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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Feb 21. 2024

동지팥죽에 새알 서 되?

2024년 2월 21일 

겨울잠을 자듯이 브런치에 오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점점 불편해져서 글쓰기를 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록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음 한 편에 더욱 불편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좋은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씩 다시 힘을 내어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과 정보를 브런치에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2023년 12월 21일




내일은 마을에서 동지 팥죽을 먹기로 한 날이다. 나는 팥죽을 좋아하고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 줄 안다. 그동안 마을 식당에서 여러 번 죽을 끓인 경험도 있어서 좀 많은 양이라 해도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청난 착각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서 되 하면 되겠지?" 했을 때 나는 죽에 들어가는 쌀의 양을 말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새알을 만들기 위한 쌀의 양이었다. 서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넉넉히 먹을 떡의 양이다. 새알을 그만큼이나 만든다고? 


아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 보니 만들어진 새알을 판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이미 늦다. 다음번엔 인터넷으로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팥을 담가 놓았고, 오늘 오전에 팥을 삶어서 오후에 갈아 놓았다. 오전에 불려 놓은 쌀도 오후에 건져놓았고, 내일 방앗간에 가서 빻아와야 한다. 


창고에 있는 커다란 솥과 내부의 솥 두 군데서 팥죽을 끓인다고 한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2023년 12월 22일

이렇게 복잡한 절기 음식일 줄 알았다면 절대 쉽게 팥죽 끓여 먹자고 하지 않았을 거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관에 갔다. 그런데 막상 회관엔 아짐들이 벌써 활기찬 모습으로 팥죽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는 회관 밖에 있는 큰 솥까지 동원한다고 했지만 오늘은 실내에서 두 솥을 사용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내가 뜨거운 음식을 들고 다니는 동선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배려해 주신 것이다. 


마침 도착한 쌀가루로 반죽이 시작되었는데 아짐들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작고 예쁜 동그라미들이 수북이 만들어진다. 점심이 가까이 오자 본격적으로 새알이 팥죽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예쁜 동그라미들이 모양을 꾀 잘 유지한다. 


맛은 어떨까? 결론을 말하자면 난 내년 동짓날에도 이 복잡한 방식으로 만든 새알을 먹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이 정도의 양을 구입하려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방금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로 만든 맛과 견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소에 팥죽 속 새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새알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정말 맛의 신세계였으며 우리 면에 유명한 팥죽집에서 먹는 새알 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새알 서 되는 마을 분들이 모두 한 번에 먹기에 딱 좋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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