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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Sep 17. 2023

선행성 기억상실증, 우리 삶의 기억들에 대해

소설 추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1.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 


내가 도서관 가는 것은 좋아하는 이유는 수많은 책들 중에 운명처럼 만나는 어떤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같이 마케팅도 없고, 트렌디한 표지들이 눈길도 끌지 않는, 그 어떤 조용한 곳. 서고에 담담히 꽂혀있는 책들 사이를 탐험하는 것은 참 평화롭다. 찾고 싶은 책을 검색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딱히 어떤 책을 검색하기보다는 '소설 또는 에세이' 코너에 가서 책 이름을 하나하나 살핀다 (동네 도서관이니 가능할지도).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 사이에서 어떤 운명 같은 책을 만나게 된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뽑았는데, 신기한 메시지가 나오는 포츈쿠키나 타로카드처럼, 그렇게 가끔 책은 나를 찾아온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도 그렇게, 나에게 나타났다. 




#2. 선행성 기억상실증, 우리 삶의 기억들에 대해   


나의 하루의 기억이 다음 날 눈을 뜨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처음엔 막연히 슬플 것만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기억과 상처들을 모두 리셋하고, 매일 행복하게만 살 수 있다면 좋을 것도 같았다. 


우리의 삶은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기억과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일에서도 삶에서도 전문성이 생기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감정이 발전한다. 우리는 기억을 '쌓기 때문에' 계속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쌓아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니, 어쩐지 그 행위가 기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경험과 기억이 쌓여서 옮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 그 과정을 사회적으로는 '성숙'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가끔은 기억을 쌓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누군가의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그렇게 행동할 것 같냐'는 질문에, '응, 어쩌면.'이라고 답하면서도, 이제까지 쌓아온 경험에 의하면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쌓여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기계적으로 쌓여왔던 기억의 꾸러미가 말해주는 '세상이 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기에,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하게 될 때가 있다. 그마저도 기억이 되어 쌓인다는 것은, 새삼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생의 초년기를 지나, 중반을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이 '기억의 홍수, 경험의 홍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충분하지 못한 기억과 경험에도, 나는 머릿속에 또 마음속에 이미 수많은 답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그것들을 잊고 싶다. 잊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도 있지 않을까.  


< 책 속으로 > 


"가미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얼음장 같은 감촉이 마음에까지 스며들었다. 

"혹시 내가 죽으면 히노 일기에서 날 지워주면 좋겠어." 

온갖 말이 의식에서 사라져 눈앞에 있는 착한 사람을 그저 바라봤다. 가미야가 죽으면... 



"살아야 하는 생을 사는 게 우리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면 마오리가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도, 둘 다 올바른 모습이라고 난 믿어. 다만... 와타야, 도루는 선택을 너에게 맡겼어. 그러니까 네가 정하렴. 그러고 싶은지, 그러고 싶지 않은지, 그것만 기준으로 해서. 난 네 판단을 따를게." 


-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요? 잊어도 되는 걸까요?" 

... 누나가 맑은 눈으로 나를 봤다. 안심시키려는 건지 미소를 지었다. "계속 잊고 살아도 돼.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 사람은 그렇게 해서 슬픔을 소화해 가는 걸까. 슬픔을 잊게 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사로잡혀 있어서는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 



 

#3. 우리 '어른들의 사랑'에 대하여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주인공 히노마오리와 평범한 고등학생 카미야 도루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나의 어릴 적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런 생활과 조건들이 엮이지 않고, 오직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기에 우리네의 '어릴 적 사랑'은 순수하고 맑다. 그리고 명확하다. 좋아하면 달려올 수 있고, 그 사람만 바라볼 수 있고,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이 그저 행복하다. 


그에 비하면, 어른들의 사랑은 뭐가 그리 복잡한 걸까. 


어른이 되는 순간, 나이를 먹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변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사랑'에 수많은 책임과 의무의 올가미를 씌워 놓고는, 복잡하고 힘들다며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책 속으로 >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만나러 내 발로 갈 수 있다. 도중에 조바심이 나서 뛰기 시작했다. 히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몸 전체가 기뻐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바라 마지않던 힘찬 충동이었다. 


-


손에 힘을 주며 기도했다. 부탁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되도록 친절하게 대할게요. 고집도 부리지 않을게요. 부모님께도 매일 감사드리면서 살게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애 옆에 있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눈물이 앞을 가린 탓인지 순간 시야에서 그 애가 사라진 것 같았다. 불안해져 손에 힘을 주자 그 애는 그곳에 있었다. 손을 맞잡아주었다. "괜찮아. 난 앞으로도 네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인간은 '어떠어떠하니까 좋아한다'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진정한 의미로 감각에 기인하는 감정이다. "좋아한다고 타인을 위해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거야? 난 그런 거 잘 모르겠어서." 자조하는 듯한 투로 묻자 가미야는 표현을 골라서 대답했다. "뭐든 다 하는 건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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