보더라도 한 남자 혼자서 그들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기본적인 정규 교육을 잘 따라왔고 나름 나쁘지 않은 대학을 다닌 성실한 학생들이었다. 수학, 국어, 과학, 역사 등 일반적인 배경 지식은 당연히 그들에 비하면 한 없이 뒤처진 수준이었겠지만 아프리카 5~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영어 실력만큼은 한 남자가 그들을 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만약 아프리카에서 영어 공부를 나처럼 했다면 내가 절대 못 따라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초 지식부터 이미 많이 벌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남자가 그들과의 수준 차이를 빠른 시간 내에 좁히고 결국 그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남자가 똑똑해서도 아니고 재능이었어서도 아니었다.

그는 영어 공부에 진심이었고, 뚜렷한 목적이 있었으며, 공부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그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고 오직 아프리카 현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그가 경쟁해야 할 사람은 봉사단원들도, 현지 형제자매들도 아닌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남자는 오로지 영어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경쟁에서 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낄 필요도 없었다.


결국, 주말 예배시간에 많은 신도들이 보고 있는 단상 위에 올라 자신이 지금까지 이 교회에서 해왔던 일들과 언어의 장벽을 극복한 일화와 그 과정 속에서 느낀 점들을 조금 어눌하지만 영어로 스피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스피치에 감명받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운동 이외에 살면서 처음으로 승리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배운 것이 없을지라도 의지만 있다면 지식수준 마저 누군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얻게 되었다.


그의 인생 첫 승리 경험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환경과 배경에 따라 ‘못 배울’ 수 있고 ‘무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죄가 아니다. 또한 의지를 가지고 배우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한 남자가 아프리카에서 생활에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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