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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 Jan 31. 2020

한 잔의 씀씀이(2)

정말 의도하지 않았을까?


음료도 어쩌면 옷이 필요할지 몰라.

굳이 없는 마음까지 심어주는 씀씀이.


#1 유리잔


투명한 유리잔에 찰랑거리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이리도 투명한 것에 담아 마시면 괜히 건강한 기분이 들어서. 투명한 것이 탄산음료는 물론 맥주를 담아도 아무런 죄책 감 없이 마실 수 있게 하는 착각을 안겨다 준다. 그래서일까 찬장에서 가장 많은 지분율은 단연 유리컵이다. 가진 컵의 약 80% 정도.


마냥 예뻐서 샀지만, 어느덧 선택되지 않으면 제 몫을 다 하지 못하다 보니 역할 아닌 역할을 나누어 부지런히 쓰이고 있다. 이 대환장 파티 속에서도 나름의 룰이 있는 것이다.


제일 다양한 투명 유리컵.

내가 구매한 것도, 선물 받은 것도 많다. 투명함을 한 것 더 즐기기 위해 물, 우유, 탄산수를 주로 채워마신다. 사실 이 것들 외 딱히 마시는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유명하다는 서점에서 책 대신 구매한 앙증맞은 유리컵 (교토 케이분샤에서 구매). 따지고 보면 우유를 마시기엔 터무니없는 용량의 컵이지만 컵 표면의 일러스트를 보면 우유 외 담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 충만한 기분의 브라운 글라스들. 오른쪽의 컵들을 카페에서 종종 만나곤 하는데,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든다. 역시나 자주 사용하는 적당한 사이즈의 컵들


#2 이제 나이를 먹은 걸까? - 세라믹(1)


많지는 않지만 표면이 투박해서 좋은 세라믹 컵들이 있다.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컵부터 느낌만(?) 냈을지도 모르는 컵까지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컵들인데, 빈티지가 트렌드라 휩쓸려서인지 나도 나이를 먹어가서인지 모르겠다. 친척 모두 나누고 본가에 남은 것들은 거의 없지만 친할머니의 다도세트가 꽤 많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컵을 몇 가지 가져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예뻐라 한 손녀라 좋은 추억들이 많아서인지 사실 흐릿한 기억 속의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 욕심내 챙겨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한번 올렸더니 아빠가 DM을 보냈다. 멋모르고 챙겨 온 컵들이 도공 ‘심수관 가’에서 만들었으니 잘 챙기라는 것. 유약이 많이 벗겨져 차를 마시면 묘한 맛이 난다. (결코 건강한 맛은 아닐 듯) 때문에 실제 사용하기보단 감상만 해야 하는 걸까 여러모로 고민 중이다. 어쩌면 내가 적당한 온도의 차를 담지 못해서 일지도, 그저 아름다움만 쫓는 무지한 사람인 거지.


매우 널뛰는 취향이지만, 그래도 요 근래의 취향임은 확실하다. 작년 만추장 애정 하는 ‘텍스쳐 샵’에서 매우 저렴하게 받침까지 세트로 데려온 컵들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손잡이가 있어서 덜 뜨겁게, 생각보다는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컵, 사진 속엔 연필꽂이로 쓰는 댓잎이 옅게 그려진 컵까지.



결코 적지 않은 컵들을 모두 꺼내어 보고 있자니, 대단하지 않은 수집품 중에서도 취향이 은연중 드러나는 기분이 든다. 막무가내의 씀씀이가 아닌 것에 괜히 안도감과 만족스러움이 드는 건 또 다른 합리화의 과정일까 싶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 보여줄 컵들이 남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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