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신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는 전화벨 소리를 못 들으실 때가 많다(오랜 공장 생활의 후유증이다). 강의 후에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지하철에 올랐을 때 다시 온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감기 안 걸리더니 감기 걸렸길래 걱정되어 전화하셨다고 한다. 전날에 목소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주말에 전화를 못 드려 늦지 않으려고 전화를 했을 때 살짝 감기가 와서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었다. 다음날 강의 전까지 목소리를 회복하려고 인후염 약을 먹고 가습기를 틀고 조심조심해서 강의 때는 다행히 90%는 회복되어 안도했다.
살살 해라
오십 넘은 아들이 박사 과정 다닐 때도 아버지는 '아휴 고생한다'라고 여러 번 말하셨다. 제가 좋아서 하는데요 뭘.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 배다른 동생들은 대학 공부까지 시킨 당신의 아버지를 평생 미워하셨다. 내가 K대에 붙고 난 얼마 뒤 어머니가 전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네 아버지가 자다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낳은 아들이 K대에 간다니'라고 읊조리더라. 나는 올해 29년 차 직장생활 중이다. 네 번째 직장이지만, 공백기가 없다. 석사, 박사를 돈 벌며 마쳤다. 아내는 내가 전 직장에서 나올 때 돈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그동안 당신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마음을 살펴주었다. 아내도 소위 잘 나가던 바로 곁 선배들의 퇴직을 보면서 덜 버는 대신 오래 버는 방향에 동의했고 지금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나의 살림 참여가 늘어난 덕도 있겠다). 현재 직장의 후배 한 명이 '교수님, 왜 박사과정 다니세요?' 물었을 때 '음...BATNA를 가지려고'라고 답했다. BATNA는 협상 용어로 '대안'을 뜻한다. 대안은 불안을 감소시킨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 양가 부모님과 아내, 아들, 딸 - 이 그저 나를 지켜봐 준다. 그런데도 다음을 생각한다. 컴포트 존(Comfort zone)은 컴포트하지 않다. 러닝 존(Learning zone)에 있어야 겨우 편안한 세상이다.
아버지, 살살 오래 할게요.
여든다섯 아버지의 아들 걱정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