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내 주위엔 너무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내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멍하니 신의 손길만 바라보아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달도, 별도, 꽃도 눈물을 머금는구나. 흐드러지게 날리는 눈꽃이 비눈같구나. 1분이 천만금으로 요동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강물도 바람도 나무도 한결같구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어제 죽었던 이들은 못 돌아오는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구나.
아픔도 상처도 눈물도 고통도 안고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40대 늦깎이에 절실하게 깨닫는다.
깊고 깊은 어두운 밤을 지나간다. 신을 신뢰하면서도 극도의 불안 사이를 오간다. 문제를 갖고 씨름한다. 지쳐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불을 지펴 악 받이도 해본다.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위로가 있다. 평정심이 찾아온다. 당사자의 심중을 헤아릴 길 없다. 착한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
아버지가 신장 한 개를 떼어내시고, 사구체여과율 30이라는 수치에 모든 음식을 절제해야 했다. 3년 가까이 코로나로 외식도 한 번 못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맛있는 곳에 모시고 가서 마음껏 드세요... 할 수가 없다. 70년 넘게 가까이했던 식단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결혼을 새로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익숙한 것들의 결별이 주는 고통. 난 괜찮아. 네 엄마가 고생이지... 아버지는 늘 환하게 나를 맞아주신다. 엄마가 더 아파 보인다.
친구 남편이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떨렸던 심정, 집으로 달려가 안아주며 눈물만 보일 수밖에 없었던 참담함. 1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전처럼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려는 흔적은 여전했지만 만날 때마다 눈만은 여전히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찬란했던 그리움의 시간들은 마음 저 깊이 묻어둔 채.
지인 남편이 3년 가까이 쌓인 스트레스로 큰 수술을 하고, 4명의 아이도 있지만 직장을 사임해야 했다. 나는 직장 내 이야기를 들으며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다들 중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엻심히 일하고 싶은데 직장 내 분위기와 환경이 뒷받침되어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뜻을 펼치는 곳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게 무직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도와주지 못하는데 마음이 쓰인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았다며 더 힘차게 살아간다.
친구 남편이 이명과 난청이 너무 심해 죽고 싶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한다. 아이들은 먼 시골로 보냈고, 잘 나가던 학원 경영도 못하고 있고, 일상이 마비됐다. 우울함과 좌절, 절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물고 산다. 내 옆에 있다 해도 하루 종일 눈물로 지새울 것 같은데, 친구는 버티어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친구 자녀에게도 마음이 미어지는 일이 생겼다. 도벽 증상이 심해 결국 병원에 감금시켜야 했다. 면회도 되지 않았다. 아침에 6알, 점심에 12알, 저녁엔 6알...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없는 약만 한 주먹을 먹은 아이는 말도 행동도 모든 것이 어눌해져 버렸다. 인간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평생 안전하게 가둬두는 일뿐임을 알게 됐다. 무기력함이 밀려오다가 어느새 마비됐다. 친구는 병원에 통보하고 00을 빼냈다. 길거리에서 00을 마주쳤다. 건강하고 눈도 동그랗고, 잘생기고 바지런한 외모가 너무 반가웠다. 00야, 내가 밥 꼭 사줄게. 한 번 만나자. 이 말을 하고 헤어졌다. 지금도 아른거린다.
12년 만에 생긴 기적 같은 선물. 우리가 만난 지도 어언 8년째 동네 엄마. 코로나 때 아무도 만나자는 연락이 없을 때도 간간히 연락을 하며 우리는 늘 이야기를 나눴다.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들. 힘들 때도, 속상할 때도, 기쁜 일이 생겼을 때도... 처음 그녀는 둘째를 너무도 갖고 싶어 했다.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했지만 외동아이로 만족하고 있을 때쯤, 둘째가 생겼다. 병원에서 진단받기 전, 임신 테스트로 알게 됐을 때, 내게 소식을 알려줬으니, 내가 제일 먼저 안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축하며 브런치와 카페를 즐겼더랬는데. 최근 Nipt 기형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새벽에 기도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생명은 하늘에서 주신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에겐 긍휼함과 애통함과 격려가 늘 필요하다. 함께할 수 있을 때... 옆에 있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을지라도. 알 수 없는 이유를 넘어 하루하루 버티어나가고 있는 그대들을 생각하며 나는 이 글을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울어주고 마음 아파하고, 곁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 연약하고 작지만 '함께의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