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아 끝나지 말어라
멜입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명절입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보러 저 멀리 내려가셨고, 시댁은 여전히 5분 거리에 있습니다. 부모님이 내려가시기 전에 찾아뵙기로 하고 오빠네와 함께 추석 전 날에 부모님 집에서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절반을 넘 게 사는 집인데 또 막상 손님으로 찾아가니 기분이 묘합니다. 뚝딱거리면서 계속 옆에서 서성거리는 남편과 이제 한참 뛰어다니는 조카 사이에서 연휴를 만끽합니다.
내가 바로 전라도 큰 손임을 말하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오는 과일들은 엄마가 얼마나 이번 추석에 신경을 썼는지를 말해줍니다. 물론 남은 음식들은 할머니네 가져간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성인 6명이 먹고도 한참 남을 양이었습니다. 아들과 딸 부부와 처음 맞는 명절에 엄마도 신이 나셨나 봅니다.
시끌벅적하게 명절 전 날을 보내다 보니 싱가포르에서 보냈던 명절들이 생각납니다.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거나, 싱가포르 친구네 집에 따라가서 함께 마작을 치며 용돈도 받았는데,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용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명절에는 뭐라도 해서 가져가고 싶은데 기름냄새는 또 맡기 싫어서 고민하던 찰나에 식혜를 떠올렸습니다. 옛날옛적 할머니가 명절마다 만들어 놓으셨던 식혜가 참 달고 시원했던 생각이 나서 이틀을 뚝딱거려 겨우 완성했어요. 왜 사 먹는지 알겠더랍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맛있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식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생각보다 맛있기 쉽지가 않더군요.
새벽 알람을 듣고 일어나 밥솥에 들락날락하면서 명절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왔고, 시댁이 생김과 동시에 친정이라는 개념도 생겼고, 또 남편도 뱃속의 아가도 있으니 씹고 맛보고 즐겼던 명절의 의미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지요. 다만 이번 명절을 무사히 넘기고 또 다음 명절이 오기 전까지 아가도 무럭무럭 잘 크고 저는 딱 아가만큼만 몸무게가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치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