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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 Nov 22. 2019

도비는 자유예요

자유를 꿈꾸는 도비의 부질없는(먹히질 않는) 씀씀이

#0

이것이 바로 자기 객관화일까?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 바로 나)

나는 도비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도비였다. 나도 모르는 새, 요정이 되어있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쉬이 집에 가지 못하는 사무실 요정. 사회생활에서는 '책임감'이라는 멋진 단어로 포장되지만, 니예 니예 저는 '을' 입니다요의 도비. 나의 주인님은 '자율성'이라는 멋들어진 가이드를 주셨으나, 마치 볼드모트처럼 언급하지도 행동을 취하지도 못한 채 사무실에 남아있는 '도비'이다.


#1

해리포터 속 집요정들은 주인의 물건을 받으면 자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사무실 도비는 스스로 '사표'라는 것을 내던지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나는 한 없이 찌질한 사무실 도비이기 때문에 용기 내 '사표'란 것을 만져보지도, 말해보지도 못하고 수년이 지났다. 그래서일까 나와는 카테고리가 다른 집요정 도비의 자유를 어쭙잖게 흉내 내 본다.


#2

도비 이야기에서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번 종목은 '양말'이다.


도비의 상징인 양말을 사 모아 본다.

도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취향 때문이라고 줄곧 이야기해보지만 나의 이 씀씀이 끝에는 항상 "역시, 도비구나"라는 피드백으로 마무리된다. 각설하고, 이번 글을 쓰기 위해 내가 가진 양말들을 하나둘 세어보았다.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각기 다른 양말로 백 켤레가 훌쩍 넘는 것을 보니 아, 양말을 좋아하긴 하는구나 생각해본다. 내가 벌어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정작 필요한 것에는 돈 쓰기 아까워하고 그리 필요치 않은 것에는 지갑 인심이 후한 것들이 간혹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양말이 이 후자에 해당된다. 누군가 본다면 양말에 그 돈을 쓴다고?? 싶은 것들도 있지만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멋쩍으니까)


#3

사람들은 누구나 눈여겨보고 신경 쓰는 포인트가 있다. 나의 경우 신발과 양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패션 고수는 신발과 양말을 잘 매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선 이후 나의 양말 씀씀이는 관대해졌다. 눈길이 쉬이 가는 곳이 아니지만 잘 갖추어 신은 것을 보았을 때 '아 세심한 편이구나'하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종 집을 나서기 전 양말과 신발을 고르다 늦어 부리나케 달려나가곤 한다.


+'잘 신으면 기분이 조크 든요' 도비가 선택한 양말들


양말을 챙겨 신는 것이 좋아서인지, 양말 선택은 꽤나 과감한 편이다. 형형색색, 재질도 꽤 다양한 양말들을 가지고 있다. 단색의 양말들은 곳곳에서 보일 때마다 구입한다. 때문에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를 꼽긴 어렵다. 대신 최근 구매한 단색 양말 중 재질도, 색상들도 매우 마음에 들어 다시 또 양말을 사들고 와야지 싶었던 곳이 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색상은 다 있는, 성수동 양말가게


하늘 아래 다 같은 레드 립이 없는 것처럼, 브라운도 브라운 나름 카키도 카키 나름이다. 한 끗이라고 하는 미묘한 차이가 분위기를 다르게 하는데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그 한 끗 차 컬러들의 양말들을 만났다. 자주 가던 동네, 골목인데 왜 이 곳을 뒤늦게 알게 된 걸까? 상호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수동 오르에르 카페 인근에 위치해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 마지못해 몇 켤레의 양말을 들고 다음을 기약하며 나서게 된다. 이번 겨울을 앞두고 강렬한 파랑, 녹색의 양말과 벽돌, 오트밀, 카키 색의 양말을 소비했다.



이름부터 무언가 도발적인, 삭스어필

Inspired, designed, and shared by lovely motifs around us.

상호명, 브랜드 소개글처럼 '삭스어필'은 우리 주변의 영감, 디자인 등을 양말과 다양한 의류로 승화시켜 어필하는 브랜드다. 내가 이 브랜드를 접한 건 스티키몬스터랩과의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 양말이 나왔을 때로 기억한다. 여러 켤레는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 너무 귀여우니 별 수없지라며 호기롭게 카드를 긁었던 기억.


이렇게 삭스어필의 양말들은 다양한 작가들의 콜라보레이션 때문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티키몬스터랩에서부터 이나피스퀘어, 스타워즈까지. 센스 있는 디자인의 콜라보로 괜히 기분 좋아지고 싶을 때 신는 경우가 많다. 양말 한 켤레의 가격이 그리 착한 편은 아니지만 제 값을 하는 퀄리티 때문에 비교적 오래오래 신으면서 즐길 수 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매일 아침을 여는 행복'처럼 찌든 아침 양말 하나로 마음을 다 잡고 전쟁터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니 이보다 좋은 씀씀이가 있을까.



양말을 좋아하는 레이디와 젠틀맨들을 위한 곳, MSMR

지금처럼 체력이 비루하지 않던 몇 년 전 퇴근 후 무조건 경리단에서 놀고 집에 가곤 했다. 그러다 발견한 귀여운 샵이 바로 'MSMR'. 당시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자주 문이 닫혀있곤 해서 샵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타이밍 좋게 들어간 그곳에서 아마 그해 겨울나기 위한 털양말들을 한 뭉치 들고 나섰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레이디들과 젠틀맨들을 위한 양말 샵 'MSMR', 그렇다 심오한 뜻이 있는 걸까 했던 상호명은 미스와 미스터. 처음에 알고 김샌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 모두를 위한 양말이라는 뜻이겠지라고 넘겨짚어보며 양말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디즈니 캐릭터의 양말, 강렬한 컬러들의 양말을 종종 사 신곤 하는데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패키징에 있다. 메시지도 적을 수 있는 디자인 박스에 스티커를 하나 골라 부착 또는 별도로 가져갈 수 있는 곳. 선물을 하기에도 더더욱 좋아서, 나는 당연히 나에게 선물했다. 양말은 많지만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그저 사사로운 소비를 즐기는 구나 싶었는데 스스로의 처지를 위로하기 위해서, 멋있고 싶어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라는 꽤나 그럴싸한 이유들이 모여졌다.

도비처럼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진 못하지만, 스스로 양말을 사모으며 해방감을 얻은 도비의 마음으로 올 겨울 양말을 부지런히 사 모아보아야겠다. 앞으로도 자-알 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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