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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애 Nov 21. 2019

혼자 먹는 밥

01

어느 날은, 물을 다 마시고 빈 컵을 내려둔 채로 다시 밥을 먹는 내게 물었다. 자주 혼자 식사를 했느냐고. 무슨 질문이냐 하니 혼자서 밥을 먹던 습관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한다. 비어있는 물컵도 그렇다고 했다. 상대를 위해 다시 채워두기도 해야 한단다. 그제서야 억지로 끝까지 마신 물로 배가 가득 찬 걸 깨닫는다. 보통 따라진 물을 내가 모두 마시지 않으면 물은 버려진다. 그런 습관들이 긴 혼자의 시간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성실히 질문에 답을 하려고 '혼밥의 역사'를 떠올려 세어보니, 그간의 '굴곡의 역사'와 혼밥의 역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지금의 내가 되어버린 사건들에는 늘 혼자뿐인 시간이 있었다. 흐릿한 기억이 시작되는 어릴 때에도 나의 밥상의 고독을 채워주는 건 빈 방의 텔레비전뿐이었다. 인형들이 뛰어노는 방송이 끝나면 뉴스가 시작했다. 9시 뉴스가 시작되면 이미 지각이었지만 나는 등교하지 못했다.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현관문까지 걷는 10초의 적막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켜둔 채로 앉아있다. 불안감은 성인이 된 뒤로도 계속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회사에서도 늘 혼자 일하고 혼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소심한 내가 혼자가 편한 나로 변할 때까지 생겨난 굴곡과 흉터들.

또다시 변할 수도 있어, 그는 말했다.

02

나도 역마가 끼었나, 한 달에도 몇 번씩 큰 가방에 짐을 챙겨 넣는다. 멀리는 못 간다. 오래도 안 간다. 서울 시내, 날이 좋은 주말이면 나는 짐을 싼다. 보통 마켓에 처음 참여하게 되면 설레고 즐거워한다. 나도 그랬다. 몇 무심한 경우를 제하고는 다들 듣기 좋은 칭찬을 건네주고 제품도 구매한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기운 속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흥분과 설렘이 생기기 마련이다. 축하해주러 응원하러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반가운 시간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이제는 친구들은 아이 때문에 외출이 어렵게 되었고 나 역시도 직업적 루틴이 되어 무심하게 짐을 싸고 풀고, 옆 테이블과도 대화가 줄었다. 마음 단단히 미리 준비하는 일도 드물었다. 마켓 시작 시간에 턱걸이하듯 도착해 늘 놓던 자리에 물건들을 놓는다. 그 무심한 모습이 신기하게도 보였는지 옆 테이블에서 "이런 거 자주 나오시나 봐요?"라고 묻는다.

'네, 뭐..'

03

오늘 밤은 깊게 잠들겠지, 지난 3일 내내 자리에 앉지도 못했고 먹지도 못했다. 잠은 일주일 정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누웠지만 얼마 안 가 깨고 말았다. 뜨거운 함성과 박수소리는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얼굴들. 나는 늘 혼자야,라고 말해온 지난 시간이 유치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많은 다정함을 받았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은 관계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나, 이제는 변할 수도 있어라고 나지막이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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