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듣는 가장 많은 질문 중의 하나는 '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는 것이다. 그럴 때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나에겐 불가리아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이 좋다는 것이다. 온천이 많고 좋은 데다 우리가 만났던 온천수는 모두 먹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바르나였다.
샤워하는 물을 받아가는 사람들
해안가 멋진 공원 한쪽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아직도 꽤 쌀쌀한 겨울 한기가 남아 있는 계절에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에서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번엔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차에 가서 간단히 준비하고 오겠다고 손짓 발짓으로 말한 뒤 잠시 후 우리도 합류했다. 한쪽은 공원 숲이, 다른 쪽은 탁 트인 흑해가 모두 절경이다. 사람들이 온천과 바다를 온탕 냉탕으로 즐긴다. 나도 용기를 내어 바닷물에 들어가 잠깐 발을 담가 보았다가 너무 차갑고 추워서 얼른 온천으로 돌아왔다. 온천이 끝나고 샤워를 마친 사람들이 집에 가는 길에 샤워기에서 나오는 온천수를 받아 간다. 이렇게 좋은 풍광에서 온천을 즐기고 집에 돌아가서도 몸에 좋은 온천물을 먹으니 사람들이 병에 걸릴 일이 없을 것 같다.
불가리아는 어디를 가나 온천이 흔하고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에 좋은 온천, 위장에 좋은 온천 등 효능도 다양하다. 게다가 물가도 싸고 주변 다른 나라로 여행하기에도 좋다.(물가가 싸다고 생각해서 큰 코 다친 경험도 있다. 시골마을의 작은 미용실에서 가격도 묻지 않고 머리를 자른 것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에서도 둘이서 20유로에서 30유로 미만이 들었는데 불가리아 시골마을에서 40유로를 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싶을 정도로 살기 좋은 불가리아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계속적인 이민족의 침입으로 불가리아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것이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불가리아는 유럽연합국가이긴 한데 화폐는 네르바를 사용하고 쉥겐협정국가도 아니다. 반토막 유로존이라고 할까?)
이제부턴 계속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되길 바란다. 문득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할수록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여행을 통해 그 나라를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될 테니까.
3월 8일 릴라 수도원
불가리아에 온 지 일주일이 넘도록 일기를 제대로 못썼다. 오늘은 저녁도 일찍 먹었고, 낼 아침 준비도 간단해져서 모처럼 여유롭다.
설산과 어우러진 정갈한 느낌의 수도원. 오랜만에 만난 같은 동양인 중국인들이 떠드는 바람에 조금 창피. 수도원 관계자가 몇 번이나 경고를 주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ㅜㅜ
그래도 곧 떠나서 다행이었다.
36개의 성서 장면과 600명의 사람들이 조각된 나무 십자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오스만 지배 시절에도 이 수도원을 술탄들이 잘 보호해 주었고 이슬람과 친하게 잘 지냈던 것 같다.
그 술탄들이 보낸 선물들이랑 러시아에서 보냈던 예배용 성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불가리아인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자신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낸 곳일지도 모르겠다.
교회 내부는 촬영하지 못했지만 장엄하고 화려했다. 바깥보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졌고, 천정과 벽에 가득한 그림들은 절의 탱화를 보는 듯했다.
릴라 수도원을 나와 조금 산을 내려오는 길에 계곡 앞에 있는 카페에 차 마시러 들어갔다가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안주를 시켰는데 고기와 소시지가 너무 많아 내일 아침까지도 든든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서양 사람들이 정말 많이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산속에서 말들이 주인도 없이 혼자서 풀을 뜯고 있다. 그중 한 마리가 길을 건너 우리 차 앞으로 와서 풀을 뜯고 있다.
말 옆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도 보충하니 불가리아를 떠나도 당분간은 약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리아는 물이 좋은데 수도관이 오래돼서 수돗물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온천수는 계속 흘려보내니까 깨끗하다. 처음엔 온천수를 먹는 게 이상했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든 먹을 수 있는 온천수를 찾게 된다.
세르비아에서 쓴 불가리아 일기
세르비아 이야기를 쓰려다 불가리아 일기를 발견했다. 훨씬 생생한 느낌이다. 브런치에 올린 글에 다시 일기를 붙이기로 했다.
불가리아는 온천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끔씩 멋진 무료 온천을 만나기도 했지만 불가리아 바르나처럼 완벽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릴라 수도원 가는 길에 들렀던 온천 대중목욕탕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단 돈 천 원 입장료에 우리나라처럼 발가벗고, 떼까지 밀어가며 목욕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가족끼리 혹은 이웃끼리 서로 등을 밀어주는 모습이 예전의 우리와 똑같았다. (요즘은 우리나라 목욕탕을 안 가봐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온천이 목욕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이 온천마을에 오기 전에 히살랴라는 온천마을에서 온천물을 먹기 시작했다. 섭씨 46도 정도 되는 온천에서 40도 정도 되는 곳까지 세 군데 있었는데 이곳에서 온천물을 먹기 시작해서 소피아 박물관 뒤에 있는 온천물까지 먹었다. 온천에 물의 성분들이 다양하게 나와서 혹시 쇠 비린 네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물맛이 달콤했다. 어떤 분은 물을 받아 눈을 씻기도 했다. 난 차에서 커다란 바가지를 가지고 공원에 있는 온천 음수대에서 물을 받아 족욕을 했다. 너무 따끈하고 기분이 좋았다. 온천 덕분인지 온천 근처에서 만난 사람들은 훨씬 더 생기 있고 활기차 보였다.
건강하고 당당해 보이는 걸인들
불가리아 국경지대를 지나 첫 번째 마을을 지날 때 마치 난민촌 같은 마을과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남루하더라도 걸인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차례 베츠 요새 마을에서 식당을 찾으러 가는 길에 광민에게 돈을 달라는 사람을 한 번 만났다. 그러나 순간 적인 일이라 난 그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불가리아의 제2의 도시라는 플로프디프에 갔을 때 세 사람의 걸인(?)을 만났다. 처음에 만난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는데 이 애가 가장 불쌍해 보였다. 다음은 젊은 여자였는데 옷차림도 별로 남루하지 않았고, 아주 당당한 태도와 목소리로 1 네르바를 요구했다. 없다고 하자 머뭇거림 없이 무표정으로 가버린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하도에서 동냥하는 사람이었는데 마침 식사 시간인지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몸이 불편해 보이거나 표정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건장해 보였다. 소피아에서도 한 두 사람 만난 것 같기는 한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오히려 적어 보였다. 난민이 없어서 인 것 같다.
불가리아의 명절
불가리아 사람들은 3월이 되면 봄이 시작된다는 것을 축하하며 축제를 열고 손목에 빨간색과 흰색 실을 사용해서 만든 팔찌를 하고 다닌다. 전철을 탔을 때나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손목에는 대부분 팔찌가 있었다. 우리가 불가리아에 온 다음 날이 바로 명절이 시작되는 3월 1일이었고 소조 폴에서 , 부르가스에서 관광 왔던 불가리아 사람에게 팔찌를 선물 받았었다. 광민은 씻을 때도 팔찌를 벗지 않고 하고 있는데 난 벌써 잃어버렸다. 팔찌뿐만 아니라 여자와 남자 인형을 한 쌍으로 하는 인형을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들의 실장식들을 나무에도 매달고 대분 앞에도 매단다. 그러면 아직 새순이 돋기 전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생기가 생기고, 무거운 대문에 활기가 넘쳐 보인다. 가끔 초록색까지 더해지면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불가리아는 이탈리아와도 같은 색깔에 배열만 다른 국기를 쓰고 있는데 이 실장식 덕분에 국기의 디자인들이 의상이나 건축물에 이용되어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불가리아는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진을 넣은 부고를 대문이나 나무 혹은 마을 게시판에 붙이고 오랫동안 추모한다. 어떤 마을은 아예 집집마다 부고가 몇 개씩 붙어 있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망자를 기억하는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낯선 여행객 입장에서 지나가는 길에 이 동네에서 얼마 전까지 살 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사진이나 그들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본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다. 죽은 사람들과 아직은 헤어지지 못하고 같이 지내는 가족들의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도 곧 그들처럼 세상을 떠날 거라는 것을 잊지 않고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현명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문화는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된 걸까?
너무 궁금해서 불가리아의 장례문화에 대해 찾아봤다. 국내 자료만 찾아봐서 내가 궁금했던 내용은 없었지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가리아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면 소금 목욕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터키인의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불가리아는 400년이나 오스만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불가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에 대해 오랫동안 애도하는 문화는 어쩌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