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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생명체에게

아들아..

by Mel

멜입니다.


아이는 격주로 폭풍성장을 하면서 엄마의 몸무게도 덩달아 늘어고 있는 나날들입니다. 임신 초반에는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흘러갔는데 중기를 넘어오니 시간만 빨리 가고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황입니다. 주변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냥 멍 때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필요한 건 조리원에서 주문해도 늦지 않는다는 경력자들의 조언만 받아들여 비싸 보이는 것들은 흐린 눈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24시간 공간을 빌려주고 먹을 것을 나눈다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모정이 샘솟는 특별함보다는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생명체가 내 안에서 크고 있다는 느낌은 정말 생경하고 어색하며 신비롭습니다. 임신기간 동안 벌써 모정이 샘솟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저는 일단 아가의 얼굴을 직접 봐야 느껴질 것 같기도 합니다.


부쩍 아이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아이가 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소망만으로는 아이를 키우기에 그리 호락호락한 환경이 아닌지라 조금은 늦었지만 천천히 공부를 해보려 합니다. 책을 읽고 곱씹으면서 느꼈던 것은 '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 아이의 인생이 결정될 수 있겠구나'입니다. 결국 부모가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방식에 따라 아이는 자라니까요.


이제는 시댁에 가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고, 남편이 있는 삶이 익숙해졌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소개팅 꿈을 자주 꿨습니다. 소개팅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나오면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 나 남자친구가 있었던 거 같은데 왜 또 소개팅을 해야 하지?' 했었어요. 잠에서 깨면 잠시동안 남자친구는커녕 결혼한 사실도 망각하고 정신을 못 차릴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남편이 간간이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생뚱맞은 꿈을 자주 꿉니다.


아이가 생기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겠지요.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일까?라고 물어본다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늘 그래왔듯 일단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날려 다녔던 저에게는 결혼이 주는 감흥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릅니다. 이제는 정착지에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돛이 내려진 느낌입니다. 나의 삶인데 더 이상 나의 삶이 아닌 기분에 울적한 나날들도 분명 있어요.


아이는 제가 해왔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길고 중요한 프로젝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대학원에 회사에 너무 바쁜 나머지 소위 말하는 태교를 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배우고 느낀 점들이,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서 처음으로 생각하고 교우들과 토론했던 내용들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자기 위로를 하며, 건강하게 아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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