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클은 나쁜 걸까요?
우리 팀은 매주 수요일이 풋살데이다. 각자의 일을 마치고, 저녁 8시가 되면 운동복과 풋살화 끈을 조여맨 그녀들은 나이도 직업도 없이 평평한 상태로 만난다. 국방 관련 업무하는 팀장님도, 미용실 사장님도, 경력 20년 차 기자님도, 풋살장에서는 모두 그저 ‘00님’ 혹은 ‘언니’ 다. 이제부터 웃음기 싹 사라지면서, 온몸에 땀 뻘뻘 나는 제2의 하루가 시작된다. 1시간은 드리블, 패스 등 기술을 배우고, 뒤 1시간은 팀을 짜서 미니 경기를 한다. 특히 미니 경기 시간은 초록의 인조잔디가 ‘헤이! 헤이!’ 하는 여자들의 함성으로 가득 찬다.
그날도 열심히 공을 쫓아다니고, 달리다 지쳐 바꿔달라는 수신호를 코치님께 보내기도 하면서 미니경기를 다 마쳤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있는데 선희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언니, 연습할 땐 상대방 팀 뒤에선 발을 집어넣지 않는 게 좋아요. 초보땐 공만 딱 차지 못하다 보니, 서로 발을 걸거나 밟아서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경기할 땐 반칙이 되기도 해요.” 선희가 구석에 뒤돌아 공을 지키고 있을 때, 내가 계속 뒤에서 발을 집어넣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래서 발목과 발톱을 자꾸 다치는 거였구나. 또 그래서 내가 자꾸 상대방을 걷어차는 거였구나. 피멍이 들고 절뚝였던 내 발목에게 심심한 사과를... 또 내가 걷어찼던 수많은 동료들의 발목들에게는 석고대죄를... 마음속으로 전했다. 백태클이 그렇게 위험한 건지 몰랐다.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서(핑계지만), 벌써 6개월도 넘게 뒤에서 발을 걸었었잖아. “선희님, 진짜 미안해, 몰랐어. 내가 위험하게 플레이하고 있었다니...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진짜 몰랐어.” “괜찮아요 언니. 모르면 그럴 수도 있죠. 대신 공을 뺏고 싶을 땐 발을 넣기보단 어깨를 넣어요. 그렇게 몸싸움을 하면 훨씬 나을 거예요.”
생각해 보니 실력도 없는 내가 백태클을 많이 했던 이유는, 첫째, 상대방이 내 발이 들어오는 걸 잘 모르기 때문에 공을 쉽게 뺏거나 커트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둘째, 다른 기술을 모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흑. 써놓고 보니 초보자의, 초보여서 슬픈 스토리가 되네. 내가 몰랐든 어쨌든, 나는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로,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해, 누군가들을 다치게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뛴 것뿐인데, 그동안 동료들이 이해해 줘서 그렇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던 거다.
선희는 어떻게 어깨를 넣어 몸싸움을 하는지를 직접 보여줬다. 뭔가 많이 해보지 않은 자세이다 보니 좀 어려웠지만, 선희의 어깨는 강하고 단단했다. 옆에서 나는 또 종이인형처럼 밀려났다. “오, 이렇게 하는 거구나!” 팔을 잘 써야 축구를 잘하는 거라는 말도 있던데, 어깨와 팔도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였다. 발을 밀어 넣는 것보다 어깨를 밀어 넣는 것은, 뭔가 젠틀하고 더 고수 같아 보였다. 아직 나의 어깨는 고장 난 듯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요즘은 백태클을 자제하고, 어쩔 수 없이 할 땐 상대방의 발을 차지 않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어깨를 밀어 넣기 연습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우리네 인생에서도 백태클이 더 쉬운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도 내가 모르는 뒷말들로 인해 백태클을 당한 적도 있었는데, 이럴 때 진짜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고 억울해하거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며 I hate people! 하고 외치기도 했다 ㅜㅜ 또 부끄럽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백태클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모르는 사이, 작전을 짜서 공격하는 것 말이다.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할 때라서, 더 이기기 쉽고, 습격하기 쉬웠다. 풋살에 대입해 보니, 삑! 반칙일 수 있었던 거다. 앞으로는 이기기보단, 함께 정정당당하게 싸우기 위해, 백태클보다는 어깨를 넣어 점잖게(?) 공을 빼앗아야지. 이제 가급적 백태클은 하지 말아 봐야겠다고, 조용히 되뇌어 봤다.
좀 더 인생 고수가 되면, 그땐 노련하고 정정당당하고 그저 멋지기만 한, 백태클을 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백태클이 나쁘다는 글은 절대절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