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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Dec 22. 2022

나의 작고 소중한 난민 친구들 2

아이는 모델이었다

멜입니다.


재택으로 한껏 달궈진 저의 집순이 습성을 깨고 귀꽝코쨍 겨울을 깨고 나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이 추운 겨울에 언덕을 내려와 도서관에 와주신다는 아이의 대답에 쪼르르 달려가 봅니다.


세 번째라 그런지 이제는 이태원 골목길도 처음처럼 두리번거리지 않고 올라갑니다. 오다 보니 옆에 초등학교도 있고 성당도 있는 길이었어요. 다음번 이 언덕에서는 또 어떤 것들이 보일까요.


오늘은 제가 지각을 했습니다. 이상하게 버스와 지하철 모두 저를 기다리지 않았고 신당 환승역도 너무 길었습니다. 핑계고 호떡을 먹다가 늦게 나왔습니다. 선생님 어디냐는 아이의 재촉 문자와 함께 도서관 문을 열었어요.


오늘은 파티가 있는 날이네요. 가천에서 다문화 부분 대상을 수여하여 새롭게 보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와락 하고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했는데 한 번 본 나의 아이가 누군지 헷갈립니다. 비슷하게 생긴 아이 셋이 인사를 하는데 어떤 아이가 나의 아이인가. 반갑게 인사해주는 저 아이가 나의 아이인가. 책을 가져오는 척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한 애가 쭈뼛쭈뼛 와서 말을 겁니다.


프리토킹을 하면서 기본 문법을 잡아줍니다. 아이는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지필고사를 보고 집에 와서 낮잠을 자다가 친구들이랑 놀다 왔답니다. 여전히 모든 시제는 현재형이고 짧은 문장만 구사하지만 그래도 예쁜 제 학생입니다. 파티를 하느라 책상이 없는 방 안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의 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제가 지금 모델인데, 다음 주에 유명한 미국 에이전시에 면접을 보러 가서 수업을 못해요."


아이는 악동 콘셉트의 모델을 하고 있지만 일거리가 많지 않아 에이전트를 바꿀 생각이라고 합디다. 마냥 해맑게 사는지 알았던 15세 아이가 벌써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등치만 컸지 애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애기는 저보다 먼저 커리어를 쌓고 있네요.  


"모델로 시작했지만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예요. 저 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요."


미국 에이전시에 뽑히게 된다면 계약서 검토는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인터뷰가 끝날 지 모르니 다음 주는 전화로 수업을 할 생각이에요.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수업이 끝나고 방을 나오니 아이들이 쳐다봅니다.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요.


스스로의 집중시간이 20분이라는 아이를 데리고 꼬박 한 시간 넘게 수업을 하니까 아이의 친구들이 더 궁금해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저와 수업을 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고마웠어요.


감옥 다녀온 친구 이야기, 할랄 정육점을 하는 삼촌 이야기 들로 오늘은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어요. 텁텁한 도서관의 공기를 지나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할 저의 2023년이 기대됩니다.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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