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감정이 떠오르건 당신이 무조건 옳다는 정혜신 의사의 책.
'요즘 들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계속 겉도는 느낌이 들어'
사치스러운 나의 고민을 들어주던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한 달이 걸릴지는 몰랐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짬짬이 읽어서 완성한 한 권. 여느 책과 같이 뒤로 갈수록 조금씩 약해지는 임팩트는 어쩔 수 없었으나, 와닿는 글귀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남기려 한다.
글쓴이는 마음을 살피는 전문가다.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고 파헤지는 활동을 해왔는데,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에 앞장섰다는 그녀의 이력이 가장 흥미로웠다.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직장인들 상담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던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그녀가 어떻게 그들을 치유했는 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 공감,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동감과 공감의 의미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동감은 단순하게 상대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그저 맞장구를 잘 치는 것에 그치지만, 공감은 이심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나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고민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요즘 나누는 대화는 동감만 넘칠 뿐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정혜신은 이 이유를 '적정기술'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한다. 기술의 발달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지만 기본적이고 간단한 일상의 기술이 결핍되어 있으니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공감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인데, 이 중요한 기술이 부족해졌다. 그리고 그 부족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진정으로 공감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기 공감을 통한 자기 치유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적정 심리학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주의점은,
- 상대방과의 공감에서도 항상 내가 먼저이다.
직업으로든, 봉사로든 사람들의 아픈 곳을 묻고 만져주는 사람들에게 번아웃은 흔히 겪는 일일 것이다. 상대에게 공감을 하다가도 나의 이슈가 튀어나오면 우선 나의 상처에 집중해야 한다.
- 잘 모르면 찬찬히 물어야 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배경으로 넘겨짚으면서 상대를 잘못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아는 너는 이런 사람인데 이렇게 행동을 했다고?라고 생각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는 것이다. 반성이 되는 글귀였다. 나 또한 그렇게 친구들의 고민을 넘겨왔으니까. 공감에 진심이라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한다.
- 그 사람의 관심사 말고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가진 것, 아는 것, 겪은 것들에 대해 말하게 하지 말고 '너는 어때?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감은 그 사람의 배경에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감정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을 시작할 때 항상 물어봐야 하는 것이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인데, 충분히 예열이 되지 않은 관계라면 내 경우에는 "요즘 어떠세요?"라고 먼저 가볍게 물어본 다음에 천천히 접근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까 나의 문제점 도 보였다. 나는 소위 '조언충'이다. 공감보다는 조언과 판단을 앞세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준다. 문제를 진단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했는데 왜 서운해 하나? 왜 이어진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를 못할까? 공감이 아니라 동감을 하면서 마지막 라인에 먼저 달려가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을 가는 길을 스스로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서운함과 답답함을 느꼈다면, 상대방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을 터.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고 털어놓았던 친구들에게 답 없이 상황을 분석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조금 반성한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나는 심리적 CPR을 먼저 시도할 것이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