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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애 Jan 31. 2020

기호 제2호

좋다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 시기도 질투도 없이 좋다고. 아무 대가도 보상도 없이 좋다고, 말하기까지.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 이전에 나는 나에 대한 모든 것에 만족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사실 아직도 반쪽짜리 마음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해 준 덕으로, 나도 그 마음을 알아간다. 나는 자주 삐뚠 말을 하고 돌아앉곤 했지만, 반대로 전해오는 그 마음도 계절이 지나면 옅어질 바람 같은 것이겠지만, 나도 좋다고, 좋다고 말한다. 좋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든든한 언덕을 만들고 그 언덕에서 다른 풍경을 보고 또, 새로운 언덕을 만든다. 높고 낮은 수만의 봉우리가 한가득하여 좋다고.



어제 자려고 누웠을  졸리지 않다고 했더니  5분간,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말아보라고 했다. 5분간, 호흡을 가다듬어 소리가 새지 않게 조금씩 숨을 뱉는다. 숨을 내쉴수록 선명해지는 보도블록, 작은 타일로 가득 메워진 , 풀냄새 나는 밤의 골목. 기억 저편에서 생생히 살아가고 있는 세계다. 나는  시절, 하루를  단위로 나누어 살고 있었다. 매분 매초 바뀌는  심정과 하늘의  따위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래서 이렇게 10년도 넘어버린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이 혼자 생각하거나 혼잣말을 했다. 저녁이나 새벽이 돼서야 모국어로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혹은  조금 두렵고 설레고 울었다. 대부분의 길은 -그때는 구글맵이라든지 무제한 와이파이라든지 하는 것이 없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나아가야 했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정말 그런 각오로, 내가 차곡히 쌓아둔 낡지만 평온한 나의 집을 두고 영원히 돌아올  없을  있다는 그런 기분인 채로 내달렸다. 그런 각오로 도착한 곳은  키로 떨어진 대형마트다. 보잘것없는 목적지이지만 나는 좋았다. 한참 물건들을 뒤적거리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간혹 운이 좋은 날은 세일 코너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커튼을 산다. 보통 세일 코너에는 창문용의 짧은 커튼만 있을 뿐이라서  창을 가릴  있는 커튼을 할인가로 구매할  있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항상  빨랐다. 하지만 그게  싫었다. 여전히 나는 졸리지 않았고 그때는 죽은 것처럼 누워있으면 정말 내가 죽은  일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에- 정말 실존의 혼란을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분일초를 되새기고 기록했다.  번이고 일기에 썼다. 누가  존재를 아나? - 잠을 부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여기저기를  들렸다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실연때문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았고 나는 조금  옅은 숨을 내쉰다. 그보다  전에도, 찢어지는 듯한 기타 엠프 소리, 초저녁 어둠에는  보이지 않는 싸구려 전구 조명, 짧은 스포츠머리를  교복을 입은 학생들, 바람은  뒤에서 무대를 향해 불었다. 나는 그때도  추웠다. 한 움큼 공기를 삼키면 때때로 심장까지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느꼈다.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나 생각을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가 책을   추천했다. 나를  닮은 작자의 글을 읽으며 정말 내가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고  번이나 표지의 작자 이름을 들춰보았다고 했다.
나는 작자의  편의 글을 읽으며 정말 놀랐다. 엉뚱하면서 화사한 글이다. 내가 일면 그런 모습으로 보일  있다는  기분 좋은 일이다.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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