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 Dec 14. 2022

나의 작고 소중한 난민 친구들 1

첫 봉사활동. 모두들 잘해보자!

멜입니다.


 담당 아이를 만나러 이태원에 가는 날입니다. 매주 수요일, 저는 퇴근 후 이태원 달동네에서 두 시간 동안 한 아이의 과외 선생님이 됩니다. 지난주에는 나오지 않았던 그 아이를 보러 바삐 퇴근을 서두릅니다. 요즘 조금은 싱숭생숭한 이태원의 메인로드를 지나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그들의 작은 사랑방. 오늘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주오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펴야 하는 어둠의 길이었지만 재빨리 도착해봅니다.


 참해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소녀와 선생님이 수업인지 수다인지 모르겠는 시간을 갖고 있었고, 오후반 아이들이 바닥이 내려앉을지도 모르게 공을 차며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내뱉는 미성숙한 내음과 이방인의 가난한 냄새가 섞여 귀가 멍해졌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왔다는 느낌에 왼쪽 귀가 먹먹해집니다.


 영어 스피킹은 곧 잘한다는 나의 담당 아이는 이제 고 1입니다.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인장에게 속아 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그. 여간 뺀질거리는 아이가 아니라고 혀를 내두르는 다른 선생님의 걱정과 함께 그를 기다린 20분 동안 저는 아이에게 가르칠 책을 봅니다. 말하기와 듣기는 괜찮지만 알파벳과 스펠링도 잘 모르는 아이. 문득 일본인 여자 친구에게 일본어를 배워 말만 할 줄 알았던 예전 거래처 직원이 떠오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겠죠.


 드디어 아이가 오고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책상에 나란히 앉습니다. 수능 영어 과외만 주야장천 해본 저에게 아주 큰 난관입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모티베이션을 심어주는지 였어요. 한창 민감한 나이 16세. 정규 교육과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아이에게 저는 무슨 수업을 해야 할까요.


 오자마자 방 안의 모두에게 아는 척을 하고 돌아온 아이를 보니 답은 금방 나왔습니다. 저는 비겁하지만 아이의 쪽팔림을 자극했습니다. 국제학교 친구들과 많이 어울린다는 아이는 시제와 복수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고3이 된다면 다른 아이들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그때를 대비해서 공부를 조금씩 해보기로 합니다. 봉사활동이라도 애들을 책상머리에 앉히는 일은 여전히 힘듭니다.


 오늘은 사자성어와 산수도 조금 봐줍니다. 옷을 챙겨 입는 제 뒤에서 선생님은 언제까지 나오실 거냐는 그의 물음에 지금까지 그를 거쳐간 봉사자들의 역사가 그려집니다.


 "선생님, 앞으로 한국에 계속 살 거예요?"


 계속 보고 싶다는 뜻이겠죠? 다행히도 수업이 재미없지는 않았나 봅니다. 네가 멋진 청년으로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선생님이랑 같이 하자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고등학생이지만 초등학교 산수를 풀고 있는 아이에게 한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너무 쉽게 옆 길로 셀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아이지만 어두컴컴하고 좁은 샛길보다 이태원 큰길을 걸을 수 있는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이 저의 모티베이션입니다.


나의 작고 소중한 난민 친구, 앞으로 잘해보자!


치얼쓰

작가의 이전글 나의 작고 소중한 난민 친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