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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수 Feb 12. 2024

서울 하트

아내와 손 잡고 고궁, 성곽 탐방

설 연휴에 하루는 아내와 종로3가역에 내려창경궁, 삼청동을 돌아 광화문역에 집으로 돌아왔고 또 하루는 여전히(?) 아내와 서대문역에 내려 인왕산 정상을 찍고 부암동에 들렀다가 광화문역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획 의도는 이랬다. 아내는 몸무게 3킬로를 줄이고 싶어서다. 나는 교토의 유적지와 시내를 샅샅이 걸어 다니고는 정작 서울을 그러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었다.


차는 집에 고이 모셔두고(이후로 내내 느낀 자유로움이라니.) 종로 3가까지 가서 점찍어둔 카페(헤리티지클럽)로 갔다. 종묘 벽이 보이는 창가에서 약간 늦은 모닝커피를 마시자마자 배가 고픈 아내는 보쌈 고기를 투박하게 썰어내는 식당(대련집) 네이버에서 찾아냈다. 청계천까지 신나게 가서 '미안합니다 쉽니다'는 문구를 마주하고는(포털에는 영업 중이라고 되어있었건만) 바로 광장시장으로 직진했다. 찹쌀떡은 줄이 길어 포기하고 생태매운탕 집(서울매운탕) 앞에 대기를 섰다. 그날 가져온 생태가 박스째 쌓여있더래서 대기시간을 잘 참아냈다. 손꼽히는 맛이었다. 남미계열로 보이는 청년들이 만드는 호떡까지 섭취하고서야 아내는 (깜박 잊은) 기획 의도를 상기해 냈다.


창경궁에 이어서 창덕궁까지 건물마다 멈춰 서서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정조가 돌아가셨단 말이지. 이 얇은 문으로 겨울을 어떻게 견뎠대. 처마선이 이어져 어지는 다각형의 하늘은 아마도 그 시절과 변함없을 터이다. 기와지붕 위 추녀마루에 앉은 장식기와들(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라는 건 나중에 검색하고 알았다)은 볼 때마다 왕가의 유머 같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을 날씬하게 지나가다가 수제쿠키(바스켓12 계동)를 입에 넣은 아내는 더 둘러가겠다는 의지로(쿠키 잘못은 아니다. 갓 구워진 초콜릿 쿠키는 달지도 않고 가장자리는 바삭하고 중간은 촉촉했다) 감사원 앞까지 오르막을 올랐다(감사원 어린이집이 독채네). 주택가로 주르륵 미끄러지니 곧 삼청동수제비 집이 나타났다(대단한 웨이팅이다). 정독도서관 근처에서 가죽 공방이 한눈에 괜찮아 보여 들어갔다가 아내가 일전부터 필요해하던 가방 하나를 샀다. 큰길을 건너 십원빵의 유혹에 당해주고는(팥 들어간 카스텔라 맛이다), 한국 놀러 온 외국인처럼 길을 걸으며 냠냠 먹었다(아내는 나와 거리를 두고 걸었다). 광화문 광장 가운데 지하철 통로로 들어갔다.


설날 당일에 배를 가득가득 채운 우리는 그다음 날 본게임인 성곽 등산에 나섰다. 서대문역에 내려서 경희궁자이 3단지에 있는 (어두컴컴한) 카페(합심)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이 집 시그니처 커피는 잔 바닥에 깔린 비정제 설탕을 쪽쪽 빨아먹는 재미가 있다), 주변 노포(삼오쭈꾸미)는 문을 닫았길래 그냥 바로 인왕산에 오르기로 했다. 강북삼성병원 뒤로 오르면서 보니 경희궁자이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대단지에, 병원 옆에, 가까이 산이 있고, 광화문도 가깝다. 인왕산 정상까지 멀지는 않지만 훈련이 부족한 아내는 살짝 힘들어했다. 나도 산에 오랜만이지만 만만했다(진짜다). 정상에서 보는 서울 풍광이 그럴싸하다. 해발 400미터가 안되지만 어쨌든 정상을 찍는 맛이 괜찮다.


창의문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윤동주문학관을 끼고돌아 자하손만두에 갔다. 만두는 슴슴하고 깍두기는 시원 상큼했다. 장모님 솜씨 수준은 되겠다. 반값이면 딱 좋겠다만. 지척에 있는 클럽에스프레소에서 라떼 한잔을 나눠마셨다. 문 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문블랜드도 시음했다. 효자동 가게들 구경하다 보니 경복궁역이다. 꽈배기 집이 나타나자 아내가 알아서 내 손을 끌고 갔다(난 꽈배기와 도넛에 진심이거든). 욕심 없이 팥도넛만 테이크아웃을 했다. 이런, 더 사 올걸. 따끈한 도넛이 입안에서 겉바속쫄깃을 시연했다. 광화문 광장에 접어들고는 비로소 우리가 하트 루트를 완성했다는 걸 깨달았다. 오른쪽으로 종묘-창경궁-창덕궁-삼청동-광화문, 왼쪽으로 서대문(돈의문 터)-인왕산-창의문-효자동-광화문이 그려내는 하트! 삐뚤빼뚤하긴 하지만 마음으로 한 번 더 그리면 완벽한 하트라니까.


비싼 항공료, 숙박비 내고 남의 나라 수도(교토)를 탐방한 죗값으로 신체 단련 and 나라 사랑을 실천한, 보람찬 연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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