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만으로 무작정 친구와 IT 창업에 뛰어들면서 만든 IT 서비스를 세상에 제대로 선보이지도 못해보고 대출금, 퇴직금 그리고 원룸 보증금까지 다 날려 먹고도 끝까지 살아남아 보겠다고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나의 전부였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의욕까지 다 잃고 나서야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숙소가 제공되는 공장일을 찾아 구미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게 되어 5년 동안 살았던 서울 원룸 살림살이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전자기기와 가전제품만 온라인 중고거래 앱을 통해 헐값에 넘기고 노트북과 여름옷만 몇 번 챙겨서 구미로 부랴부랴 내려왔다.
입사일은 7월 15일이었지만 배정받은 기숙사에는 이틀 전인 13일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07월 13일에 구미로 내려오게 되었다.
급하게 구미로 내려오느라 서울에서 살던 원룸 살림살이를 이틀 만에 정리했다. 가전제품은 헐값에 넘기고 나머지 공장에서 입을 옷을 제외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짐들은 다 버렸다.
구미에 처음 도착한 2020년 07월 13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초 저녁쯤 구미 터미널에 도착해서 노트북 가방과 옷이든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물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모텔들만 보였고 터미널 바로 옆은 메마른 잡초만 무성한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메마른 허허벌판은 마치 창업 실패 후 메말라버린 나의 꿈과 열정 그리고 공허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구미 터미널) 처음 구미 땅을 밟고 나서 마주한 공터,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허허벌판을 보며 잠시 심란했던 마음을 뒤로한 채 택시를 잡아 배정받은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앞으로 살게 될 기숙사가 있는 지역 이름은 이름부터 왠지 삭막함이 느껴지는 ‘공단’이라는 지역이었다.
택시에서 내리고 기숙사의 자태는 더욱 그 이름값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포 영화에서 나올 법한 오래된 저층 아파트 여러 동이 밀집되어 있었다. 왠지 모를 음산함과 삭막함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공장(회사)에서 제공되는 기숙 아파트 이곳 어딘가에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파트 사감실로 가서 배정된 숙소를 확인하고 앞으로 내가 지내게 될 숙소를 찾아 걸어갔다. 사감실부터 내가 배정받은 아파트까지 걸어가 봤자 30초도 안 걸리는 짧은 시간 동안 아파트 밖에서 담배 피우는 몇몇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퀭하고 피곤에 찌든 눈을 하고 있었고 어깨는 축 늘어진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사 좀비와 같이 생기가 없어 보였다(이 일을 하고 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배정받은 숙소를 찾아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곰팡이 냄새와 엄청난 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아마존 습지대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옷장과 서랍장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좁고 텅 빈 방에 내 짐을 내려놓고 세면도구만 꺼내서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동서남북이 검은곰팡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화장실 변기를 올리는데도 내 손끝은 조심스러웠고 최대한 화장실에 있는 모든 물건과 벽에 몸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샤워를 했다.
(지금은 곰팡이를 받아들였고, 내 일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는 그러지 못했다..)
처음 기숙사 도착했을 때 내가 살게될 방과 아마존 습지대에 와있는 듯한 화장실(혐오주의) 풍경
샤워를 끝내고 밥을 먹기 위해 나가려는 찰나에 룸메이트가 일이 끝나서 숙소로 들어와서 인사를 나눈 후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나갔다. 룸메이트와 간단하게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은 내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방 불을 끄고 누웠다.
습기 가득 찬 좁은 방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괜히 우울하고 심란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써도 우울함은 가시지 않았고 잠도 오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때 나는 내가 현재 처한 상황과 처지 그리고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길고 길었던 그리고 우울했던 나의 구미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지금은 점점 추억이 되고 있지만 이날 느꼈던 우울한 감정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